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스포츠클라이밍의 등반사적 의미

  "2004년 7월 27일 나는 카라코룸에 있는 K7(6,858m)의 2,500미터 화강암벽 새 루트의 꼭대기에 섰다. 등반을 시작한 지 26시간 논스톱으로 정상에 올랐다. 이번은 재등이다. 20년 전 초등 때는 대규모의 원정대와 2,700미터의 고정로프와 450개의 볼트가 필요하였지만 오늘 나는 단지 3kg의 배낭만 맨채 솔로로 올랐다."- Steve House(파타고니아 대사)

  에드워드 윔파의 마타호른 등정으로 시작된 등정주의. '산에 왜 가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Beacouse it's there.(산이 거기에 있어서)'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고, 끝내 에베레스트에서 불귀의 객이 된 조지 말로니의 등로주의. 헥크 마이어와 아인리히 하러의 1938년 아이거북벽 등정을 끝으로 막을 내리는 'Iron Age(철의 시대)' 비극으로 끝난 존 하린의 1966년 아이거북벽 디레티시마등반(직등주의). 그리고 현재 평균 난이도 5.11급의 1,500미터 넘는 카라코룸의 암탑 '트랑고타워(6,286m)' 등반에 이르기까지 알피니스트들은 무한의 도전에 몸을 던졌다.

  왜 그들은 그토록 자신을 내던지지 않으면 안 되는 그 무엇이 있었기에 스스로를 무한의 세계로 끌고 갔을까? 의문을 가져 보게 된다. '그 무엇'이 있기에 그토록 사무치게 몸부림을 쳤을까? 아마 그것은 죽는 순간까지 명확하게 알지는 못하리라 생각된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편의상 '알피니즘'이라 부르기로 한다. 지고의 가치인 알피니즘은 우리가 산을 오르는 그 순간 - 아니 산행을 계획하는 그 순간부터 함께 하여 안전히 귀가할 때까지 뇌리를 떠나지 않으리라.

  바위에 미리 전기드릴로 구멍을 뚫어 볼트를 박고 그리고 행어(hanger)라는 구멍 난 쇠붙이를 붙이고, 거기에 퀵드로우(quick draw)를 걸어 추락에서 안전을 확보하는 방식인 스포츠클라이밍이 과연 '알피니즘'과 무슨 상관 관계가 있을까?

  '위험은 피하고 곤란은 극복하라'
  등반행위에서 우리를 몸서리치게 하는 두려움, 그 중에서 가장 큰 것이 추락에의 공포일 것이다. 추락이라는 물리적 현상이 없다면 우리는 등반행위에서 보다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그 공포라도 줄일 수 있다면... 그래서 오직 기량을 연마하는 수단으로 우리는 볼트로 영구적인 확보지점을 만드는 방법을 고안하게 되고, 이윽고 극단적인 공포에서 벗어나 기량 연마에 몰두하기 시작한다.
  기량이 나아지고 그와 동시에 등반기술이 발달하면서, 예전에 등반 루트하면 으레 생각하던 크랙의 선을 따르던 루트의 개념이, 크랙이 아예 없는 수직의 페이스로 확장되었고 더 나아가 오버행으로 그리고 심지어 180도 즉 수평의 천장을 기어 가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 프레드 로링의 '아키라(5.15b)'는 수평동굴의 천장루트로 20미터를 클립 한 번하지 않고 나아가야 한다.

  스포츠클라이밍이 대중적으로 널리 자리를 잡으면서 그 개념은 빙벽등반에도 전이 되기 시작하여 빙벽등반 역시 기술적인 발달을 함께 하게 된다. 예전에는 손목걸이가 필수라고 생각하였던 아이스바일은 이제 손목걸이가 없는 리쉬리스(leashless)바일이 유행되면서 새로운 기술이 도입되고 있는 형국이다.
  등반장비의 발달은 눈이 부실 지경이라, 특히 빙벽장비 경우에는 초보자와 상급자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게 할 만큼 진보하였다. 그러자 일부 클라이머들은 최신의 장비를 이용하여 아예 암벽을 빙벽처럼 오르는 시도를 하였다. 이름하여 드라이투얼링(dry tooling)이며, 바위의 미세한 크랙과 홀드를 아이스바일의 피크와 아이젠의 프론트포인트을 이용하여 오르는 기술로 고도의 테크닉을 필요로 하며 아울러 엄청난 체력이 따라야 한다. 이러한 등반형태는 믹싱(Mixing)등반이라 하며 그레이드는 M으로 시작한다. - 기실 바위급수가 5.13급인 클라이머에겐 그가 비록 얼음을 처음한다 하더라도 순수 빙벽은 그리 어려운 과제가 되지는 않겠지만 M8, M9등의 믹스트루트는 만만하지 않다.
  바위급수가 5.13급이며 M10정도를 해 내는 클라이머라면 모두에 언급한 Steve House의 얘기가 결코 허구로 들리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등반실력이 나아지면서 구미의 알피니스트들은 K2를 소수의 인원으로 알파인스타일로 해치우고, 아이거북벽도 스위스의 울리 스텍이란 친구는 2007년 2월 21일 헥크 마이어, 아인리히 하러 등이 1938년 7월 24일 3박4일만에 올랐던 초등루트를 단지 3시간 54분만에 해 치웠다.

  결국 스포츠클라이밍도 스포츠인 이상 일정한 룰이 있어야 하고, 그에 따른 경쟁은 필수적이겠지만, 알피니즘에 수반되는 등반행위에 있어서의 경쟁은 각자의 철학과 걸어 온 길이 같지 않기에 그 경쟁이란 무의미하며 오로지 자신과의 싸움에서 스스로를 극복하는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스포츠클라이밍을 즐기면서 '경쟁과 룰'을 잠시 비켜 두고 그것이 가지는 순수한 의미의 오름 짓과 자신의 기량 연마를 위한 장으로 여긴다면 스포츠클라이밍도 알피니즘 추구라는 관점에서 히말라야 고산등반이나 요세미티 거벽등반과 별 다름이 없지 않겠는가?

  바위의 그레이드는 자신의 등반능력을 수치로 계량화하는 하나의 수단에 불과하므로 그레이드에 절대적인 의미를 부여하여 스스로를 옭아매는 그레이드의 노예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자신의 한계를 밀어 올리려는 부단한 노력이야말로 또 다른 형태의 알피니즘의 추구임을 한 번 쯤 새겨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사진설명: Climbing 誌<#232 July 2004>에 게재되어 있는, Fred Rouhling이 자신의 루트 "The Other Side of the Sky(5.14d)를 오르는 도중 영화 미션임파서블2에서 톰 크루즈가 암벽에서 취하는 동작을 허공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碩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