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나발루산 등정및 코타 키나발루 여행기

벌써 과거로 흘러가 버린 꿈같았던 키나발루산 등정을 기억이 좀더바래기 전에 정리해야 겠다 싶어 간략하게 정리해 보고자한다. 사실힘들었던 기억은 이미 많은 부분잊혀져 다시한번 오르자고해도 서스럽없이 따라나설수 있겠다고 생각되지만 정상등정후 하산하면서 느낀것은 우리가 어떻게 이렇게 먼길을 올라왔던가  새삼스럽기도하였고 고소증으로 인하여 머리가 아팠던 일을 생각하면 키나말루산 등정은 그리 만만했던 것만은 아니었다는 생각이든다.

7월 27일 06시에 김해공항에 집결한 대원 10명은 7시발 출발  국내선으로 인천공항에 도착 국제선 터미날의 말레이지아 항공 체크인 카운터에서 탑승수속후  코타키나말루행 11:30 분 비행기에 탑승했다.  코타키나발루에 도착후 현지한국인 가이드와 합류하여 버스로  약 80km를 이동하여 키나발루산 근처의 로즈케빈이라는 중국식여관에 짐을풀고 저녁식사를 했다. 가는도중 내내비가 뿌렸는데 구름사이로본 바위덩어리로된 키나말루산의 모습은 실로장관이었다. 서울에 서 출발한 혼성여행팀 7명과 같이 한조로 행동하기로했는데 그들의 명단은 공여사, 어여사, 조씨 아가씨, 차씨아가씨, 상주댁아가씨, 노씨아가씨, 월산동아저씨등이었다.  이분들은 이번여행 내내 끊임없이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여  우리를 즐겁게해 주었다.  어쨌던 첫날 저녁식사때부터 비타민C-1의 위력은 대단해서 모든대원들을 행복하게했다.  첫날 반주삼아 1.5병을 소모했는데 만약 고소증에대한 가이드의 엄포가 없었더라면 2병은 충분히 비웠으리라고 추측된다.

7월 28일   7시에 기상하여 아침식사후 도시락 싸가지고 국립공원 사무소로 버스로 이동하여 입산 신고및 가이드3 명을  배정 받고 9:30분 등산 시발점인 발전소옆 게이트를 통과하여 등산을 시작했다.  대원들은 대단히 즐거워서 모든지나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Hi! Hellow! Apa Kabar!(말레이지아 인삿말)  신기하게도 모든사람이 인사에 웃는얼굴로 대답을 한다.  여기서도 산에오르는 사람들끼리는 국적에 관계없이 친구가 된다.  그중의 한명인 노랑머리아가씨에게 언제 출발했냐고 물어보니 새벽 3시쯤 라반라타 산장에서 출발하여 정상등정후 하산하는 길이라고한다. 얼굴에는 정상등정의 만족감과 자부심이가득했다.  등정은 예정보다 조금 빨라서 12시 못미쳐 중식터인 라양라양에 도착 볶음밥과 닭튀김으로된 점심식사를했다. 출발지에서 중간 기착지인 라반라타산장 까지는  화장실과 음료수가 구비된 7개의 휴게소가있어 산행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등반중인 사람들은 각양각색의 국적을 가진사람들인데 그중 유럽인들이 다수를차지하고 그중에서도 영국사람이 많았다.   3시 40분 우리들의 숙소인 Waras 산장에도착하였다. 4시가 되니 빗줄기가 시작되더니 기온도 내려가고 침대에 누워 있으려니 이가 딱딱 마주치며 떨렸다.  기후가 열대인지라 어느곳에도 난방시설은 없었다.  천둥번개를동반한 비의양은 굉장해서 함석으로된 산장지붕은 요란한 소리를 내고 중간중간 구름이 걷히는 사이로 보이는 키나발루산은 수십군데의 폭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키나발루산은 산전체가 화감암덩어리로 이루어져 비가오면 그즉시 폭포처럼 흘러내려 버린다고 한다. 그러고보니 어제멀리서 보았던 키나발루산의 흰빛은 얼음덩어리가  아니라 장엄한 폭포였던 것이다.  라반라타산장에서 저녁을 먹고 새벽의 정상등정을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이곳에서 쓰이는 모든 보급품은 하나하나 포터들이 등짐으로 져올리는 것이나 가격은 크게 비싸지않다. 두명의 어린대원은 고소적응 문제로 상당히 괴로워서  저녁식사도 못했다. 

7월 29일 02에 기상하여 랜턴으로 무장하고 정상을 향해서 출발 했다.  랜턴의 불빛이 꼬리를물고 산정상으로 이어지는 광경은 장관이었다.  엇저녁에 언제비가 왔었나 싶게 밤하늘에는 별로 가득했다. 별은 많지만 별로 반짝이는 것같지는 않다. 라식수술의 영향인가보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다른사람눈에도 그렇게 보인다고한다.  하늘의 기류가 많이흘러야 별이반짝이는걸 까.  산정상옆으로 삼태성이 비스듬이 걸려있다.  랜턴빛따라 별빛따라 가쁜숨 몰아쉬며 화강암 깔깔한 길을 따라 걸으니 별빛은 점점 빛을 잃고 몇몇 밝은 행성들만 남았다 싶더니 동쪽이 점점 밝아왔다.  여기는 고도가 높아서 그런지 이끼가 자라지않아 바위가 미끄럽지않다. 정상에도착하니 여명이 밝아왔는데 그모습은 일찌기 보지못한 장엄함 그자체였다.  정상에는 그장관을 보기위해 전세계에서 온 등산가들로 복작거렸다. 정상인 Low’s peak뒤쪽은 끝이 없는 것같은 낭떠러지로 되어있어 보는이로 하여금 가슴이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대 누군가가 말했다. 규모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구나.  4,099m의 키나발루는 우리가 처음 접해보는 새로운 세계였다.  정상에서 잠시머물다 6시 30분경 하산시작하여 라반라타산장에 도착하니 8시 가 다되었다. 산장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9시 10분경 하산시작하였다. 하산시간에 쫒겨 산장청소를 하지못한점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여기서는 모든쓰레기를 한군데 모아서 포터들이 관리사무소로 가지고 오게되었는데 재활용 소각용 음식물 쓰레기로 구분하여 분리수거를 했으면 더효과적으로 산을 관리할수있지않을까 생각된다. 가이드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여기의 모습은 십년 전과 바뀐 것이 없다고 한다.  그만큼 자연이 있는 그대로 보존된다는 뜻이리라.  12시에 산행출발지인 발전소에 도착하여 30분정도 버스를 기다렸다가  첫날 묵었던 로즈케빈에서 점심식사를 했다. 비타민 C-1을 곁들었음은 더말할나위도 없다.  식사후 코타 키나발루 시내로 이동 하여 비버리 호텔에 여장을 풀었다.   호텔에서 전열을 정비하고  식사를 위해 한국할머니가 경영하는 한국식당에서 순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보통 외국에 있는 한국식당의 맛은 약간 현지화되어 있는 경우가 있으나 여기는 매운 고추에 막장등 순토종 한국식으로 되어있어 한국사람들의 입맛에 맞았다. 집떠난지 며칠되었다고 이렇게들 김치를 반가워하는지 모르겠다  싶을 정도로 약20분만에 모든접시를 비웠다. 이야기좀하면서 식사를 즐기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불고기 쌀밥 김치앞에서는 우이독경이 되고말았다.   식사후 비버리 호텔 705호에서 한국에서 올때 가져온 맥주 1박스로  간단하게 파티를 열었다.

7월 30일 호텔 부페에서 우아하게 식사를 마치고  수영복 오리발 챙겨서 사피섬으로 출발했다.  스노클링 으로 물고기들과 그야말로 어영부영 바닷속을 거니는데  이는 숫제 우리가 열대어 어항에 들어와 있는듯 각종 형형색색의 열대어들이 무리져헤엄치고 바닥은 각종 산호초들로 장관을 이룬다.  열대어들은 사람을 두려워하지않고 사람주위를 떼지어 맴돈다. 아무리 멀리 헤엄쳐나가도 물은 미지근 쩝쩝하여 차다는 느낌은 전혀없다. 보통 깊은 바닷물은 시퍼렇고 때로는 컴컴한게 사람으로 하여금 공포를 불러일으키나 이곳의 바다는 전혀 그렇지않다.  대원 10명전원이 바나나보트를 탔는데 예고없이 뒤집어지는 바람에 입벌리고 떠들던 모씨는 물을 잔뜩 먹었다. 방귀 길들자 보리양식 떨어진다고  바나나보트에 익숙해질만하니까  시간이 끝났다.  파라세일링은 바나나 보트만큼 재미없었는데 왜냐면  남들이 물머고 괴로워하는 것을 보지 못하기때문이었다.  파라셀링때문에 나간 까마득히먼 바다한가운데서도 바닷물은 미지근했다.  섬에도착하자말자 시원한 맥주를 끊임없이 사다날랐는데 여기는 현지공장을 가지고있는 칼스버그가 시장을 독점하고있었다.  현지인요리사 4명이 준비한 해산물 바베큐는 가히 일품이었는데 여기 비타민 C-1을 곁들이니 너무너무행복했다는 말밖에 다른 적절한  비유를 찿지못하겠다.  휴대폰전화까지 걸려오지 않으니 그행복감이야 이루말할수 있었겠는가.   우리가 섬을 떠날때쯤 산위에 살던 원숭이 가족들이 내려와 사람들이 먹다남긴 음식으로 가족들끼리 식사를 한다. 여기서도 얻어 먹기 부끄러워하는 원수이들은 많이굶어 죽는다나.  아쉽지만 시간이되어 호텔로 돌아와  호텔풀장에서 못다한 수영을 즐기고  식사를 위해 신선로 전문식당으로 갔다.  신선로란게 한국고유의 음식인줄 알았는데 중국에서온것이라나.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식사를 많이 남겼다.  7월 31일 오전은 원래 자유시간인데 화이트워터 래프팅이 유명하다고하여 래프팅을 가기로 하였다가 의견이 일치되지않아  부득이 취소했다.  기대를 잔뜩하고있던 모씨는 실망의 빛이 얼굴에 가득했다.  9시반경 호텔로 돌아와 맥주한잔할곳을 찾다가 레스토랑에 가서 짧은 실력으로 비어를 주문하니 못알아듣는지라 칼스버그 주세요하니 큰잔에 시원한 맥주를 가득 따라 나온다.  다음날 새벽 첫 티업을 위해서 일찍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7월 31일  5시에 기상하여  골프코스로 출발하였다.  미리예상은 하였던 터이지만 날씨가 너무덥고 햇볕이 너무강렬하여   기진맥진이다. 게다가 티샷장소에서  그린은 잘안보이지요 공은 맘먹은대로 잘안가지요 정말힘든 골프였다.   여기는 캐디가 없어 코스에대한 도움도 받을수 없으니 어려움은 더했다.  더구나 호텔에서 기다릴 대원들의 눈총을 생각하니 조금이라도 지체할수없어 끝나고 세수도않고 뛰다시피 바로출발하여 겨우 점심시간전에 호텔에 다다르니 모든식구들은 체크아웃후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점심은 중국식당에서 무슨무슨요리를 먹었는데 돼지고기란게 지금생각해도 개고기가아닌가 수상쩍다.  하여튼 모두들 맛나게 먹었다.
오후는 시내관광 시간  박물관, 민속촌과 회교사원등을 둘러보았다.  이곳의 중국사람은 14세기경 남송시절   몽골이 세운 원나라에 밀려서 이곳으로와 정착하였다고한다.  그밖에도 영국인의 침입 현지인들의 생활양식등이 일목요연하게 전시되어있었다.  마지막으로 이 도시에서 가장큰 쇼핑센터에 들러서  지하수퍼마켓에서 저녁에 마실 맥주와 마른안주를 샀다. 여기는 회교국이라서 그런지 술마시고 거리에서 비틀거리는 사람이 없다. 종교적인 율법이라는게 필요에의해서 만들어진것이 이렇게 더운날씨에 냉장고도 없던 시절 돼지고기 보관이 힘들었기때문에 식중독방지차원에서 돼지고기 먹는것을 금하고  술마시고 더위 먹을까싶어 술을 못마시게 하지않았나하고 생각해본다 .  그렇지만 우리 방문자들은 잘도 마신다. 비타민 C-1 1.8L x 5병을 마시고 비타민 B는 셀수없이 마셨다.  마지막 식사는 말레이식당에서 전통 말레이 식으로 했는데  모두들 5일 동안 적응이 잘되어서 그런지 잘도 먹는다. 
저녁식사후 콘도미니엄으로 이동하여 잠깐 휴식을 취하고 조금마시고 조금 떠들고 12시경 공항으로 출발하였다.  
8월1일 02시 우리는  말레이 사람들의 아름다운 검은 눈과 아름다운 웃음을 뒤로하고 우리들의 고향 한국으로 떠났다.


산행겸 여행일지를 쓴다는게 온통 먹는이야기만 쓴것같다.  우리가 아무리 돈이 있고 시간이있다한들 어떻게 이런 좋은 시간들을 가질수 있었을까.  그것은 순전히 같이간 사람들 덕분이라고 생각된다. 이번 여행은 자신을 돌아보는 좋은 시간이 되었을 뿐만아니라 선배 동기들의 고결한 인품들을 다시한번 확인한 아름다운 시간이되었다.  김해공항에서 헤어질때 느낀 아쉬움 이것이 정이었던가?
다음에 이런기회가 있으면 나는 무조건 간다. 도시락을 싸든지 안싸든지간에.
모두들 감사합니다.
Terma kasi …..(말레이어로 Thank yo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