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 목 : 산악인 '박인식' (11/38)


글쓴이 : 하정호 조 회 : 22 글쓴때 : 1999/09/28 16:41

--------------------------------------------------------------------------------


80년대에 학교를 다녔고 산을 다녔다면 그 당시 월간 "산"지를
뜨겁게 달궜던 '박인식'이라는 기자를 기억 하실 겁니다.
산에 다니는 행위, 그 미친 열정에 대해 정당성을 찾을려는 박인식의 글
을 읽으면서 많은 부분 공감을 했더랬습니다.
이제 중년의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할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아래는 99년6월 '한계레21'에 실린 박인식에 관한 글입니다.


알피니즘! 휴머니즘!
산을 만나 운명이 바뀐 사람들, 소설 <백두대간>에 형상화되는 20년
산 이야기

전업작가 박인식

그는 산을 만나 운명이 바뀌었다. 고등학교 시절, 히말라야 원정대가 찍은 산사진을 봤을 때 그는 오랫동안 그려온 불멸의 꿈이 거기 있다고 느꼈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며 끊임없이 표현욕구에 시달려온 그에게 산이 그
너른 품을 여는 순간, 불사조가 날개를 편 듯 그는 산에 눈 멀었다.
프랑스 소설가 생텍쥐페리에게 사막이, 영국 소설가 조셉 콘래드에게 바다가 있었다면 그에겐 산이 있었다. 인간에게 진실을 보여줄 극한 상황으로 그는 산을 선택했다. 그때부터 그에게 산은 자유였고 용서였고 사랑이었고 그리고 죽음이었다. 그는 늘 산으로 돌아간다.

14년째 인삼씨를 뿌리는 사연

“산은 사람을 참 잘 비추어주는 거울입니다. 산에 가면 사람이 그냥 드러나죠. 도시에서 제 얼굴을 잃어버렸던 사람들도 산에 가면 자기가 누구인지 확실해집니다. 존재를 꽉 잡을 수 있어요.
산과 하나가 됐다는 느낌이 올 때, 흘린 땀이 짙을수록 더 확실히 자아를 만날 수 있습니다. 산에 안길 때마다 일상에 젖어 흐느적거리던 제 몸이 일어서죠. ‘이게 바로 나다’라고 말하며 살 수 있는 사람, 그건 멋진 인간이죠.” 산악인이자 소설가인 박인식(48)씨가 하는 일은 다 산과 연을 맺고
있다. 산 잡지 기자로 시작해서 산에 관한 전문지 발행인이 됐고 산에 얽힌 이런저런 일을 꾸려가며 산에 관한 소설을 쓴다.
최근 펴낸 대하소설 <백두대간>은 산을 만나 비로소 운명이 바뀐 사람들
얘기다. 산악인, 사냥꾼, 스님, 빨치산, 심마니…. 산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던 이들이 걸어간 길은 한민족의 역사이고 현실이다. 그는 “지난 20여년 떠돌았던 게 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백두대간>은 ‘산에 왜 가느냐’라는 물음에 나름대로 명쾌한 답을 내고 싶어서 쓰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사랑했던 많은 사람들이 내가 사랑하는 산에서 죽었죠. 히말라야에 갈 때 일기장을 제게 맡기고 간 친구들도 있었습니다. 삶과 죽음을 한몸에 껴안고 있는 산, 그 '사람과 산’ 얘기를 쓰고 싶었습니다.”
<사람과 산>은 그가 만들었던 잡지 이름이다. 우리 땅 줄기를 일제가 만들어냈던 산맥이 아니라 백두대간 개념으로 제대로 돌려놓았던 것이 이 <사람과 산>이다. ‘한국 호랑이를 찾는다’ 같은 기발한 기획을 내놓았던 것도 이 잡지였다. 그러나 그가 정작 자랑하는 대목은 잡지 제목이다.
‘사람과…’란 말을 그는 좋아한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가장 소중하기에 ‘사람’을 앞에 뒀다. 박인식씨가 사람에 대해 품고 있는 뜻 그대로다.
“사람들과 어울리길 좋아하죠. ‘박인식의 여자들’이라고 친구들이 놀릴 만큼 여성들도 좋아합니다. 어떤 이들은 나더러 ‘광야의 외로운 늑대’라지만 서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고 그걸 교감할 수 있는 이들과 산에 오를 수 있는 걸 큰 기쁨으로 칩니다.”
그가 지금 마음맞는 이들과 하는 모임은 ‘농심마니’다. 150여명쯤 되는 사람들과 1년에 두번 봄 가을로 산에 올라 인삼 씨를 뿌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사삼 씨를 1, 2년쯤 키운 걸 심는다.
농약에 오염된 인삼은 효능이 없지만 그 인삼을 산에 심으면 산삼과 같은 약효를 얻을 수 있다는 심마니 얘기를 듣고 나서였다. 86년부터 시작했으니 이제까지 8천몇백주를 전국 산에 뿌린 셈이다. 운이 좋은 심마니가 있었다면 벌써 이들이 뿌린 15년산 산삼이 사람들 손에 들어갔다는 계산이 나온다.
“누가 캐가든 그건 그 사람 운이고, 우리 ‘농심마니’ 회원들이 진짜 바라는 건 그 산삼들로 이 땅의 정기가 되살아나는 일이죠. 땅에 대한 믿음을 우리 손으로 되찾자는 겁니다. 70년대 우리 것 찾기, 전통 뿌리찾기가 너무 관념으로만 흐르지 않았나 하는 비판도 겸한 건데요. 우리가 손에 쥘 수 있는 것, 바로 산삼을 통해 이 땅을 느껴보자는 바람입니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발걸음마다 한국인의 정신을 뿌리는 마음이죠.”
그는 소설 <백두대간>에서도 이런 “우리 땅, 우리 사람 얘기를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가 늘 꿈꿔온 휴머니즘과 알피니즘의 결합을 이 10권짜리 소설에 풀어놓을 생각이다. 서문을 대신해 쓴 ‘나의 기도’란 시는 그 희망을 부르는 노래다.
“산 위에 있는 자들과/ 산 아래 있는 자들이//꿈꾸는 자들과/ 꿈 깨어 아우성 치는 자들이//되돌아가 산에 묻힌 자들과/ 하산을 서두르며 환속하려는 자들이//젊은 몸뚱이 팔아 현실을 산 자들과/ 영혼을 정열과 바꾼 자들이//북녘을 바라보며 눈물짓는 자들과/ 절망 대신 굶주림을 택한 북쪽 사람들이…그 모두가/ 서로 어깨 겯고 달려가/ 백두대간의 이름 아래/ 그 넓은 단단한 품에 안겨//우리 민족과 이 나라의/ 미래가/ 백두대간에 있음을 알게 하소서….”

산의 깊이, 인생의 깊이

“서구에선 산을 높이로 칩니다. 높은 산이 장한 산이고, 누가 더 높은 산에 올라갔느냐가 중요하죠. 우리나라에서는 깊이를 칩니다. 깊은 산일수록 좋은 산이고, 사람이 들 만한 산이죠. 산의 깊이란 게 결국 인생의 깊이와 마찬가집니다. 산에 든 사람이 제 목숨의 생명가치를 넓게 느낄수록 좋은 산입니다. <백두대간>엔 그렇게 살다간 사람들이 수십명 나옵니다. 그들은 사랑으로 산을 올랐습니다. 사랑의 대상이 여성이든 조국이든 그들 삶은 그래서 아름다웠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름있는 산꾼들이 도전하는 높은 산에 별 매력을 못 느낀다. 그 열정의 뒷모습, 허망함을 잘 알기 때문이다. 서구 알피니즘이 기록경신에 매달리는 것이 그에겐 ‘개떡같은 일’로 보인다. 산을 오르는 행위는 결국 사랑하는 일과 같다고 보기 때문이다.
“산에 들어 진실로 자기를 보고, 타인을 봅니다. 그리고 나서 사랑하는 일만이 사람이 이 세상에 와서 알고 가야할 전부임을 느끼는 거죠. 난 산에서 사랑과 용서를 배웠습니다. 앞으로 쓸 소설들에 그 얘기를 풀어낼 겁니다.”

한겨레21 1999년 06월 24일 제263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