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상산 : 신불산
일 시 : 2002.10.6
날 씨 : 비 쫙쫙

이번엔 왠일인지 저녁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에게 엉거주춤 다가오더니, 평소답지 않게 눈치까지 슬슬보며 하는 말, "이번 일요일날 산에 가자." 평소 기 한 번 못 펴며 남편 하잔대로 하다가, 이 번에야말로 내 뜻을 펼 때다싶어, "안가, 일요일에 빨래도 해야하고, 하루종일 잘꺼야. 절대 방해하지마!"라고 딱 잘라 말했다. 그랬더니 웬걸 기다렸다는 듯이, "알았다, 혼자 갔다올게."라고 하는게 아닌가. '아니, 이게 아닌데, 각본이 이렇게 되면 안되잖아...두 세 번은 더 졸라야 하는데, 나 빼고 어디 좋은데 라도 갈려고 그러나?...' 오히려 내가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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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도 몇 번이나 가니 안가니 하다가 결국은 나의 뜻은 묵살되고 새벽잠을 설쳐가며 준비를 했다. 준비래 봐야 내 몸 하나 챙겨가는 건데 남편보다 늘 늦다. 늦기도 늦은데다 남들보다 땀을 많이 흘리는 편이라 화장도 생략한 채 맨얼굴로 명륜동 지하철역엘 갔다. 밤새 내리던 비가 그칠 줄 모르고 계속 내리고 있었다. 마음속으론 이제라도 행선지를 바꾸든지, 아니면 어딘가 틀어박혀 고스톱이나 치겠지 하며 쾌재를 불렀다. 나의 뜻이 아닌 하늘의 뜻으로 산행을 못하게 되었는데 어떠하리... 이렇게 예상하며 산에 못 가게 돼서 정말 안됐다는 듯이 던진 얘기에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나온 대답은 "우천불문"이었던가.

일행을 기다리며 먹은 코인하우스표 김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다는 생각을 하게 했고 물없이도 잘 넘어갔다. 14명이 차 세 대에 나눠 탔고, 나는 양양언니(?) 내외와 뒷좌석에 자리잡았다. 아침잠을 제대로 못 채웠다는 느낌이 들어 눈을 감고 잠을 청했지만 언제나 할 말이 많은 남편과 일행은 쉴 새없이 이야기들을 나누느라 바빴다. 중간지점에서 커피 한 잔 씩을 했는데 그 때도 비는 그칠 줄을 몰랐다.

하차를 하고 산에 오를 만반의 준비를 했다. 전혀 그칠 줄 모르는 비를 가리기 위해 우산을 챙겼고, 허술한 양말을, 혹시나 싶어 아침에 산 새 양말로 갈아 신었다. 나 혼자만 등산화가 아닌 러닝화를 신고(무심한 남편1) 있었지만 끈이라도 잘 매야 미끄러지지 않을 것 같은 마음에 끈을 더 단단히 조였다. - 남편은 믿지 말자. 인생은 결국 혼자 왔다 혼자 가는 거니까. 절대 꼴찌로는 가지 말자. 뒤쳐졌다가 산에서 미아가 되면 안되니까. 미끄러지거나 다치지 말자. 내 발로 걸어들어온 산 내 발로 걸어나가야지 이 험한 산에서 누구에게 의지한단 말인가.- 이런 생각들을 하며, 아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온몸이 땀인지 빗물인지 모를 정도로 젖어서 끝도 안 보이는 산을 계속 오르고, 거의 내 키와 맞먹는 풀숲을 헤치며 가야할 때는 그야말로 아무생각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내 발 밑만 보고, '이 고행의 길이 빨리 끝나기를...' 하며 걸을 수밖에.

하기 싫던 일이라도 일단 하게 되면 최선을 다하는 나! 긍정적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편이 그 반대의 경우 보다 훨씬 좋다는 걸 아는 나! 그 날도 예외는 아니었고 이왕 산을 오르기로 했으니 한 번 해보자 마음먹었다. 비를 맞으며 걸으니 한가지 좋은 점은 비인지 땀인지 구분이 안돼서 남들 보기에 덜 미안해도 된다는 거였다. -사실 봐주는 사람도 없었지만. 게다가 연신 땀을 훔치며 오르니 남편 말을 듣고 화장 안하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중간에 잠시 쉬며 먹었던 사과와 물은 집에서 먹는 그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달고 맛있었다. 험한 산이라 그런지 두 번이나 잘못된 길로 접어들어 되돌아 나오기도 했는데 그건 기운 빠지는 일이었다.

꼭대기에 다다라 먹은 점심은 온몸이 젖은 채 찝찝한 상태로 먹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 내가 어디 맛없는 게 있었던가. 일행이 내놓은 다양한 점심에서 남편이 산에 갈 때마다 코인하우스표 김밥을 사가게 만든 아내로서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새벽에 일어나 점심을 준비해 주었다는 준형이 엄마의 솜씨에 감탄했고, 샘소슬 왕언니(?)의 푸짐한 준비에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반면, 빈손으로 온 일행은 얄밉기도 했지만 점심을 준비해온 이들이 모두 넉넉하게 가져와 환경적 측면에서 남기지 않고 처리하는데 보탬을 주었고, 남편도 예전에 많이 그랬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기에 귀엽게 봐주기로 했다. 점심 후엔 무슨 예정된 순서라도 되는 양 커피를 한 잔씩 했고, 러닝을 위해 샀던 운동화가 비에 뒤틀리고, 진흙에 엉망이 되어있었는데도 그걸 다시 신고 안개가 자욱한 돌산을 올라가야 했다. 높은 곳이어서 그런지 비의 세기는 약해졌지만 비바람이 되어 불었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었는데, 후배가 내미는 털장갑 덕에 신경이 살아나는 것 같았다.(무심한 남편2)

얼마 안가 또 숨이 헉헉 막히기 시작했다. 좁은 길, 넓은 길, 오르막 길, 내리막 길, 돌 길, 진흙 길,...을 지나니 너른 공터가 밑에 보였다. 트럭에서 오뎅과 막걸리를 팔았다. 점심 먹은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남자들은 또 둘러앉아 먹고 마시고 피웠다. 그러는 동안 나는 내내 떨어지는 빗줄기를 바라보며 발을 동동 구르고 서있었다. 몸만 돌리면 아무데서나 실례를 할 수 있는 남자들을 부러워하며... 계속 좋은 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두리번거렸다. 결국 언니들과 뒤에 쳐져 길 한쪽 움푹파인 곳에 쭈그리고 앉아 실례를 했다. 땀과 비에 속옷까지 그렇게 젖어 있을 줄은 몰랐다. 내리고 올리는데도 한참이나 걸렸다. 산에 나있는 콩크리트 길을 내려오며 이제 고행도 끝났다며 룰루랄라~ 했는데 또다시 험한 산으로 내려간댔다. 어쨋든 또 다시 안간힘을 쓰며 낙오자가 되지 않기위해 이를 악물었다. 내려오는 길에 폭포는 그림의 떡이었다. 물 속에 들어가 마음껏 물놀이할 수 있는 후배가 정말 부러웠다. 그래도 내려가는 길은 비교적 쉬운 편이었다. 처음 산으로 들어가는 입구로 여겨졌던 망가진 철다리가 저 앞에 보였을 때는 '아! 이제 살아 돌아왔구나,'란 생각으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비에 젖은 몰골이라 얼른 차에 올라타서 집에 가고 싶었는데, 또 먹을 시간. 닭백숙을 기다리며 다들 준비해온 옷들로 갈아입고들 있었다. 나의 남편까지도. 나만 빼고...(전문산악인도 몇 명 있긴 했지만-무심한 남편3) 배가 고픈 것도 아니었는데, 맡겨진 분량은 다 먹어야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먹었다. 돌아오는 길에도 비는 여전히 내렸고 어둠이 완전히 내려서야 부산에 도착했다.

큰 맘 먹고 간 산행이 비라고 하는 복병을 만나 힘들기도 했지만, 평소 러닝머신을 탔던 단련된 몸이라 부추기며 산행을 하게 했던 분들에게 실망시킬 수 없었고, 호기심 많고 도전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전혀 새로운 이 경험이 내 인생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되어 기뻤다. 그 다음 주엔, 빗속에 어렵게 다녀온 산행이 복장불량에서 온 듯 등산화에, 쿨~뭐라고 하는 웃옷과 바지를 샀다. 매주 산에 다닐 사람처럼. 한 달이 족히 지난 지금 등산다운 등산을 가본 적이 없다. 그 때 산 등산화로 가까운 절에 다녀온 게 고작인 것 같다. 또다시 남편의 성화에 못 이겨 따라가는 산행이 되겠지만, 충분히 즐길 마음이 되어있는 나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내가 힘겹게 올랐던 산 이름이 가물가물하다. 남편에게 물어보니 신불산이란다. 아! 맞아, 신불산이었지. 산에 무지해서인지, 몇 번을 가본 그 산이 저 산 같고, 저 산이 이 산 같고, 왔던 산도 처음 와 본 것 같고... 훗날 또 어떤 산을 가게 되면 남편에게 물어보겠지. 우리 언제 이 산에 왔었어요?, 처음 온 것 같은데? 그래도 남편은 친철하게(?) 대답해주겠지. 무심하기도 하나 모든 것을 포용하는 산처럼 커다란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