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september.2002 흐림

『파시펠트는 한국을 환영합니다.』
인구 만 명 남짓한 조그만 시골 마을 곳곳에 나붙은 슬로건이다.
집, 식당, 가게, 음식점,볼링장 할 것없이 태극기와 위의 문구가 새겨진 카피가 온 출입문에
붙어 있다. 09:00 소장님 집 앞에서 EU대사관저 농무관과 만나 약 3시간을 시속 130-140㎞로 달렸다.
암스텔담 근처인 것 같다. 오늘 파시펠트 시 주관 한국인과 파시펠트 주민의 축제가 열리는 날이다.
새벽부터 저녁 행사를 준비하느라 모두 분주한 모습이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거스 히딩크 생가에 갔다. 그 곳에는 히딩크의 부모님이 계시는데 한국관광 객들이 얼마나 못살게
구는지 집 입구에 사생활에 불편을 끼지지 말아 달라는 notice를 붙여 놓았다. 한국인들이여
진정하시라....
집은 아담한 2층 전형적인 네들랜드 하우스였는데 정원은 히딩크가 어릴 때 공을 연습했던 곳
이라고 한다. 한국유통공사 화란한국농업무역관(윤 관장)에서 주관한『KOREA FOOD FAIR 2002』
전시 및 시식회도 차분히 파시펠트 주민을 위해 홍보에 열중이다.
주로 김치.잼,불고기 양념. 배.사과.인삼 및 인삼 제품류(젤리,화장품,충북도청에서 1명 파견).컵라면.
한과.소주.양파링.드링크류 등 10여 품목에 20여 종류를 전시하고 밖에는 만두,부침개,라면,김치
시식회를 마련했다.
물론 화란 교민 아주머니들이 많이 도와 주고 화란 의 상업방송 SBS등이 촬영하고 사상 처음으로
한국음식요리 시간을 1시간이나 방영할 예정이라고 하니 한국에 대한 인식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히딩크 넥타이와 지갑 을 도안한 서울대학교 디자인 경영 이경순교수도 판촉에 열을 올리고...
전시회는 internation rotary club aalten을 빌려 하고 있었다.
네들란드는 국토의 3분의 1이 해수면보다 낮고 낙농업이 농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초원과 가축(양.소.말 떼 등등)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었다.
바이킹족의 후예답게 호탕하고 춤과 음식을 좋아하고 (broda시는 국가에서 허가한 공창도시라고 할
만큼) 농업 이외도 하이네켄 맥주산업, 치즈, 밀크, 다이야몬드 세공산업(옛 식민지 남아공에서 원석
수입),도자기 등이 발전하였고 고흐 라는 유명한 화가를 배출한 나라다.
히딩크 부모들(아버지 나이:86세 2주)과 찰칵. 그의 형 한스 히딩크와도 한컷. 천상 거스다.
자기아버지도 60세 까지 레프리를 했다나. 지금은 건강을 위해 아침마다 자전거를 타신다고.
자식, 동생 덕 톡톡히 보는구나... 그래도 참 보기 좋다. 검소하고 친절하고 거만하지 않고....

히딩크가 안아서 책을 읽고 사색을 즐기던 카페 de ploeg에서 점심을 먹고 그 자리에서 한컷...
온 천지에 히딩크가 잘 갔던 중국집. 책방 ...선전문구가 나붙어 있다.
오후 6시 김 대사관, 공사, 영사, 서기관급 이상 네들란드 대사관 직원 과 시장, 부시장, 공보관
히딩크부모님, 형 한스 히딩크가 내빈석 VIP석 (이들은 맨 뒤줄이 내빈석)에........
시향악단이 양국의 애국가를 연주하고 (악단장도 청바지에 티 차림..자유분방.형식보다는 실리를)
한국의 전통 및 개량한복과 네들란드 복장 패션쇼.... 7시30분부터 젊은 아가씨들의 퍼포먼스와 댄스.
9시 20분부터 김덕수 사물놀이(김대통령 네들란드 방문시 동행 공연. 풀타임은 1시간 40분이고
야외에서 풀타임은 1시간.. 오늘 야외 공연임에도 불구하고 실내 풀타임으로 공연)가 농악놀이와
함께.... 나도 정말 감동적이었다. 한편의 대서사시를 읽는 감동!!! 어디에다 비유를 해야 할지
피가 거꾸로 솟음치는 듯... 네들랜드인들도 숨소리 조차 죽였다.
공연 중간에 가르쳐 준 얼씨구 좋다가 연발이다...


아 대한민국!!!! 우리나라 방송 3사가 다 와서 취재를 하고 연합통신도..
김종진앵커의 모습도 보인다. 영국에서 왔더구만.
나도 한국에 있는 부모님과 추석 때 하지 못한 절을 올렸다. 사물놀이에서 마련한 상 앞에서........
11:00 넘어서야 농무관과 소장 같이 출발.... 집에 도착하니 새벽 두 시가 넘었네.


26. september. 2002 비

너무 피곤했 던지 알람소리를 듣지 못했다
전화소리에 눈을 번쩍 떴다. 한국에서 허수길 선배님님의 전화다. 지점에 왔다가 전화한다고...
안부 전화다. 아침을 먹고 집을 구하러 비가 오는데 나갔다.
불어나 네들란드어로 광고를 내니 알 수가 있나 .. 한국 말 좀 쓰라 새끼들아....
우리나라와 복덕방 개념이 다르고 드물다. 그리고 미니멈 일년 계약이다.
그래도 방 구하기가 힘들다. 이틀동안 헤멧다. 여행하는 동안 방세 쌩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일일이 전화번호를 적어( 공중전화 박스도 가뭄에 콩 나 듯, 카드도 살려면 하늘에 별 따기)
어떨 땐 돈이 없어서 문제... 있어도 살 수 없어 문제 이래저래 문제다..몸으로 해결하는 수와
한국으로 돌아 가지 않으면 풀리지 않는 숙제다..
삶의 방식이 다르다. 그러나 내가 적응해가야 한다.
소장께 전화를 했다. 장대우가 거처하던 곳이 어딘지............
GILSON!!!!! 길손이라. RUE DE BLANCHE에 있단다.
.찾았다. CHEAP BRUNO가 안내를 상세히 해주었다. 전화료는 따로. 난방비는 쓰는 것 만큼 내고.
밤 난방비가 싸고...보안이 철저하다. 2중3중 시건 장치..
1달에 670유로. 3개월 이상있으면 한달에 570유로... 보름간 여행을 하고 18.OCT에 오겠다고
계약하고 200유로를 DEPOSIT했다. 페인트 칠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