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망합니다.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입니까?
가실 준비도, 보내 드릴 마음의 준비도 없이 이렇듯 허무하게 가시다니...
야속하고 서운하고 막막하고 또 미안합니다.
하찮은 오해로 수년동안 뵙지 못한 저의 옹졸함에 대해 용서를 구하지도 못했는데,
아무 말씀도 없이 가시다뇨?
강렬함과 독특한 성격으로 불필요한 오해를 많이 사기도 했지만,
당신만의 방식으로 누구보다 더 산과 산악회, 선후배를 사랑하시어 우리 산악회에서 가장 뚜렷한 족적을 남겨셨습니다.
이제 정녕 다시 못 뵌단 말입니까?
형님과 함께 했던 그 많은 산과 추억들이 떠오르면 또 어쩌란 말입니까?
형님!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미안합니다.
- 못난 후배 하정호 올림-
대학 1학년 가을 알프스 3대 북벽 도전 계획 발표장에서 꼬장꼬장하게 따지고 확인하던 모습이 첫 기억으로 떠 오릅니다.
철마에서 소나무 손질하고 잡초 뽑으며 여러가지 잔상들
영암 월출산 산행에서 형수님이 준비해온 푸짐한 해물탕을 먹으며 쌍둥이 아니라고 (어린 병수 병림) 끝까지 우기시던 모습
재작년 여름 철마 가족 모임에서 가족들은 뭐라러 달고 왔냐고 퉁명스럽게 얘기 하고는 어린 우리집 꼬맹이들에게 용돈 만원씩 주고
엄청 큰 양주병을 따 맘껏 먹으라고 투박하게 술잔에 부워주던 모습이 마지막 이었네요.
그 양주병 마저 비우러 갈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둘째가라면 서러워 할 정도로 투박하셨던 선배님
그 투박한 모습이 왜 이렇게 그리워지는지...
영정사진이 너무 너무 낮설었습니다.
삶과 죽음이 항상 함께 하고 있다고
좋은 곳에서 편안히 계실거라고 애써 자위해 보지만
그냥 아무일 없었듯 어제같은 오늘을 보내진 못하겠군요.
이충한 선배님
오래 오래 기억하겠습니다.
편안히 잠드소서.
신불산 경사 가파른 산허리를 당일산행으로는 믿을 수 없을 만큼 큰 배낭을 지고 맨 앞에 서서 오르셨습니다.
해외 여행용 오스프리 캐리어식 배낭이었습니다. 트렁크모양인데 맬빵을 빼내면 불편한데로 짧은 거리를 등에 지고
옮길 수 있는 식이죠. 오르면서 쉬는 곳에서 배낭을 받아내려 주었는데 무거웠습니다. 뭐가 들어서 이렇게 무겁나 왜 안 물어
보았을까요.
금강폭 다 이르러 10분 정도 남겨둔 곳에 텐트하나 칠 수 있는 곳에서 위로 갈림길이 있습니다.
정민이과 저는 일부러 한번 더 쉬면서 형님을 기다려 폭포아래에 짐 풀어놓고 저 위 오솔길로 산책을 다녀오시라 했습니다.
"너희들이나 잘해라." 후배들에게 주시는 마지막 충고의 말씀이 되고 말았습니다.
선배님이 지고 올란 그 무거운 배낭속에는 후배들 먹일 음식이 잔뜩 들어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보다 더 무거운 것도 그속에 담아서 버리고 가셨을 것입니다.
그 속에는 정호형에 대한 그리고 다른 모든 이에 대한 오해와 편견도 들어 있을 것입니다.
선배님은 다 내려 놓으시고 좋아하는 산길로 오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