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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 고졸 생산직 연봉이 6천만원이라고?
14년 근속자, 잔업·일요 특근 해야 연봉 3천5백만원 연 165일 쉬고 하루 8시간 일하면 2천8백79만원 수령
현대자동차 고졸 생산직 노동자가 신랑감 후보 3위에 올랐다는 우스갯소리가 나돈다. 미혼 여성들이 의사·변호사 다음에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사(士)’를 신랑감으로 선호한다는 것. 국내 언론 매체가 현대자동차 임금단체협상(임단협) 타결로 고졸 생산직 노동자 평균 임금이 5천5백만∼6천만 원이고 휴가 일수가 연 1백65일이나 된다고 잇달아 보도하면서 일어난 ‘믿거나 말거나’류의 블랙 코미디다.
과연 현대자동차 고졸 생산직 노동자들이 1년에 1백65일 쉬면서 연봉 6천만원을 받는 것일까?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자동변속기 2부에 근무하는 최동섭씨(40)의 예를 들어보자. 최씨는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의 평균 근속 연수인 14.4년에 조금 못미치는 13년2개월 동안 현대자동차를 다녔다. 그가 올해 받을 연봉은 4천3백만원 가량. 고졸 생산직 직원치고는 높은 연봉임에 틀림없다.
“근무 시간 많아 병 들고 가정 불화”

하지만 최씨는 이 봉급을 받기 위해서 한 달에 1∼2일만 쉬고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한다. 야근조에 편입되면 오후 9시부터 이튿날 오전 8시까지 근무한다. 최씨는 한 주씩 주간조와 야근조에 번갈아 편입된다. 토요일은 격주로 일한다. 일하는 토요일은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4시간 근무하지만 쉬는 토요일은 휴일 특근을 신청해 오전 8시부터 오후 8시까지 근무한다. 일하는 토요일 다음날 일요일은 주간조나 야근조를 골라 10시간 근무한다.
흔치는 않지만 오전 8시에 출근해 이튿날 오전 8시까지 하루 24시간 일하는 휴일 특근 철야 근무도 한다. 휴일 특근 철야 근무를 했을 때는 월요일에 월차 휴가를 내거나 야근조에 편입된다. 최씨는 “자동변속기 2부가 배기량 1.8ℓ이상 차량에 탑재되는 자동변속기를 생산하는 곳이어서 업무량이 많은 데다 젊었을 때 재산을 모으기 위해 무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최씨는 체력을 보충하기 위해서 봄·가을에 보약을 먹는다. 근무 시간이 일정치 않다 보니 위에 탈이 났다. 최씨는 “무시무시한 노동량을 감당하다 보니 체력이 달리고 주간조와 야근조를 왔다갔다하다 보니 위장병이 생겼다. 야근조 상당수가 위장병으로 고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근무 시간이 많아 가정 불화에 시달리는 직원도 제법 있다.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은 울산 시내 한복판에 현대자동차 ‘제6 공장’이 있다고 한다(실제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은 제5공장까지만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들이 6공장이라고 부르는 곳은 울산 시내 카바레나 나이트클럽. 남편이 야근에 들어간 틈을 타 일부 주부가 울산 시내 유흥가를 나돌아다닌다는 것이다. 한 현대자동차 직원은 “한번은 2공장인가 3공장에 가스 누출 사고가 있어 일찍 귀가 조처한 일이 있었다. 울산 시내 한 카바레의 디스크자키(DJ)가 이 사실을 방송하자 손님 절반이 급히 빠져나갔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최씨와 입사 동기인 김기혁씨(37)는 최씨에 비해 상당히 적은 연봉을 받는다. 의장3부 소속이지만 노조 문화패에서 활동해 휴일 특근 수당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가 받는 연봉은 3천5백만원 가량. 기본급에다 일반 수당으로 구성된 통상 임금에 잔업수당만 포함된 것이다. 김씨 연봉이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조원이 받는 평균 연봉에 가깝다. 김씨는 “연봉 6천만원 받는다는 보도가 나왔을 때 어이가 없었다. 혹시 방법을 알면 가르쳐 달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생산직 직원의 급여명세서를 모아 연봉을 계산해 보았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 평균 근속 연수인 14.4년을 근무한 직원이 법정 휴일 1백65일을 다 쉬고 하루 8시간을 근무했을 때 받는 연봉은 2천8백79만원(위 표 참조). 이 금액은 올해 임단협 타결로 오른 임금 상승분을 반영한 것이다. 한 달에 20일, 하루 2시간씩 연장 근무한다면 3천5백27만원까지 연봉이 오른다. ‘잔업’이라 일컫는 연장 근무는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가 웬만하면 하는 것이므로 이 액수가 평균 연봉과 가장 가깝다.
일요일도 쉬지 않고 일한다면 휴일 특근수당이 붙어 연봉은 4천3백41만원까지 오른다. 시급제인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 체계를 감안하면 1년에 총 3천24시간을 일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현대자동차 노조가 조합원 1만8천8백6명을 대상으로 산정한 ‘2002년 연간 울산공장 근로시간대별 인원 현황’에 따르면, 연 2천9백 시간 넘게 일한 노동자는 12%밖에 되지 않는다. 3천 시간 이상을 일한 사람은 극히 일부다. 따라서 근속 연수 14.4년인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3천5백만∼4천만 원이다. 비정기적으로 나오는 명절귀향비 (60만원),·여름휴가비 (30만원)·가족수당·목표달성장려금·학자금 등을 추가하더라도 평균 연봉은 3천6백만∼4천2백만 원이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해야 5천5백만원 받아

언론 매체가 보도했듯이 연봉 6천만원을 받는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토요일·일요일·공휴일·연월차 휴가 등을 포함해 한 달에 30일 이상 일해 연간 근무시간 3천6백89 시간을 채우면 5천5백62만원까지 받을 수 있다. 이 정도 받으려면 동료가 일하는 시간까지 뺏어야 한다. 장규호 노조 대외협력부장은 “3천6백 시간 이상 일하는 이들이 가끔 있지만 대부분 과로사 위험에 노출된다. 지난해 과로사 9명을 포함해 산업 재해로 판명된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노동자가 18명이나 된다”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연봉 6천만원, 연 휴일 1백65일’이라는 보도는 어떻게 나온 것인가? 이 블랙 코미디의 사실 관계를 추적하다 보면 한국 언론의 현주소가 여실히 드러난다. 연합뉴스 현대자동차 출입기자가 현대자동차 임단협이 타결된 다음날인 8월6일 잘못된 자료와 계산 방식으로 연봉과 인상 금액을 산정해 보도하면서부터 이 사건은 시작되었다. 국내 인쇄 매체들은 잇달아 연합뉴스 기사를 인용 보도했고, 일부 매체들은 연간 휴일 수가 1백65일이라는 내용까지 말미에 덧붙였다. 현대자동차 노조의 항의를 받은 연합뉴스 담당 기자는 현대자동차 사측과 노조와 접촉해 다시 보도했으나 수정된 내용마저 틀렸고, 이마저 받아서 정정 보도한 매체는 거의 없었다. 방송도 최초 기사에 근거해 보도했고, 10초도 채 노출되지 않은 방송 시간에 장규호 노조 대외협력부장이 “국민 여러분, 우리는 그렇게 많이 받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는 촌극까지 벌어졌다.
‘고졸 공돌이’는 연봉 2천만원 받아야 옳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에는 지금도 어이없는 전화가 걸려온다. 장규호 대외협력부장은 “취객들은 다짜고짜 ‘너희만 잘 먹고 잘살려고 하느냐’고 따지는가 하면, 남편이 월급을 빼돌리는 것 같아 정확한 임금을 알아보기 위해서 전화하는 노동자 부인들도 있다”라고 말했다.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가 연봉 6천만원을 받는다는 오보에 대한 사회적 파장은 엄청났다. 실업 대란의 그늘에 가려 있는 구직자들이 보기에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과 복지 수준은 그야말로 ‘다른 나라의 일’처럼 보였을 것이다. 열악한 작업 환경에서 죽어라 일해도 삶의 질을 개선하기 힘든 대다수 노동자나 자영업자 들도 상대적 박탈감에 시달렸을 것이다.
현대자동차 임단협 결과에 분개하는 여론의 밑바닥에는 고졸 생산직 노동자에 대한 계급적 거부감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는 이번 오보 사태에 대한 사회적 반응을 다음과 같이 해석했다. “고졸 공돌이는 연봉 2천만원 수준에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편견에 사로잡힌 지배 계급의 히스테리가 아니겠는가.” 현대자동차 생산직 노동자의 월급 봉투 논란이 2003년 여름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울산·이철현 기자 leon@sisapress.com
[ 2003/08/28 722 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