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숨은 처녀림 초암능선을 가다(2)

지리산의 숨은 처녀림 초암능선을 가다(2)

 

 

    6월 27일(일) 하늘 높고 산은 푸르고 햇볕 쨍쨍

     

    치밭목 출발(07:50)

    어째 산장 밖이 꼭두새벽부터 소요하다.

    워떤 고연놈들이 남의 단잠을 깨우는 고?

    야간 산행으로 대원사에서 올라온 젊은축들 이삼십명이 아침준비하느라

    부산을 떨고 있다.

    빈 순대 대충 채우고 출발.

    치밭목이여! 안녕. 기약할순 없지만 다시보는 날까지...

     

    돌돌돌 흐르는 얕은 계곡옆으로 가파른 내리막을 뻐근하고 무거운 걸음으로

    옮긴다. 천왕봉으로 갈까 한참을 고민. 그쪽은 자주 가 봤고 이길은 초행

    이니 계획대로 가자. 해서 시간 많으니 쉬엄쉬엄 볼거 안볼거 다보며 간다.

     

    무제치기 폭포(08:25)

    시원하다. 그 폭포 제법 멋지다. 설악산 토왕골 비룡폭포보다 큰것 같다.

    겨울에 얼음 얼면 빙폭타기 좋것다.

    폭포를 쳐다보며 바위 밑에 깊은 구덩일 파고 독수리 한마리 잡다.

    (난 전생에 짐승이었나? 어디가면 꼭 흔적을 남겨야 직성이 풀리니)

     

    한참을 가다가 반능선 큰 바위에 걸터 앉아 오이하나 깍아 먹는다.

    역시 더운 여름엔 오이만한 간식 없다.

    굽어 보니 끝이 없다. 여긴 소나무가 거의 없고 활엽수 원시림이 울창,

    장관이다. 늦가을 낙엽질때 오면 볼만 허것다.

     

    아니 어떤 인간들인지 아주 강심장임에 틀림없다.

    길 한가운데 빈 과자봉지, 피티병을 고이 모셔 놓다니.

    하산길이니 주워가자.

     

    이제 사람사는 흔적이 보인다.

    깊은 산을 헤쳐나와 연녹색 덩굴과 사람들이 만들다만 남새밭, 과수원등이

    시야에 들어오면 왠지 푸근해진다. 아늑하다. 떼묻지 않은 순박, 순수를

    고이 간직하고 살 수 있을것 같다.

     

    유평(11:00)

    아! 가랑잎 국민학교. 14년전 보이스카웃 훈련차(고교 1년때) 왔던곳.

    저 운동장 느티나무 밑에 A형 텐트를 치고 며칠 놀았었지.

    안타깝다. 건물은 그대로이나 녹슨 대문엔 굵은 열쇠 채워져 있다.

    폐교된지 4~5년 됐다나. 무상한 세월.

     

    근처 음식점들 산천어, 피라미등 회나 매운탕이 죽인다는데 쩐이 부족한

    내겐 그림의 떡.

     

    이제부터는 시멘트 포장도로다. 재미없다. 왼편 대원사 계곡 시원한 물줄기

    굽어보며 가는걸로 자위 해야지. 작년엔 비극이 참 많았었지.

     

    결국 못참고 내려간다. 팬티바람으로 풍덩. 어 시원하고 좋다.

    팬티는 바위위에 널어 말리고 라면하나 끓여 먹는다.

    오랫만에 먹는 라면 맛도 죽인다. 혼자 먹기 아깝다.

     

    대원사(12:20)

    비구니 스님들만 사는 곳이라 그런지 다른 곳보다 더 깨끗한것 같다.

    대웅전, 삼신각등 건물들도 아담 사이즈. 멀리 스님들 빨래 널어 놓은것도

    보인다. 스님들은 어떤 속옷을 입나? 갑자기 궁금하네.

    비구니 스님들의 청초한 얼굴은 볼때마다 왠지 아까운 생각이...

    대웅전 앞마당 가에 있는 설익은 자두 몇개 따먹고 떠난다.

     

    여기서 정류장까진 빨간 블록으로 만든 도로다.

    덥고 짜증난다. 그냥 계곡으로 갈까부다.

     

    정류소(13:00) 7,900원

    이른 시간이라 그런지 버스 안에는 아무도 없다.

    몇분 지나지 않아 덕산에서부터 마을 사람들이 많이 탄다.

    역시 서부 경남이라 내고향(남해) 말과 거의 같다.

    "아지매 오이 갑미까?" " 와, 장에 안 가나"

     

     

     

    지금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