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삼도봉 등산기

일시 : 2002년 3월 3일(일요일)
대원 : 김치근, 신양수, 이정희, 신종철, 양경희, 하정호

아무래도 지리산이라는 덩치 큰 산을 하루만에 갔다가 온다고 하니
약간 긴장 되는것도 사실이다.
더구나 길도 꽤나 멀지 않은가?
그래서 전날 인터넷상에서 삼도봉에 대한 간단한 정보를 수집하고
지도를 보며 운행일정을 나름대로 계획 해 보았는데 상당히 힘든 일정이
될 것 같았다.
오전 6시에 약속장소에 도착하여 3시간 넘게 차를 달려 피아골 초입에
도달하니 벌써 9시30분쯤 되었다.
빨치산들의 격전지로 유명한 피아골은 사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이었다.
항간에 계곡을 피로 물들이는 처절한 전투가 이곳에서 있었기 때문에 '피아골'이라고 하지 않을까 하는 잘못된 추측이 있어서 자료를 찾아 보았다.

"피아골의 어원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는 계곡 중간의 직전마을이란 지명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연곡사에서 2km정도 오르면 조그마한 마을이 나오는데 바로 직전(稷田)마을이다. 이는 오곡 중의 하나인 식용 피(稷)를 가꾸는 밭, 즉 피밭이 있던 마을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옛날부터 이곳에서 오곡 중 하나인 피를 많이 재배했다는 의미가 바로 피아골의
어원이다."

오늘의 빠듯한 일정을 의식해서 인지 다들 발걸음이 빠르다.
다행히 날씨는 걷기에 적당하고 경사는 완만하여 산행 시작은 쉼없이 흘러가는 계곡물 마냥 아주 경쾌하다.
이 기분대로 라면 오늘 10시간은 걸을 수 있을듯하다.
2시간 만에 피아골 산장에 도착했는데 예기치 않은 일이 생겼다.
입산금지 란다. 산장에서 중년의 남녀가 나와 휴식년제의 필요성에 대해 설교를 하며 -쉽게 말해 산도 쉬어야 하지 않겠냐는- 길을 막았다.
일단 발길을 돌린 것은 두사람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서였고 즉각, 지체없이 계곡을 우회하여 우리의 목표대로 방향을 잡았다.
누구보다도 자연 보호, 산을 사랑하는 우리가 말도 안되는 협박에 굴복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일말의 죄의식은커녕 지연된 30분의 시간이 아까운 것이 영 불만이다.
계곡을 오르다 보니 고로쇠 수액 채취를 하기 위해 나무에다 프라스틱 관을 박아 놓은 것이 종종 눈에 띄었다. 이 사람들이 우리들을 막은 것은 이것을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배신감+불쾌감, 다 뽑아 버릴려다 참았다.
예상대로 계곡은 길었다. 동부 경남의 고만 고만한 산에 익숙해진 우리인지라 가도 가도 끝이 안나는 계곡길에 점점 피로감이 더해 간다.
계곡 상단에서 점심을 먹고 지리산 주능선 상에 도달하니 이미 오후 2시20분 정도다.
삼도봉은 알다시피 경남,전남,전북이 만나는 지점이다. 그 표시석이 있는 지점에서 남쪽으로 뻗은 능선이 불무장등 능선이다. 주능으로 붙는 갈래능선인데 이것을 타야 우리 차를 세워둔 피아골 초입 직전 마을로 되돌아 갈수가 있다. 가야 할길이 멀어 길게 휴식을 취하지도 못 하고, 지리산의 장대한 능선을 제대로 감상하지도 못 하고 쫓기듯 능선으로 내 달았다.
지도상 불무장등은 1,446m의 봉우리 인데 봉우리 다운 봉우리가 없었다.
여기서 어원에 대한 각자의 의견이 다양하다.
不無長嶝 즉, "긴 능선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제법 긴 능선" 이라는 의견이 우세 하다. 맞는지 모르겠다.
다행히 남쪽 능선이라 그런지 눈은 거의 다 녹아 길은 별 어려움이 없었다.
지도하고 다른 길이 전개되어 다소간의 혼란을 빼고는 오후 5시경 마을로 되돌아 올수 있었다.

사실 산행 시작 전 길이 멀어 계획대로 될 수 있을까 걱정도 했다.
하지만 부산대 산악부의 전통과 역사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듯 그 저력도 쉽게 꺽이지 않았다.
산에만 오면 노루같이 겅충한 두 발로 샘 솟는 체력을 과시하는 양수형,
탁월한 감각으로 끊어진 길을 찾아내는 종철형, 언제나 듬직하게 상황을 종합하는 치근형, 그리고 충실하게 제 몫을 해내는 두 여성 대원들,
이 분들이 있어 산에 올 맛 난다.
근래 보기 드물게 힘든 산행이었지만 아주 만족한 산행이었다.
돌아오는 길의 섬진강의 낙조도 빼놓을 수 없는 볼 거리이다.

(지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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