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저녁에 출발 .
롯데 백화점 땜시 길이 막힘에 엄청 욕을 하고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산에 한 번 가기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마누라캉 두 번째로 지리산에 갔다.
아이들은 늙으신 노모를 집으로 오시라하고 도망치듯 집을 나섰다.
퇴근 후 짐 정리를 하지 않고 멍하니 앉아 있는 나에게
마누라가 짜증을 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은 나도 좀 그렇지만 그렇다고 딱히 무얼
정리하고 챙길 것이 무엇이 있나?? 그냥 출발하면 되지.....

17 : 30 : 집 출발.
   일곱 살 둘째가 잘 갔다 오라며 손 흔든다.
   매달리고 그러면 마음이 아플테지만 이 놈 눈망울엔
   제 오빠와 신나게 놀 궁리에 앞으로의 시간에 기대감마저
   나타내는 것 같다.  그래 실컷 놀아라.... 엄마 아빠도 놀테니.
   평소 같으면 20분이면 고속도로 초입에 도착을 하는데
   얼마전 롯데 백화점 오픈이후로 교통사정이 엉망이다.
   약 2시간이 걸렸다. 초반부터 엄청 열 받는다.
   롯데 이전에도 그 자리에는 향토 백화점이 영업을 했었는데...
   난 도저히 그 이유를 이해 못하겠다. 마누라도 같은 기분인지
   둘이 내린 결론은 항상 같다.-- 우린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어울리기 힘든 불순물이다.-- 씁쓸하다.

22 : 40  : 덕산 주차장 도착
   도착이 너무 늦다. 지금 이대로 새재로 해서 치밭목으로
   오르면 새벽 1시경이 될 것이고 그러면 산장에서 잠 자는
   이들에게 너무 피해를 준다 싶어 서너시간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자기로 했다.

담날 02 : 30  : 택시 대절하고 새재로 출발
   찌뿌둥한 몸을 뒤척이며 배낭을 하나로 만들고 나머지는
   차 안에 놓아둔 체 새재로 출발했다.

03 : 00  : 입산
   보름이 갓 지나 달이 아주 밝다. 굳이 랜턴 없이도 운행이
   가능할 정도이다.
   아무래도 야간 산행은 집중도가 높아 천천히 걷는다 해도
   평소보다 빠르기에 뒤에서 '천천히'를 노래를 불렀다.
   산장에 빨리 도착하면 뭐 할 것이 있나?.
   5시 반에서 6시 사이에 도착하면 된다 싶어 천천히 걷는다.
   유평길과 만나는 삼거리에 도착하니 너무 빠른 것 같다.
   쉬엄쉬엄 가는데 어이구 벌써 무재치교가 나타난다.
   폭포옆 오르막에서부터 아내가 배낭을 메고 올랐다.
   허이구, 이렇게 좋을수가..... 처음이다. 맨 몸으로 지리산은.
   전망대에서 한참을 쉰다.
   저 별은 무신 별 그리고 또 저 별은 무신 별......
   아내는 참 열심이다. 나에게 열심히 가르쳐 주지만,
   난 듣는 그 순간 뿐 돌아서면 잊어버린다.
   아내는 그런 사실을 늘상 알면서도 열심히 가르쳐준다.
   내가 아니라도 좋고 내가 없어도 좋은 다만, 자신의 만족에
   기쁨에 별을 헤아리고 들꽃을 챙기고 나무들을 어루만진다.
   삼태성의 오리온 자리를 그렇게 선명하게 본 적은 없었다.
   일주일 전 아내와 같이 경주 마라톤에 참가했다.
   난 하프, 아내는 10K. 열심히 재미나게 뛰었다.
   난 목표치 2시간을 넘겨버렸고 아내는 첫 참가에 1시간 1분.
   하지만, 기록상으로 아내와 난 실격처리 되었다.
   챔피온 칩이 서로 바뀌어 버렸던 것이다.
   뭐, 까지껏 아무렴 어때 재미나게 뛰었는데.....
   11월 말에 하프 경기 한 번 더 참가하고 내년 3월
   서울 동아마라톤 부터는 풀 코스에 도전을 해 봐야겠다.
   주위 가까운 이들이 자꾸 바람을 넣는다.
   철인 3종 경기에 도전 하자고.....
   솔직히 곰곰히 생각해 보면 과연 내가 철인 3종 경기를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고,
   술, 담배 끊고 열심히 연습만 해도 가능성이 20% 내외인데...
   일주일에 최소 두 번 이상의 술자리를 무슨 수로 피할 수 있을까.
   하기사, 어떤 핑계가 없을소냐 마는....

05 : 10  : 치밭목 산장 도착.
   사위는 어둡고 바람은 서서히 날카로워진다.
   아무도 일어나는 이 없어 산장 안으로 들어가진 못한다.
   샘터에 가서 물을 길어와서는 조심스레 안쪽 취사장으로 갔다.
   내실 스텐드 뒤쪽에 바우(?) 혹은 치순이가 낑낑댄다.
   라면을 끓여 먹는 중 달그락거리는 소리에 뒤쪽 방에
   잠든 이가 부스럭거리며 일어났다. 미안타. 조심했는데.
   또 다른 남자 3명이 기상하여 아침을 준비한다.
   6시가 조금 지나자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든다.
   일출이다.  아주 선명한 것이 보기 좋다. 아내와 함께.
   3명중 한 사람이 큰 소릴 내 지른다.
   좀 있자 아니나 다를까 민 대장이 '누구야 무식하게' 하며
   문 열고 나온다. 서로 반갑게 인사한다.
   아들과 같이 오지 않았냐고 묻는다.
   아들도 얼마 전에 민 대장이 보고 싶다고 했는데....
   두 사람이 서로 통하는게 있는가 보다.
   다친 다리에 안부를 묻자 이제사 걷는 것이 바로 되었다한다.
   이전에 다친 다리와 균형을 이룬다나??
   커피를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학교 다닐 때 사고 당한 것이며.....산에서 떨어져 똑 같이
   허리를 다친 두 사람이 마주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민 대장은 빙벽하다 떨어졌고, 난 까불다가 떨어졌고.

08 : 40  : 산장 출발.
   아내가 빨리 출발하자고 눈짓을 보낸다.
   시야에서 산장이 사라지자 아내에게 배낭을 맡긴다.
   두 팀을 만났다. 그냥 지나가지 않고 입을 댄다.
   ' 아!!, 지금 하중 훈련 중입니다.'
   서둘러 황금능선으로 숨어버렸다. 이제는 사람 없겠지....
   아내는 배낭을 메어야만 산행하는 기분이 난다는데
   별수 없지.....또 그런 소원 들어주는거야 아주 쉽기도 하고.
   발 아래 중산리 자연 학습원이 내려다 보이는 바위에서
   안내원에서 올라오는 사람과 만난다.
   이 후의 길은 마치 낙남정맥을 하는 기분이다.
   키를 넘는 조릿대 터널을 통과하고 진달래 군락을 통과하고.
   조릿대 터널을 통과할 때 키 작은 아내는 수월하지만
   나에게는 어중간 한 것이 곤혹스럽다.
   발치의 부러진 나무 둥치에 정강이 뼈 부근이 상처투성이로
   변한다. 진달래의 낭창한 가지에 귀볼이며 뺨을 몇 차례
   얻어 맞자 성질이 난다.
   천왕봉이 점차로 멀어지고 구곡산이 다가선다.
   첫 산행이라 바위에 올라 능선을 살피니 아무래도 이상하다.
   구곡산에서 뻗어 내린 능선과 지금의 능선이 엇갈리는 같다.
   마음속으로 왼쪽을 되뇌이며 걷다보니 150도 왼쪽으로 튼 길이
   나타난다. 직진을 하면 중산리 인 것 같다.
   구곡산이 가까워 질수록 짜증스런 마음이 생긴다.
   어느 놈들이 안내 산행을 했는지 비닐 테잎을 나무에 걸쳐
   놓은 것이 상당한 능선에 걸쳐 내 버려져 있다.
   처음엔 공사가 있는 줄 알았는데.....
   아마 그 비닐 때문에 그 길이 나에게는 더욱 더 낙남 정맥
   같았나 보다. 이 산 저 산 파 헤쳐져 엉망으로 망쳐진
   산을 지나면 어쩌지 못하는 맘에 짜증이 극에 달했던......
  
14 : 10  : 구곡산 도착.
   그냥 완주 한 것에 만족하자고 아내가 다독인다.
   저 멀리서도 보였던 광고판의 글자를 보자 아이러니컬하게도
   '자연 보호'이다.
   이제는 아내가 입에 거품을 물고 욕을 한다.
   쓸쓸한 기분으로 도솔암으로 내려서며 홍시 감을 따 먹고
   택시 불러 덕산으로 갔다.

20 : 40  : 집 도착.
   2시간 동안 자는둥 마는둥 차 안에서 잠을 잔 것 말고는
   12시간 동안 산행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는 지수 4Km전부터
   고속도로는 거북이 걸음을 하여 서마산까지 오는 동안에
   난 쏟아지는 잠과 싸워야만 했다.
   마라톤 준비 한답시고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워 물었다.
   서마산을 지나서자 부산까지는 정말 날랐다.
   시속 130km 이상으로 내 달리니 잠은 사라지고 집에
   도착하니 말똥말똥하다.
   샤워하고 맥주 2병에 양주 몇 잔을 마시고 난 후에야
   잠이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