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딩 희열 그리고 4인의 우정길
콰 콰 콰 과 과 드 드 득 . . .
자동차 진동음에 깜박 졸던 잠에서 깨어나는 순간, 어두운 도로 급하게 휜 코너를 강태는 거침없는 코너링으로 빠져나간다. 마치 자신이 테스트드라이버인양. 순간 눈에 비치는 스피도미터는 150을 넘나든다. 만교의 신형 제너시스는 돈값을 하는지 잽싸게 반응을 한다만 차주의 마음은 좀 쓰리지 않을까 ㅋ
예상 시간보다 훨씬 일찍 도착한다 덕분에. 하지만 스트레스도 함께 축적된 듯 뜨끈하게 데워진 설악유스호스텔의 방에 누워도 좀체 잠을 이루지 못한다.
비룡폭포를 넘어서는 걸음에 숨이 헐떡인다.
1박 2일의 살림이 든 배낭을 지고 가는 것과 달랑 당일치기 배낭 메고 가는 것이 과연 비교가 되는가? 한 걸음 한 걸음마다 자문한다. 선두와는 한참 떨어졌다. 내색하기도 어렵다. 힘든 티를 내면 꼰대 취급 받아 앞으론 끼워주지 않을 것이니 죽자 살자 쫓아갈 수밖에. 나이가 뭔 죄여. '가는 세월'이 아쉬울 뿐인 것을.
눈치만 본다. 선뜻 내가 1번창을 잡겠다고 한다면 ‘선배 위세’냐고 힐난하지 않을까. 내 맘이 이심전심으로 통했는지 대장인 지성이 일단 선등을 설 건지 물어온다. 그냥 예의상으로. 웬 떡이냐. 난 기다렸다는 듯 앞뒤 안 가리고 덥석 물었다.
진주에서 온 앞 팀은 저만치 올라갔다.
충분히 거리가 확보되는 것을 보고 드디어 첫발을 내딛는다. 몇 년 만의 설악바위인가. 6년 만에 아니 선등은 94년 적벽이후 처음인가.
여하튼 감회가 새롭다.
내 앞에 바위 홀드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사실이 나를 살짝 흥분시킨다. 엔돌핀이 최대치에 이를 즈음 첫 번째 볼트에 로프를 통과시킨다. 이제부터 한 동작 내디딜 때마다 몇 가지 생각을 동시에 해야 한다.
이 길이 맞는가? 루트는 어디로 이어지는가? 어디에 프로를 설치하여야 하는가? 확보거리는 충분한가? 로프 유통은 잘 되는가? 여기서 떨어지면 얼마나 다칠까?
이 모든 것을 한 홀드 한 홀드씩 옮기면서 순간순간 판단하여야 한다. 이것은 기쁨이다. 내 몸 안의 모든 세포가 동시에 용트림을 치면서 스스로 살아있음을 확인시켜주는 이 즐거움. 손가락 끝에서 전달되는 까칠한 감촉. 발 끝에 힘이 실리는 압박감마저 반갑다.
등반은 리더가 먼저 올라가서 테라스의 앵커에 로프를 고정하면 그다음 2번, 3번이 그 로프에다 어센더로 셀프빌레잉하면서 올라온다. 설치된 프로는 라스트의 몫이다.
따갑게 내리쬐는 햇살은 땀으로 눈을 찌르고 로프는 무겁게 끌려온다. 이따금 밑줄을 한 번씩 당겨 추슬러 준다. 마냥 올라가다가 로프가 안 오면 그만큼 난감한 것도 없으니.
설악바위의 묘미는 나의 선등이 어느 누구의 구속도 받지 않고 한 동작 한 동작이 내 책임 아래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긴 피치와 숨어있는 볼트들. 마냥 넋 놓고 위만 보고 올라가다가는 다시 백을 해야 할 상황에 맞닥뜨릴 수도 있고. 내가 아무리 빨리 가고 싶어도 앞 팀이 헤매고 있으면 하염없이 기다려야하는 노고조차도 마다하면 안 된다.
얼마나 오래됐는지 가늠이 안 되는 테이프 런너. 그래서 확보지점에 도착한 현명한 리더는 자기의 것으로 교체한다. 자외선에 노출된 나일론섬유는 분자간의 결합이 끊어져 표면상 멀쩡해 보여도 그 강도는 믿을 수가 없다.
슬랩과 양호한 홀드 그리고 적절한 크랙은 제5 피치까지 이어진다. 그러고 나면 리지화로 갈아 신고 봉우리를 살짝 우회하여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면 노적봉의 상단부에 이른다.
제6 피치는 거의 수직 벽이다. 난이도는 5.10 초반이며 벽면이 약간 틀어져 있어 밸런스가 함께 돌아간다. 홀드는 대체로 양호하지만 한두 군데는 잘 찾아보아야한다.
크랙이 약간 오버져 꺾여있는 곳에 이르자 앞 팀의 한 여성이 왜 그토록 오랫동안 수십 분을 매달려 있었는지 이해가 되었다.
밑에서는 보이지 않아 간을 쫄리게 만들더니 한 스텝을 어렵게 딛고 일어서니 젠장 오버 너머에 볼트가 숨어있었다. 하긴 이 쫄리는 맛이 없으면 밍밍하니 무슨 맛으로 리딩하냐.
테라스라고 부를 수도 없는 곳에 볼트 두 개가 체인으로 연결되어 있다. 여기에 모두가 매달려 위아래의 등반자들을 각기 빌레이 보아야한다. 게다가 앞 팀이 여전히 그 공간을 다 차지하고 있었다. 별수 없이 거기에 로프만 통과 시키고 멀찍이 떨어져 바위 틈 안에 쪼그려 앉는다. 잔돌들이 많아 여간 신경이 쓰이지 않는다. 만에 하나 부스러기 하나라도 아래로 떨어진다면 예삿일이 아니다.
마지막 피치는 루트파인딩을 잘해야 한다. 볼트가 있는지 없는지 분간이 안 될 지경으로 구간 거리가 먼데다 SLCD를 꽂을 크랙도 마땅치 않다.
가스통레뷔파는 얘기한다. ‘마음의 평정’
그래 내 손과 발을 믿고 차분히 올라가는 거야.
높이 오를수록 자유를 느낀다. 이 자유로움에 마치 내가 한 마리의 새가 된 듯하다. “Enjoy Freedom!”
언제나 서미트에 선다는 것은 멋지다.
‘높이 오르면 멀리를 볼 수 있다.’
경관이 정말 가관이다. 속초 앞바다가 눈앞에 보이며 그 오른쪽으로 내일 찾아갈 솜다리길 리지 그리고 그 옆. 이름만 들어도 설레는 토왕성폭포. 폭포를 가운데 두고 병풍처럼 둘러선 암벽군은 정말 압권이다. 한 컷의 사진으로는 그 감흥을 담을 수 없어 폰을 동영상을 바꾸어 쭉 돌린다.
하강과 베이스 복귀는 또 다른 난제이다.
60미터 로프로 외줄 하강하는 것은 시작하기 전에 시스템을 잘 짜야한다. 누가 먼저 내려가고 마지막 두줄 하강은 누가 하는지. 네 번을 연속으로 해야 하니 자칫하면 엉망이 될 수도 있는데 이 수고스러움을 광윤이 마다하지 않는다. 눈을 감고 맡겨도 될 든든한 후배이다.
하강 후에 기다리는 부시덤불길은 기피하고 싶은 구간이지만 20분만 참으면 해피한 베이스가 있으니 투덜대면서 앞선 흔적들을 쫓아 미끄러지면서 내려온다.
#1199 May 31~June 2 2019(Sun) sunny 17/26℃ 2m/s 40%
등반참가자: 김지성대장(89) 김강태(80) 박만교(81) 문수근(82) 이승용(95) 백광윤(98) 한진석(13) 이기석(74)
May 31(Fri)
저녁 남도국밥, 울산(19:40~20:10) > 설악유스호스텔 도착 23:40
June 1(Sat)
유스호스텔 출발 04:20 > 설악동 입구 04:40 > 비룡폭포 위 05:30 > 비박지 (‘4인의 우정길’ 표식 바위) 06:00 > 등반 시작 06:30 > 5피치 위 테라스 10:30 > 정상 14:10 > 60미터 외줄 하강 4회 완료 15:40 > 비박지 복귀 16:00
* 프로: PROtector(각종의 추락 보호물)
* SLCD: Spring-Loaded Camming Device(‘프렌드’ 같은 스프링이 장착된 확보물)
형님 등반기 잘 읽고 갑니다.
얼마전 대학산악부에서 이길을 등반하다 6피치에서 추락해 볼트가 뽑히는 사고가 있었답니다.
개척당시 공업용 볼트를 사용한것 같습니다.
개척자가 최근에 등반용 볼트로 개선하였고 코스도 자일이 꺽이지 않게 조정하였다는 sns들을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