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의 마지막 늦더위를 머리에 이고 보름전부터 내 주위를 돌며
지리산에 가자고 졸라대던 마누라와 둘이서만 지리산에 다녀왔다.
생각해 보니 처음이다.
단 둘이서 지리산에 가는 것이.......이럴 수가!!

마누라캉 지리산에 댕겨왔다.
여름 방학 끝나기 전에 지리산에 꼭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다, 마누라가.
어린 아이들만 집에 남겨 두고 산에 가는 것이 기분이 편하지 않다.
아이들을 강하게 키워야 한다고 마누라가 입에 거품을 문다.
'글쎄다!'
 8월 25일 토요일 아침 6시 30분에 차에 시동 걸고 출발한다, 지리산으로.
마누라가 평소와 달리 사근사근 대접하는 게 제 마음에도 뭔가 찜찜한 구석이 있나 보다.
 09 : 25  : 추성동 주차장
차를 주차 시키기 무섭게 웬 아주머니가 낫을 들고 다가와서는 주차비를
내라 한다. 그라고 코스는 꼭 칠선 계곡 선녀탕으로 가라 한다.
내가 미덥지 못한 듯한 얼굴을 하자 낫을 연신 흔들며 얘기를 하다가
어디론가 가더니만 국립공원 공단 조끼를 걸치고 주차증을 가지고 재 등장.
4,000원 ............ 마치 강탈당한 기분이다.
건너편 화장실에 공단 직원으로 보이는 듯한 남자 둘이 쪼그리고 앉아
우리 쪽을 쳐다 보고 있다. 아침부터 재수 없게시리............

09 : 45  : 칠선교 수퍼.
국골로 방향을 잡고 오른다.
올해 지리산이 5번째이다. 우째 좀 뜸하게 왔다.
신년 산행과 1월말 그 두 번은 국골로 4월엔 친구들과 새재에서 어름터로,
6월에 역시 그 친구들과 초암릉에서 대성골로.
8월 지금은 마누라와 국골로.......난 국골 코스가 너무 좋다.
중반까지의 계곡과 후반부의 헐떡거림이 그리고 사람이 적어서 좋다.
난 물을 많이 먹는다.. 아마도 다른 사람보다 세포에 물을 함유하는 공간이
아주 큰가 보다.그래서 물 없는 코스가 좀 부담스럽다.
근데, 얼마 전 한 작대기 하러 갔을 때 물을 벌컥벌컥 마시는 나를 보고
동행한 사람 왈 : '작대기 못하는 사람이 원래 물을 많이 켜...답답하니깐'
한 대 패 주고 싶었지만 젊은 내가 참아야지...
사실 그 날 OB 티를 좀 받긴 받았지...그 놈의 공이 맘대로 않된다 말야.

초입에 야생동물 보호로 출입 금지 표말이 서 있다.
양심상 잠시 고민하는 시간을 가지고 기냥 통과.
잠자리가 알을 낳는 순간 마냥 계곡을 살짝이 건너는 지점에서 계곡에 손을
담근다.  벌써 손 끝에 '싸~~' 함이 묻혀 난다.

10 : 25  : 계곡 끝 지점.
 퍼 질러 앉아서 라면을 끓여 먹는다.
귀엽게도 마누라가 다 한다. 난 그냥 앉아서 버너에 불 붙이고 먹기만 한다.
마누라 덥다고 윗옷을 벗어 제친다.
아이고 민망해라.
마지막 젓가락 짓을 할 때였다. 뒤 쪽 산사면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혹시 곰 아냐' 하고 마누라가 말 한다.
그 순간부터 입맛이 싹 달아나 버린다. 갑자기 춥다.

11 : 00  : 출발.
 헐떡거림의 경사면에 붙는다.
보폭은 작지만 꾸준히 걷는 마누라 뒤를 따르자니 너무 힘든다.
나의 숨소리 온 산에 진동하건만 마누라의 숨소리는 전혀 들리지 않는다.
1/3 정도 올라 온 지점에 쓰러진 나무 둥치에 앉아 쉼을 쉰다.
할딱거린 후에 피워 문 담배 맛.    참 좋다.
에구 근데 옆에 개똥 같이 생긴 파란 분비물이 있다.
개가 여기까지 와서 똥 누고 갔을리는 없고 대체 누구 것이지???
사람 똥으로 보기에는 크기나 놓여진 위치로 봐서 아니고
자세가 엄청 불안정 했을텐데??
이것 참....맛을 볼 수도 없고 맛을 본다고 해서 알 턱도 없고......
그 때 오른쪽 바위 뒤에서 좀 전과 비슷한 소리가 들린다.
또 추위가 엄습해 온다.
또 1/3을 헐떡거리며 올랐다.
나무 사이로 초암릉이 가깝게 다가와 보인다.
방뇨하면서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게 너무 좋다.
마누라는 방뇨하면서 '어머, 일엽초가 있네' 한다.
역시 남자와 여자의 높낮이 차이가 여러모로 다른 결과를 낳는다.
아주 푹 쉬어 버렸다. 더 쉴 수도 있었으나...........
또 그 소리가 들린다...아흐....정말 미치겠군....
대체 저 놈의 정체가 뭐야??!!

13 : 35  : 능선 도착.
마누라는 간 밤에 잠을 못 잤다며 침낭 속으로 들어가 버린다.
커피를 끓이는 사이 마누라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린다.
인스턴트 원두 커피지만 향도 그런대로 괜찮고 맛도 좋다.
심심해서 이것 저것 군것질 하다가 조망이 좋지 않은 곳이라
딱히 할 것이 없다.
번잡한 곳이라면 어떻게라도 시간을 죽일 수 있지만 간간이 하봉쪽에서
들리는 듯한 '야호' 이 외에는 새소리, 바람뿐이다.

15 : 00  : 능선 출발.
너무 늦어질 것 같아 마누라 깨운다.
낮잠을 한 시간이나 자다니......커피 끓여 주고 마누라 다독인다.
원래 계획은 국골로 올라와서 칠선으로 내려 가는 것이였으나,
낮잠을 자는 관계로 늦어졌고 그리고, 칠선에서 비박을 한다는게
내년 말까지 휴식년제로 묶여 있는 곳을 간다는게 양식있는 사람으로서
할 일이 아니고, 예의 그 이상한 소리도 맘에 걸리고........
그러니 독바위 들렀다가 어름터로 내려가자고 꼬신다.
그리고, 내일은 하동쪽으로 놀러 가자고......
지난 4월에 독바위 쪽으로 갈려다가 어름터로 빠지고 말았는데
이 번에도 그랬다. 난 아무래도 하산 하는 것이 어렵다.
나뭇닢 사이로 건너편 능선에 독바위가 보인다.
이왕 이 만큼 왔으니 그냥 내려가자고 꼬득여도 마누라는 'back' 만
외친다.
아....정말 싫다.
허덕거리며 왔던 길을 되짚어 오른다.
길을 찾고 독바위로 향하는데 산죽이 정말 장난이 아니다.
손과 발로도 모잘라 온 몸으로 헤치며 나아간다.
작년 여름 혼자 이 곳에 와서 포도를 먹었던 작은 바위가 눈에 띈다.
그 때도 뒤쪽 산죽 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났었지.
난 아무래도 하산과 소리에 약한가 보다.
독바위에 오르자 시야가 탁 트인다. 시원하다.
마누라는 '어머,좋다' 를 연발한다.
집에 전화를 하니 아들놈과 딸래미 재미나게 게임한다고 빨리 끊자 한다.
왔던 길을 되 돌아 어름터로 내려선다.
뱀이 많다.  한 놈은 발자국 소리에 놀라 작은 나무에 기어오르다
중간에서 그만 떨어져 버린다
뱀, 너가 나를 무서워 하는구만  난, 오히려 너가 더 무섭다.
계곡을 만나자 목욕이 하고 싶어 거슬러 올라간다.
오늘 전혀 사람을 만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숨어서 목욕을 해야지.
마누라도 할 것이니깐.    시원타.

20 : 00  : 추성동 주차장 도착.
가게에서 맥주 한 잔 마신다. 아이고 이렇게 맛난 맥주는 처음일세.
백숙에 마누라는 술 한잔 더 해야한다며 동동주를 시켜서 혼자
다 마셔 버린다. 난 운전해야 한다며 구경하란다.

22 : 30  : 밤머리재.
오늘이 칠월 칠석. 어둠 속에서 마누라는 이건 무슨 별 저건 무슨 별.
하지만 난, 잠만 온다.
희끄무레한 것이 은하수란다.
아이고 목이야....머리를 바로 세우는 순간 남쪽 하늘에 별똥 하나가
떨어진다.
대원사 들어가는 삼거리 지나자 모텔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을 많이 다녔지만 여기에 모텔들이 있는 것은 오늘 처음 알았다.
재미난 산행이였던가(?).......그런대로 겐찮았다.

담날....내원사 구경하고 11월 첫째주 황금능선 타러 오자 한다.
10월 말에 경주 마라톤 하고 나서 뭔 힘이 있다고 .... 내 팔자야.
안내원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과 한 상자 샀다.
청학동 구경하고 하동 가서 재첩 사 먹고 부산 돌아오는 길이
꿈이였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