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2000년 8월 20일
대상산: 포항 내연산(711m),향로봉(920m)
참가자: 강양훈(대장),김치근,신양수,박만교,신종철,양경희,윤정미,김흥국
산행시간: 등산 - 능선 9:10 ~ 12:40(3시간30분)
하산 - 계곡 1:20 ~ 4:20(3시간)


산속에 살고 있지만 좋은 동지들과의 산행을 늘 그리고 있었다. 두어 달이나 벼르던 거창 기백산 산행을 모친의 방문으로 - 61번째 생일 상을 시원 찮은 큰 아들에게서 받으려고 오셨는데 뿌리치고 산엘 갈수 없어 포기를 하고 산행일지로 자위할 수 밖에 없었다. 갑자기 찾아온 설악산 산행은 미쳐 준비하기도 전에 일어나 버리고 어느날 정동이의 산행일지로 또다시 한탄만 해야 했다.

이번 포항 산행만은 꼭 하면서 벼르고 있었는 데, 부산 모친이 또 오신단다. 그래서 미리 광복절날 내려가 찾아 뵙고 가능하면 안 오시도록 유도했다.
금요일 저녁 산행 대장 양훈형에게 중간에 만날 장소를 약속하고 흐뭇하게
이틀 밤을 잤다. 드디어 산행 당일 아침 설레는 마음으로 20분이나 일찍
영천 터미널에 도착하여 기다렸다. 7시 20분에 양훈형 차에 동승을 하고
경주 안강, 포항을 거쳐 영덕 쪽으로 향했다. 양수형은 지도를 꺼내놓고 나를 태우러 오느라 4배는 더 돌아 간다고 은근히 미안하게 만들었다. 역시나 바로간 종철형 차는 30분이나 먼저 도착하여 칼국수를 다먹고 우리것 까지 시켜 놓았다.

칼국수 먹고 9시 10분 출발 보경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 쪽 능선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했다. 안내판에 향로봉까지 왕복 16KM로 등산 5시간 하산 4시간 걸리니 오후 1시 이후로는 산행을 시작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있다. 9시간 산행이면 당일 산행으로 꽤나 빡시겠다고, 칼국수 안먹은 것을 은근이 후회하며 오른다.

종철형이 연애시절에 왔다 갔다는 O O 암자 바로 앞에서 우측으로 난 길을 오르니 능선이다. 저 아래 계곡으로 쌍동이 처럼 나란이 두줄기 폭포가 떨어지고 있다. 빽빽히 난 나무 사이로 짙게 안개(아래서 보면 구름)가 내려와 있고 안개 사이로 웃통 벗은 사내 몇과 정상적으로 옷을 입는 사내 몇 이 먼저 가고 뒤로 여자 둘이 잇는다. 구름 속의 산행..

정상으로 나있는 마지막 가파른 길도 없이 능선을 가다보니 갑자기 약간 넓은 곳이 나타나는 데 내연산 정상(711M)이다. 한 팀이 등깔고 누워 있다. 웃통 벗고 하는 산행과 다른 사람이 쉬어야 할 곳에 누워있는 매너 어느 쪽이 더 바람직한가?

양수형이 물 말고도 챙겨오신 사과를 나눠먹고 능선을 계속 따라간다.
물방울이 우두둑 떨어져 나뭇잎에 부딪히는 소리가 나니 드디어 비가 내리는 구나고 몇몇이 담담하게 받아들이려는 데 종철형이 바람에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란다. 별로 믿지 않고 얼마를 더 가니 정말 하늘이 나타나고 향로봉 정상이다(12시 40분). 종철형의 자연과의 교감에서 나오는 탁월한 감각을 내심 부러워 하며 점심을 펼친다. 정상까지 3시간 30분 소요되었다.

도시락 안 사온다고 수모까지 겪은 적이 있다는 양훈형을 주시하는 데, 사전 조율이 있었는 지 양수형이 도시락 하나를 내어 준다. 소주 한병을 물병 뚜껑에 따라 돌리니 3배 4배 돌고도 남는다. 먹고 남은 것을 정리하고 하산준비를 하니 1시 20분.

몇걸음만 내려가면 계곡에 여러명 앉을 수 있는 반석이 나오니 그곳에서 점심 먹자고 주장하던 종철형 의견을 안 받아들이고 정상에서 점심을 먹은 것을 다행+ 다행이라 여기면서 계속에서 내려간다. 빗물에 밥말아 먹을 뻔 했다. 30분 쯤 내려오니 계곡이 나오고 보경사 까지 6.2KM 표지판이 나온다.
시원하게 비를 계속 맞고 내려오고 또 내려오는 데 우악, 계곡이 길을 가로 막고 먼저온 사람들이 물을 건는다.

올라갈때는 3시간 반이 걸렸는데도 전혀 지겨운 지 몰랐는 데 내려오는 길은 정말 길고 지겹다. 올가갈 때는 휴식도 자주하고 양수형의 해박한 자연철학,인문상식으로 주린 지식욕구를 채우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는데 내려오면서는 휴식도 없이, 양수형은 총알 같이 앞서가 버리고, 비는 엉덩이를 따라 내려와 계곡을 지나 허벅지 장단지를 타고 고아텍스 저수지에 고이니 찝찝함이 더하고 지겹고 긴 길로 느껴진다.

그렇게 비를 맞고도 모자라서 종철형은 폭포와 소가 나올때 마다 물에 들어가려고 한다. 양훈 대장이 겨우 말려 사람 많고 넓은, 가장 긴 폭포가 떨어지는 Pool까지 와서 드디어 헤엄을 쳐본다. 빗속의 계곡속 수영이라..
아까와라 내 수영복.. 엷은 지방에 이미 빗속 추위를 느끼니 수영은 포기라.

보경사에 도착해 경내를 둘러 보고 내려오는 데, 윤정미 회원은 무슨 기도를 하는지 10분은 더 있는다. 막걸리 집에서 양수형이 약속 지키느라 떨고 기다리고 있다. 그 약속이라는 게 '지'로 끝나는 신체 명칭 15개를 30분 안에 대면 술사겠다고 점심 먹을 때 한 것이다. 약대 출신 아내와 살아서인지 신체 명칭에 해박한, 아니면 비속어에 능숙한 종철형 공로로 10분 만에 15개 다 맞추어 막걸리 한잔 얻어먹에 생겼다. 우리집 중 병아리 만한 닭을 30,000원이나 주고 막걸리 한잔 걸치니, 비도 그친다.

올때 처럼 양훈형은 영천까지 나를 내려 주고 부산으로 향한다. 막히는 길때문에 대충 내리느라 인사도 못했다. 떨어져 있는 회원 쉽게 산행에 참가할 수 있게 배려해 주신 선배님 모두 고맙습니다. 토요일 양수형 공장에 방목 암탉 갔다 놓을 테니 푹 쪄서 드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