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산행을 처음으로 OB선배님들과 하려던 계획이 산행자체의 취소로
아들과 같이 지리산 국골로 갔다.

아침 일찍 일어난다는 것이 여전한 어려움으로 남아 있는 나로서는
새벽 5시에 출발하리라는 계획 자체가 무리였나 보다.
6시 30분이 되어서야 차에 시동을 걸고 지리산 추성동으로 출발한다.
간밤에 산행 준비하느라 새벽 1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어서 그런지
여간 피곤한게 아니다.
매달 아니, 한 달에 두 번은 하는 산행이건만 이상하리만치 신년 산행은
항상 긴장이 된다.
남강 휴게소에서 아침 볼일을 보고 돌아와도 아들놈은 여전히 잠에 빠져
있다. 예전 같으면 무엇을 먹을려고 껄떡거릴 놈이 오늘은 오직 잠에 골아
떨어져 있다.
생초 톨게이트를 빠져 나와 유림면과 휴천면을 돌아 추성동으로 향하다
왼쪽 지리산을 올려다 보면 또렷이 보이는 독바위.
지난 11월 혼자서 국골로 해서 쑥밭재로 내려서는 길에 저 독바위에 올라
담배 몇 개피를 피우며 조개골과 중봉을 그리고 뒤편의 어름터, 문수사를
하염없이 내려다 보았다.
그 때의 국골은 예쁜 단풍으로 계곡물과 너럭 바위를 수 놓고 있었다.
천성이 게으른 탓에 사진기 대신에 가슴에 그 자태를 새겨넣었었다.
09 : 20  : 국골 초입
        아직도 늦가을의 스산함만이 남아 있는 계곡에 잠시 실망한다.
        그러고 보니 올해는 계절마다 국골을 찾는다.
        특히, 지난 여름의 국골은 나를 무척이나 힘들게 만들었었다.
        쉬었다 가라는 계곡의 유혹을 참기란 정말 수행자의 구도행위와
        같았다고나 할까......초암릉 전망대에서 내려다 보이는 국골은
        마치 지리산의 생명선과도 같이 아름다웠었다.
        난 그 아름다움에 빠져 이렇듯 국골로 발길을 또 내 딛나 보다.

10 : 40  : 계곡 끝 지점
       담배 한대 피우고 앉아 있자니 저 뒤에서 '아부지~~~'하는 아들의
       애절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눈길에 미끌어졌다며 산신령같이 지팡이 하나 짚고 등장하는 아들
       보니 웃음이 나온다. 수통에 물을 채우게 하고는 과자를 먹고 있으니
       5인의 아줌마 아자씨 부대가 등장하며 하는 말.
       '어이.... 학생들은 지금 올라가는감??'  말투가 기분 나쁘다.
       음....나를 학생으로 봐주는건 좋은데 대뜸 반말이라니..........
       성질 더러운 내가 그냥 넘어갈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들 앞에서
       본성을 드러내기에는 더더욱 그렇고......그냥 웃었다.

11 : 15  : 본격적인 가풀막.
        이 길을 혼자 오를 때는 힘드는 줄 몰랐는데 아들놈과 같이 오르니
        너무 힘든다. 이 놈이 가다서다를 반복하니 어중간하게 멈춰야 한다.
        중간 지점에서는 나 혼자 앞서 가 버린다.
        그러다 보니 또 뒤에서 '아부지~~~~~~'하는 애절한 소리가 들려온다.
        능선 아래 지점에서는 그 아부지 소리가 짐승의 울음소리로 변하는
        것 같다. 길이 미끄럽다보니 자기 스스로도 화가 나나보다.
        저놈이 아부지 성질 돋우고 있는 것 같아 슬그머니 화가 난다.

12 : 40  능선 도착.
        바위에 벌건 페인트로 '국골'이라 쓰여진 곳을 배경으로 아들놈에게
        포즈를 취하라 하니 지금 자기는 그럴 기분이 아니니 강요하지
        말란다..    어쭈구리??? 강요하지 마라????
        니놈이 그러던가 말던가 나는 찍는다.
        과자와 사과를 나눠 먹고 오버트라우저를 입힌다
        능선상에는 제법 적설량이 쌓여 있고 바람도 심하다.
        4인의 남자들이 뒤이어 능선에 도착한다. 마산에서 왔다한다.
       먼저 가라 빠빠이 하고는 우리도 출발한다.
       하봉 아래를 지나면서 초암릉에 올라가고 싶었지만 아들놈의
       컨디션이 아무래도 별로인 것 같다. 아까부터 머리가 아프다한다.

16 : 00  : 하봉 헬기장 도착.
      국골 능선에서 여기까지 2시간이나 걸려버렸다. 계획 차질이다
      천왕봉에서 비박하려던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아들놈이 배고프다고 하소연을 한다. 그러고보니 오늘 한 끼도
     먹질 못했군. 코헬이 작은 관계로 라면 2개반을 삶았지만
     아들놈이 워낙에 게걸스럽게 먹는 바람에 난 두 번밖에 먹질 못했다.
     또 라면을 삶았다. 그래도 이놈이 또 게걸스럽게 먹어 치운다.
     아...시바 나도 배고프다. 에구 부모가 뭔지.....김치만 몇 개 먹는다.

17 : 50  : 중봉 도착
    헬기장에서 중봉에 이르는 길목에 있는 거대한 주목 두 그루.
    그 놈들에 힘껏 껴안겨 보고 오른다. 이 길목을 오를 때마다의
    하는 버릇이 되어버렸다.
    중봉에 도착하니 아까 국골 능선에서 만난 마산의 4인이 우릴 잡는다.
    우찌 어린 아들 데불고 천왕봉에서 비박을 하려하냐고 고맙게도(?)
    적극적으로 말려준다.
    못 이기는척 그네들의 텐트에 들어가 맛난 술과 고기로 허기진 배를
    채운다. 아!!....근디 난 그네들에게 줄 것이 없다.
    인스턴트 원두커피 2개와 덤으로 아들까지 줘 버리고 텐트를 빠져나와
    바위 아래에 자리 잡고 비박을 한다. 술 취한 김에 잠도 잘 온다.
    눈을 번쩍 떠니 새벽 12시가 조금 넘었다.
    큰일이다.....어떻게 이 긴긴 밤을 보낼꼬???
   침낭 사이로 보이는 하늘이 전부 별이다..어?! 저기 별똥이 아니 조기에도
   12시가 넘었으니 지금은 정말로 21세기 아닌가??
   21세기 들어서 처음 시야에 들어온 것이 쏟아질듯한 별들과 별똥들...
   침낭 속에서 꼼지락거려 카세트를 찾는다.
   리시버를 통해 들려오는 조수미의 only love....음......괜찮군.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 한대 피워문다. 바람은 여전하고 침낭커버는
   뻐덩하게 얼어버렸다.  발가락을 꼬무작거리니 그쪽은 괜찮다.
   다시 잠을 청하기 위해 안경을 주머니속에 넣고 누우니 하늘의
   별들은 나의 나쁜 시력으로 인해 어느새 함박눈으로 바뀌어 내린다.
   아름다운 밤이다.

2001년 1월 1일 06 : 00  : 기상.
   치밭목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의 소리에 눈을 뜬다.
   일어나기에는 귀찮다. 1시간을 그렇게 뒤척인다. 사람들 참 부지런하다.
   7시가 지나자 아들놈이 '아부지??'하고 부른다.
   밤새 안녕한지.....지놈 혼자 텐트에서 편하게 잠을 잔게 미안했는지.....
   아들놈과 같이 머리위 중봉으로 간다. 동쪽하늘이 벌건 띠를 이루고 있다.
방귀가 나오면 곧 X이 나온다고...... 비유가 좀 이상하나???
좌우당간에 좀 있자하니 벌건 것이 솟아 오른다.
멋대가리 없이 장승처럼 서 있는 아들놈 뒤통수를 넣어서 그렇게 일출
사진을 몇방 찍는다.
서둘러 살림살이 정리하고는 아들놈과 둘이서 먼저 길을 떠났다.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천왕봉으로....
천왕봉에서는 장터목 방향으로 긴 줄이 형성되어있다. 사람 억수로 많다.
산에까지 와서 줄을 서???  난 그렇게 못한다.
눈치 보다 아들과 칠선 계곡으로 몸을 날렸으나...........
'아자씨!!'...국립공원 수위한테 들켜서는 많은 대중앞에서 일장 훈시를
듣는다.....'알만한 사람이 말이야.....어쩌고 저쩌고.......'
그렇게 신년산행은 그 순간에 끝났다.
그 이후로는 인파에 묻혀 이리저리 움직이다 보니 백무동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