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굉장히 무더운 여름날 오후였지. 우리는 세시간 동안 산길을 걸었는데, 그 사이에 우리가 만난 상대라고는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남기고 날아오른 들새라든가 논두렁을 구르며 날개를 퍼덕거리던 유지재미 같은 것들뿐이었어. 아무튼 무지하게 더웠으니까. 한 참 동안 걷다가 우리는 여름풀이 보기 좋게 가지런히 나있는 비탈에 앉아서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몸에 흐른 땀을 닦았지. 비탈아래쪽에는 깊은 해자가 펼쳐져있고, 그 건너편에는 나무가 울창하게 우거져 있는 나즈막한 섬같은 고분이 있었어. 옛날 천황의 것이지. 그 무덤은 너무나 거대해서 전혀 무덤으로 보이지 않더군. 산이지. 해자의 수면은 개구리와 수초로 가득 차 있었고 울타리 주위는 온통 거미줄투성이였어. 나는 잠자코 고분을 바라보면서 수면을 가르는 바람 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그때 내가 느낀 기분을 도저히 말로는 다 표현할 수가 없어. 아니,기분 같은게 아니었다고. 마치 뭔가에 푹 감싸인듯한 감각이었어. 그러니까 매미나 개구리,거미,바람, 그 모든 게 하나가 되어 우주를 흘러가는 거지. 글을 쓸때마다 나는 그 여름날의 오후와 나무가 울창한 고분을 떠올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지. 매미나 개구리,거미,여름풀 그리고 바람을 위해서 뭔가를 쓸 수 있다면 얼마나 멋질까 하고 말이야."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 무라카미 하루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