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載嶽山의 증거문서(고문서 및 고지도)

안녕하십니까.
도재국입니다.

아래의 재악산(載嶽山)과 관련한 일련의 자료인
[홈페이지 : 백두대간(www.angangi.com), 게시판]의 "현진상"님의 글을
옮겨와 먼저 올려드립니다. 참고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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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현진상 Wrote
도재국 선생님 안녕하십니까? 현진상입니다.
제가 요즘 열중하고 있는 일 때문에 답변이 늦어 죄송합니다.

지난 8월 31일 게시판에 남기신 글에서, 선생님께서는 식민정치나 종교적인 이유 때문에 변경된 산이름을 조사하고 그 원래의 이름을 되찾는 일에 열중하고 계시다고 하셨기에, 참 대단한 일을 하시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얼마나 외롭고 힘들고 먼 길인지........ 알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제가 『한글 산경표』를 집필하면서 필요한 정보가 어디에 있는지를 몰라
막막해 하던 일을 생각해 봅니다.
직장에서 그리고 출장지에서 제게 전화까지 걸어 오셨으니
어찌 도와드리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선생님의 노력은 이 홈페이지가 백두대간의 개념과 원상회복을 위하여,
그리고 『산경표』와 「대동여지도」 바로 알기를 통하여 전통지리관을
되찾고자 노력하는 것과 일맥상통합니다.

지명을 환원·개정하는 일은 국립지리원 지명심의위원회의 심의를 거쳐야
하는 만큼 역사지리적인 근거를 문헌에 의해 정확히 제시해야 하는 것이
관건이 된다는 것은 이미 알고 계실 것입니다.

# 말씀하신 재악산(載嶽山)은 『산경표』에는 실려있지 않지만 『산경표』의 원전인 『동국문헌비고』의「여지고」「산천」 군현편 밀양(密陽)조(條)에
분명히 재악산(載嶽山)으로 실려 있습니다.

그리고 「대동여지도」에는 『산경표』상의 낙동정맥 110취서산(鷲栖山 :
문헌비고에는 鷲棲山) 서쪽의 고사산(姑射山), 그리고 그 서북쪽의 재악산(載岳山)을 선명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동국문헌비고』는 영조 46년(1770)에 간행되었고, 순조 31년(1831)의
『증정문헌비고』를 거쳐 고종 융희 2년(1908) 『증보문헌비고』로 수정·
증보되었습니다. 도서관에서 영인본을 찾을 수 있습니다.

# 한문(영인)본
홍봉한 이만운 박용대 외, 『영인대보 증보문헌비고』, 명문당,
1985(원간 : 동국문화사, 1959). 342~343쪽의 밀양(密陽)조(條)를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증보문헌비고의 편제로는 권22, 여지고10, 산천4(전라도, 경상도 편), 22~23쪽입니다.

# 한글 번역본
세종대왕기념사업회, 『국역증보문헌비고』, 천풍인쇄, 1980. 여지고2, 258~259쪽

# 「대동여지도」는 http://www.yes24.com 에서 도서명 "대동여지도"로 검색하시면 됩니다.

경희대학교 한국전통문화연구소 편, 2/3 축쇄영인본「대동여지도」,
백산자료원, 1991. 제18첩 7편이 밀양과 그 인근의 지도입니다.

# 다음의 자료도 참고가 되실 것입니다.
고전간행회, 『(영인본)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문화사, 1958.
국사편찬위원회, 『(영인본)여지도서』, 탐구당, 1973.
한국학문헌연구소 편, 한국지리지총서 『(영인본)읍지(邑誌)』,
아세아문화사, 1985.

# 다음은 조선총독부가 발행한 자료를 국내에서 영인한 것입니다. 일제에
의해 지명이 변경되었음을 밝힐 수 있는 직접적인 증거가 됩니다.

치욕적이지만 치욕을 씻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입니다.

한국문집편찬위원회, (영인본)한국지리풍속지총서(1) 『조선지지』,
경인문화사, 1994(원간 : 日韓書房, 1912).

한국문집편찬위원회, (영인본)한국지리풍속지총서(4) 『조선지지자료』, 경인문화사, 1994(원간 : 日韓書房, 1912).

도재국 선생님의 노력이 큰 결실을 맺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 현진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