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크게 찍는데다 올리기가 싶지않아 몇번의 실패끝에 겨우 올리다 보니 사진이 중복되었습니다. 부분 삭제가 불가능하여 걍 올려두니 걍 봐 주세요.
2006.06.20 23:42:40 (*.220.60.244)
하정호
형수님, 수고많으시네요. 사진용량이 크면 에러가 발생하는 일이 종종 있더군요. 한번에 10장이하로 올리시는 것이 좋을듯 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수고 해 주실거죠? ^^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2006.07.07 21:31:32 (*.145.82.33)
jhsuh
30 여년 전 소백산 지질도폭 조사 시에 있었던 일.
양양 갈천에서 미천골 입구 할머니 혼자서 사는 집에서 K형하고 N이라는 꼬시래기 후배하고 셋이서 묵었다. 한 여름철이라 식욕이 떨어지고, 먹는 것이 극히 불량해서 콘디션이 영 말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가난했던 지질과 학생에 불과했던 그 시절이 너무나 참혹한 고통의 연속이었다. 하루 이틀 주변 지질조사 후 그날을 잡아 소백산으로 올라가기로 작정하였다. 그날 아침 그래도 쌀밥을 지어 양파와 고추장으로 물에 말아 나는 후루룩 거의 다 마셔버렸다. 물론 두인간은 거의 먹지 못했다. 뼌질거리며 함마만 들고 수건을 목에 두르고 그냥 가볍게 올라가는 K형은 그런대로 괜찮았는데, 후배는 몇 시간 산행 끝에 나뭇가지에 걸쳐져 정신이 거의 잃은 듯 했다. 내려가 들쳐 업고 한참 올라가다 내려갈 일이 급해 하산하기 시작했다. 굶는 채로 밤새 하산해야 된다는 계산이어서 마음이 바빴다. 화전에 심은 옥수수 밭까지 죽을 힘으로 가야 했다. 하산 한지 댓 여섯 시간 만에 옥수수 밭에 도착하여 설익은 옥수수 단물로 허기를 면했다. 그리고 횃불로 마을사람들이 우리일행을 찾으러 올라와 우리를 반기던 그 순박한 갈천 사람들과의 미천골은 영영 잊지 못한다. 그 꼬시래기는 지금까지도 간혹 안부를 물어보는 동생이다. 그 후 20년이 지나 강원산업에 있을 때 여름과 가을에 가 회상에 젖어 그 형편없는 지질조사를 부끄러워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