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목 : "재악산(載嶽山) 영정사"의 "송덕비문(頌德碑文)" 공개

[이 글 및 아래의 재악산(載嶽山) 관련 글의 목표(目標)는 다음과 같습니다]
□ [천황산(사자봉, 해발 1189m)] ⇒ [재악산(載嶽山, 사자봉, 해발 1189m)] 으로
□ [재약산(載藥山, 수미봉, 해발 1108m)] ⇒ [수미봉(해발, 1108m)] 으로 환원(개명)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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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자갑보월비문(庚子甲補月碑文) 공개
재악산과 관련하여 이번에는 경남 밀양시 단장면 표충사 경내(입구)에 340년 동안 비바람에도 변함없이 서있는 영정사의 신도 송덕비인 "경자갑보월비의 비문에 새겨진 글자중, 확인된 글자를 다음과 같이 일부를 공개합니다.
① 송덕비문(頌德碑文)의 명칭 : 경자갑보월비(庚子甲補月碑)
② 송덕비 건립년도 : 대명후(大明後) 25년 : 서기 1661년
③ 송덕비 위치 : 표충사 입구에 있는 "홍제교"를 건너 표충사의 "구(舊) 산문(山門)"과 "현재의 산문" 사이의 보도(步道) 길의 중앙
※ 보도 길 중앙에는 돌비석과 나무비석이 각각 4개가 있으며, 돌비석4개중 갓머리가 없는 돌비석의 앞면과 뒷면에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④ 비석의 크기
㉮ 넓이 : 70cm 정도
㉯ 높이 : 보통 사람의 어깨 정도의 높이

□ 비문의 내역
< 앞 면 >
경자갑보월비
庚子甲補月碑

애유공덕산재보사
愛有功德散財補寺

고무금유열서가명
古無今有列書佳名

경자첨양만세불망희사
庚子僉良萬歲不亡稀事

불창수비도방
不彰樹碑道傍

< 뒷 면 >
영좌밀양재악산영정사
嶺左密陽載岳山靈井寺

시승통통정근청
時僧統通政근(어려울 근)淸

통정선행선기수청
通政善行善記樹淸

대명후이십오년사월일립
大明後二十五年四月日立

경진
庚辰

□ 연대 비교
① 경자(庚子)
○ 서력(西曆) : 1660년
○ 조 선 : 현종(顯宗)1년
○ 중국사 : (明 : 永明 永曆14년) (淸 世祖 順治17년)

② 대명후(大明後) 25년>(서기1636년+25년=서기1661년)
○ 국 사 : 인조14년(서기1636년), 丙子년, 병자호란(丙子胡亂) 일어남
○ 중국사 : 서기1636. 4월에 후금(後金) 태종(太宗)이 국호를 "청(淸)"으로 고침

□ 재악산(載嶽山)과 경자갑보월비(庚子甲補月碑)
지난번 글의 "재악산영정사삼층석탑개수비문"의 기록과 관련하여 저는 재악산영정사 창건이래 영정사를 품고 있었던 이 산의 명칭이 황면선사(黃面禪師)에 의한 "영정사 창건(중건)설화"에도 불구하고 영정사(靈井寺)에 의해 적어도 "서기1491년까지"는 분명히 재악산(載嶽山)으로 불려져 왔다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이후에도 영정사에 의해 스스로 이 산의 이름이 재악산(載嶽山)으로 불려져 왔다"는 것입니다.

위의 송덕비문(頌德碑文)인 "경자갑보월비"에 의하면 이 산은 서기1491년도 "영정사삼층석탑" 개수이래 170년이 경과한 서기1661년까지 영정사에 의하여 "재악산(載嶽山)"으로 불려져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산의 이름이 송덕비 건립 이후에도 재악산으로 불려져 온 증거들을 계속해서 올려드리겠습니다.
재악산(載嶽山)을 찾으시는 산악인 여러 선생님들께서는 시간이 허락하시면 표충사 경내(境內)의 이러한 재악산에 관한 기록의 증거물들을 한번쯤 보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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