하얀 목련이 만개하고 노란 개나리가 피기 시작할 무렵이지만 아침저녁으로 제법 찬바람이 불어 꽃샘추위를 느끼게 한다. 날씨 변화가 심한 봄 산행에 빠질 수 없는 두터운 예비 복을 준비하니 배낭이 두툼하다. 끝까지 작은 배낭을 고집하는 마누라는 두터운 옷 대신 얇은 옷을 준비하고 집을 나섰다. 내 옷 안 뺏길려면 안 추워야 댈 낀데…

서부터미널에 정각 8시에 도착하니 정호와 양수, 정희 선배님이 먼저와 계신다. 곧이어 치근 ,영도(큰) 형이 도착하고 혹시나 더 오실 분이 있는지 10분쯤 기다리다 출발.
중간 산청휴게소에 도착하니 9시 40분, 의외로 도로사정이 좋아 진행이 빠르다.
창규, 강태 형을 태우고 오는 정호 차 기다리며 양수 형이 사준 찐빵을 맛있게 먹고 월봉산으로 출발.

월봉산은 거망산과 남덕유산 중간에 있는 해발 1279m 산인데 주위의 명산에 가려져 별로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인터넷을 통해 지도를 프린트하고 참고할만한 산행코스를 검색하니, 4시간 코스와 6시간 코스가 있었다.
오늘 대원들의 체력이나 등산 경력을 감안 6시간 코스가 무난할 것 같아 동대마을에서 출발하여 월봉산을 거쳐 영각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잡았다.

동대마을에 10시 30분 도착하니 10가구 내외의 조그만 동내에 빈집도 몇몇 보이고 실제로 사는 가구는 서 너 가구가 채 안 되는 것 같다. 신발 끈 고쳐 매고 대충 산을 둘러보니 주 능은 안 보이고 가지 능이 앞을 가로 막고 있다.
등산 길 표식기도 없고 출발지점이 마땅찮다. 대충 마을 뒤를 돌아 길을 더듬어 올라가니
산으로 난 희미한 길이 보인다.

몇 발짝 오르니 길 중간에 짐승 잡는 올가미가 곳곳에 설치되어 있다. 올무에 걸려 몸부림치며 울부짖는 짐승을 상상하며 올무를 걷어내니 괜한 짓 한다고 양수형이 한마디 한다.
“동네 사람 잔치 한 번 하도록 놔두지, 엽총 들고 사냥하는 사람이 문제지 동네 내려와서
농사 망치는 동물은 잡아도 된다 아이가”
그때 우리는 왜 올무를 마을 입구에 쳐놓았는지 알아채야 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산길을 접어 들었다.

끊어 졌다 이어지는 길을 겨우 찾아 능선에 올라서니 또 다른 능선이 가로 막고, 도무지 사람이 다닌 흔적이라고 볼 수 없는 길은 계속 이어져 있는데 혹시 오소리가 다니는 길?
현재의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라 가파른 제일 큰 봉우리를 한참을 치고 오르니 아뿔사! 우리가 올라야 할 월봉산은 큰 계곡 넘어 다른 능선에 붙어 있었다.  


올라온 만큼 내려가서 다시 오르는 것은 대원들이 동의할 것 같지는 않고, 이어지는 능선을보니 곳곳이 바위와 급경사로 되어 있어 마땅찮고 할 수없이 대체로 양호한 7부 능선을 타고 짐승들이 다녔는지 옛날 나무꾼이 다녔는지 모를, 길 아닌 길을 더듬어 비스듬이 타고 올랐다.
때로는 산 짐승으로 때로는 빨지산으로 잡목과 산죽을 헤치고 한참을 가도 그 자리에 맴도는 기분이다. 이쯤 되면 대원들의 불만이 쌓일 때가 되었는데…
만일 친구들이나 지인들과 이런 산행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시도조차 안 했겠지만  벌써 들어 눕고 못 가겠다거나, 하산하자고 난리가 났을 것이다.

1시간 이상 잡목을 치다 보니 허기도 지고 점심시간도 훌쩍 넘어버렸다.
어중간한 위치에서 식사를 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일단 길을 찾은 후 식사하기로 하고
지금까지 걸어온 7부 능선은 포기하고 조금은 완만해진 것 같은 지능으로 올랐다.
다행이 길이 나타났다. 대원들 모두 안심이 되었는지 일단은 식사를 하고 갈 건지 아니면 하산을 할 건지 결정하자고 한다.
이럴 경우 내 경험에 따르면 99%는 밥 먹고 오른다.

각자 준비해온 도시락을 꺼내니 평소 집사람한테 얼마나 사랑 받고 있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전 보다는 못하지만 그래도 정호가 단연 1등 정호 왈 “김밥이라고 다 같은 김밥이 아니지요  이게 바로 수제 김밥 아닙니까”
“과연 수제 김밥은 다르긴 다르네, 속에 든 내용이 정성으로 가득차네 ㅎㅎ”
맛있게 게눈 감추듯 한 그릇 뚝딱 해치우고 창규 형이 준비한 커피타임.
그냥 마시면 되지 양여사 한마디 거든다 “따뜻한 물이 있는 줄 알았으면 우리집에 있는 커피 가져올거로”

“이제 정상까지 30분이면 충분하니 얼른 올라가봅시다” 라는 말에 강태 형은 30분이라는 말이 못 미더운지  그냥 내려 갔으면 하는 표정이다.
얼른 배낭 매고 마지막 피치를 오르니 예상보다 빨리 정상에 도착했다. 2시 정각, 남 덕유산  금원산 기백산 거망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산 공부 열심히 하고, 이제는 하산시간.

모두 길 좋은 영각사로 가자는 의견에, 끝까지 대장이라는 빽 하나 믿고 아까 지능에서 들은 시원한 계곡 물소리가 궁금하다며 반대쪽 지능을 고집했다.
“보기에도 빤한 능선 길이니 이번에는 길이 좋을 겁니다. 걱정하지 말고 가입시다”  이렇게 모두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름 모를 능선으로 앞장섰다.

진입하는 길이 잘 나있어 별 어렵지 않을 거라고 먼저 내려 갔는데 군데군데 독수리 잡은 흔적이 보여 혹시 독수리 잡으러 가는 길? 찜찜한 생각이 들었지만 설마 능선 길에 길이 없겠는가? 그러나 한참을 가다 보니 좋든 길이 점점 험해지고 능선이 온통 산죽으로 덥혀 있어 길이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고 나중에는 아예 길이 사라져 버렸지만 유일하게 체면을 지켜준 것은 언제 달았는지 모를 색 바랜 표식기 하나였다.

이쯤 되면 대원들의 불만이 쏟아 지겠지, 그렇다고 백 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지금 상황에서는 빨리 길을 찾아 더 이상 헤매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다.
작은 지능이라고 쉽게 생각하다가는 의외로 고생을 할 수 있다. 5분 정도 앞장을 서서 몇 번을 빽 하며 길을 만들어 가며 길도 아닌 길을 만들어 같다.
혼자서는 힘든 과정을 바로 뒤에서 도와준 창규 형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 이였다.

사실 나는 겁이 많은 편이라 혼자 떨어져 있으면 온 갓 상상을 다하는데 군데군데 짐승의 배설 물도 보이고 어떤 곳은 대나무를 역어 만든 지 얼마 안된 이상한 동물 집도 있길래 순간 긴장했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겁 없는 치근이 형 작대기로 그 집을 툭툭 쳐 봤다고 한다. 거기서 날짐승이 뛰어나올까 모두 조심조심 둘러 갔는데…

마지막으로 우뚝 솟은 봉우리를 앞에 두고 한 참을 고민 하다가 오른 쪽 계곡으로 하산,
물론 길은 없다. 단지 물이 흐른 길을 따라 더 이상 길이 험해 지지 않기를 빌며 내려 갔다. 능선에서 몇 번 왔다 갔다 하며 뺑뺑이를 돌다 보니 이제 나도 체력의 한계를 느꼈는지 다시 잡목이 나올까 봐 노심초사 했다. 한참을 내려와 계곡까지 안전하게 내려왔다.

다행이 계곡 옆으로 난 길을 확인하고, 인간의 때가 묻지 않은 100% 자연 계곡에서 세수하며 쉬다가 하산, 남대리에 도착하니 4시 정각 산행시간 6시간 30분 계획대로 걸었다며
모두 가벼운 걸음으로 시멘트 길을 가볍게 걸으며 내려가는데, 그 길이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아니라 마을에서 더 멀어지는 길이었다.

할 수없이 다시 산을 넘어 주차한 동대 마을로 가야만 했다. 다행이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어보니 바로 앞에 보이는 조그만 산을 넘으면 바로 동대 마을이라 한다.
10분 정도 오르면 가능한 산 이였는데, 다 왔다며 긴장을 풀어서였는지 모두 인상이 험악해진다.
“이번 산행은 와 이리 길 따라 안가고 계속 잡목만 치노?”  
계곡에서부터는 내가 앞장 안 서서 다행이지 욕 한 바가지로 들을 뻔 했다.

마지막 조그만 봉오리를 넘는데도 길이 없어 헤매다가 겨우 길 찾아 동대 마을에 도착하니
오후5시(동네 근처에서 대낮에 뛰어 다니는 황금색 쪽 제비를 두 마리나 봤다.)


이제 맛있는 뒤풀이 시간, 양수 형이 제안한  안의에서의 갈비 찜을 누구의 제안 이였는지는 모르지만 정호 차가 기수를  창원으로 바꾸었다.
  안의를 지나갈 때 거의 절규에 가까운 한마디 “안의야 잘 있어라 차도 없는 내가 언제 와서 묵어 보겠노.”
  
창원에서 창규 행님이 봄 도다리를 2접시나 쏘시고 우리는 그냥 쓰러졌습니다.
행님 잘 묵었습니다.

P.S 올해 한 번 밖에 없는 산행대장 이였기에 좀 무리 해봤습니다. 고생했다면 용서해주이소.

산행 참석자 : 김치근, 신양수, 이정희, 박영도, 이창규, 김강태, 신종철, 양경희, 하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