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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지리산 토끼봉 산행기


글쓴이 : 윤정미 조 회 : 40 글쓴때 : 1999/10/21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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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 산행일자 : '99.10.17(일)
ㅇ 참 석 자 : 박만교,신종철,하정호,강양훈,윤정미
ㅇ 산행코스 : 하동칠불사-범왕교-참샘-토끼봉(1533m)-하계재
-범왕천-목동

가을 지리산에 사람좋은 선배들과 함께 간다니 며칠전부터 나혼자 괜히 맘이 바빴다. 산행이 결정되고 바로 기온이 뚝 떨어져 겨울같이 차가운 기운마저 느껴지는데 더 추울 지리산에 마땅히 입고갈 등산복도 없고 해서 맘먹고 등산장비가게에 가서 뜨뜻하게 보온시켜 줄 것 같은 걸로 옷도하나 장만하고 출발전날인 토요일에는 다음날 새벽같이 출발할 것이라 도시락반찬이랑 과일이랑
찐계란이랑 만반의 준비를 갖춰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잠시 깜박 잠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떠져 머리맡은 더듬어 시계를 보니 벌써 3시40분이었다. 4시쯤 일어날 계획이었으니 20분은 더 잘 수 있다 싶어 잠깐 눈을 붙였는데 잠결에도 뭔가 몹시 잘못되어가고 있는 듯한 불길한 예감에 눈을 번쩍뜨고 보니 칠흑같아야 할 창밖은 어느새 부옇게 밝아오고 시계를 보니 5시40분이었다. 5시에 약속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설마 이게 꿈은 아니겠지 하며 눈을 부비고 다시봐도 역시 어김없는 5시40분이었다. 그 허무함이란..
그 날을 위해 그렇게 심적,물적(?)으로 준비를 했는데,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일단 영문도 모르고 장시간 기다리다가 어디론가 가고 있을 선배님들에게 전화를 해서 못가게 되서 죄송하고 잘 다녀오시라고 했다.전화를 끊고 수습이 안되는 맘을 가라앉히고 있는데 불현듯 좀 무리를 하면 먼저 출발하신 선배님들과 합류할 수도 있을 것도 같다는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다시 전화를 해서 진영휴게소에서 좀 기다려주시면 곧 합류하겠다고 말하고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력으로 달려서 휴게소에 도착해보니 선배님들이 고맙게도 거기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산행팀에 합류를 해서 몽매간에도 그리던 지리산을 향해 떠날 수 있었다.
일행은 박만교,신종철,하정호,강양훈선배님들이었다. 억지로라도 가겠다는 나를 싫은 소리 않고 기다려준 선배님들한테 참으로 미안하고 죄송스러웠다.

이른 아침의 고속도로는 한산,날씨는 청명, 우리 일행은 룰루랄라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려 진주를 지나고 조용하게 펼쳐진 아침의 섬진강이 푸근하게 맞아주는 하동에 도착했다. 그 유명한 섬진강 재첩국이 우리의 위를 자극하고 있는데 간 밤에 과음을 하셨던지 강양훈선배가 일행을 재첩국집으로 이끌었다. 가을 햇살에 노랗게 반짝이는 논이 옆으로 그림같이 예쁘게 펼쳐진 한 재첩국집에서 모두들 후루룩 쩝쩝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 두 그릇씩 뚝딱 해치웠다. 난 잘 몰랐던 사실인데 소문에 의하면 신종철 선배는 그것이 그날의 세번째 아침식사라는 말이 있다. 그러나 신종철선배가 전혀 그런 내색을 않고 있었으니 그 진위는 알 수가 없었다. 섬진강가 재첩국집에서 잠시 쉼표를 찍은 우리일행은 든든해진 배를 안고 열심히 달려 등산 시작점으로 잡아놓은 칠불사에 금새 도착했다. 칠불사로 가는 동안 역사(?)에 관심이 많다는 강양훈선배가 3000원을 주고 산 지리산 지도를 펼쳐놓고 칠불사를 가리키며 그 이름의 유래에 대해 설명했다.칠불이란 가야가 신라에 망하게 되자 가야의 마지막 왕(이름은 잘 모르겠다)의 일곱왕자가 모두 그 절에 들어가 부처가 되었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라그랬다. 진지한 표정의 설명에 사람들은 모두 믿어주는 눈치들이었다.

등산로 입구 한 옆에 차를 세워두고 각자 복장과 장비를 다시 한번 점검한 뒤 우리는 드디어 지리산 산행에 들어갔다.
그날의 최고 지점은 해발 1533m의 토끼봉.
토끼봉에서 하계재를 넘어 하산하여 다시 출발점인 이곳 목동으로 돌아오는 것이 그날의 일정이었다. 부산에서 걱정했던 만큼 기온도 그렇게 낮지 않고 하늘도 청명하고 이상하게 다른 등산객들도 보이지 않아 고요한 가을정취에 잠겨있는 지리산의 품속에 푹 파묻혀 산행길에 접어들었다.
비록 차로 해발 300m쯤은 올라와서 산행을 시작했지만 역시 큰 산이라 오르막도 오랫동안 계속되는 것 같았다. 산 잘 타는 선배들에게서 혹 나 혼자 뒤쳐질까봐 안간힘을 쓰느라 내 숨소리만 더운 김을 뿜으며 정적에 싸인 숲속에 울려 퍼지는 듯하였다.
한참을 올라가니 참샘이란 곳이 나왔다. 이름 만큼 깨끗하고 맛있는 샘물이 나올거라 기대하며 샘터로 가보니 낙엽이 수북이 쌓여있는 물이 그릇에 담긴 것처럼 고여 있었다. 깨끗하지않다고 하니 산삼녹은 물이라고 어떤 선배가 말했다. 그래서 눈 딱감고 '건더기'를 걷어내고 한 바가지 퍼서 쭉 들이켰다.
모두들 출출한 듯하여 어제저녁에 삶아놓았다가 아침에 급하게 들고 나온 삶은 달걀을 꺼냈다. 몇개가 눌려서 묵사발이 되었지만 산속에서 삶은 달걀
먹는 맛은 역시 일품이다. 올라오는 동안은 몰랐는데 움직이지 않고 한자리에 계속 있으니 얼음같은 한기가 금새 몸의 열을 앗아가 버렸다.
참샘에서 잠시 쉰 일행은 발걸음을 재촉하여 토끼봉으로 향했다. 원래 수종이 주로 그래서 그런지 기대했던 단풍의 풍경은 나타나지 않고 춥고 건조한 날씨에 마르고 비틀어진 나뭇잎들이 제가 난 가지에 옹송거리며 간신히 매달려 바람이 불 때마다 사각사각 마른 소리만 내고 있었다. 잔가지가 많은 잡목숲은 좀 벗어나니 시야가 트이고 멀리 그 정상을 구름에 묻은 천왕봉과 세석평전이 웅장한 자태로 구비구비 능선자락을 거느리고 서 있었다.
올라가느라 벅찬 사람은 나 혼자밖에 없는지 선배들은 연신 얘기꽃을 피우고 있었다. 학교다닐때의 엄청났던 강행군 얘기며, 선후배 얘기들..
그래도 그 중 으뜸은 역시'변'얘기..
그 분이 누군지는 모르겠지만 텐트치고 야영만하면 꼭 텐트와 인접한 곳, 혹은 바로 앞에 예의 그'독수리'를 만들어 놓았다고..심지어 언젠가는 휴게소 화장실 앞에 텐트를 쳤는데도 역시 아침에 일어나보니 텐트앞에 어김없이 그 '독수리'가 텐트쪽을 노려보며 자리를 틀고 앉아 있더라고..
거의 확실한 용의자(?)에게 물어보면 부인하긴 했다지만 잠결에 딴에는 멀리가서 눈다고 누는 것이 꼭 그 자리였던 선배님.. 누군지는 모르지만 지저분하기는 해도 귀엽다.^^

토끼봉까지 아직도 멀었는지 얼굴에서 더운 김이 솟아오르고 다리까지 풀리려 하는데 앞서가던 신종철선배가 토끼봉에 다왔다고 얘기를 하였다.
그 말에 용기를 얻어 풀어지려는 다리에 다시 힘을 모았다. 12:00 토끼봉
도착. 해발 1533m.
정상에는 헬기장이 만들어져 있었고 원주민(?)인 듯한 총각 둘이 우리보다
먼저 도착해 있었다. 한 명은 짙은 색 츄리닝에 긴 장화를 신고 있었는데 송이를 채취하러 올라왔다고 그랬다. 장화를 신고 어떻게 산에 오르냐고 하니 그게 등산화보다 훨씬 편하다고 하면서 장화의 편리성에 대해 한참 얘기를
했다. 송이 버섯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은 듯한 강양훈선배가 어느곳에 가면 송이를 채취할 수 있느냐고 물으니 그 장화신은 총각이 송이는 비온 뒤 3시간쯤 지나서 솟아나며(무슨 나무 밑이라고 한 것 같다.) 7시간쯤 지나면 상품가치가 가장 놓은 상태가 되고 그 전에 사람이 그 주변을 지나면 죽어버린다고하며 우리가 지나온 길은 송이가 다 죽었을 것이니 그리고 안가야 되겠다는 등의 말을 하였다.
우리일행은 그 총각들에게 다시 길을 물어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길을 걸어 내려오며 점심먹기에 적당한 장소를 물색했다. 강양훈선배는 가장 많은 장소를 건의했으나 점심식사 자리에 대한 풍수지리적 감각이 남다른 듯한 두 선배(박만교,신종철)에게 번번히 거부당했다. 그러다가 겨우 숲속에 볕이 잘 드는적당한 장소가 발견되어 거기다가 싸온 도시락들을 풀어놓았다.
5명중 3명만 도시락을 싸왔는데도 모두 먹고 남을 만큼 넉넉했다. 왁자지껄(밥먹을때만 되면 늘 그렇게 소란스러워진다고 하정호선배가 그랬다.)하게 밥도 먹고, 약(?)도 먹고, 커피까지 끊여 마셨다. 뭐든 그렇지만 역시 산에서 먹는 커피맛은 정말 좋다. 식사를 마치고 아침에 볼일(?)을 못 본 사람들은 적당한 장소를 찾아내서 '해우(解優)'를 하고 든든해진 배와 느긋해진 발걸음으로 다시 하산을 시작했다.
하산길에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제법 눈에 띄고 길 옆으로 펼쳐지는 지리산의 모습에 눈을 빼앗겨가며 한참을 내려왔다. 길은 평탄했지만 생각보다 오랜시간(약3시간)이 경과된 후 감나무가 드문드문 서 있는 목동마을에 들어 섰다. 산행중에도 야생 감나무나마 보이는 쪽쪽 다가가서 시식가능여부를 확인하던, 하루에 아침세끼를 해치운 신종철선배가 드디어 마을에 도착해서 잘 익은 홍시를 '채취(?)'하는데 성공했다. 덕분에 우리도 먹음직스럽게 잘 익은 홍시를 아주 달게 먹어 볼 수 있었다.
이렇게 지리산 산행도 끝나가려하는데 그날의 클라이막스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 차를 두고 온 처음 산행시작지점까진 거리가 꽤 되므로 지나가는 차가 있으면 얻어타고 거기까지 갈 참인데 마침 차가 한 대 우리 곁을 지나 그 방향으로 가려하고 있었다. 하정호선배와 강양훈선배가 차를 세우고 부탁을 하려고 하는데 운전석에서 튀어 나온 말.."니 양훈이 아이가?"..
"어..아재.." 그 분은 강양훈선배의 15촌 아재였다. 세상은 참 넓고도 좁은 게 맞는 것 같다. 그날 산행은 끝도 재미 있었다.


여기까지가 지난 10월17일 지리산 토끼봉산행의 산행기입니다.
쓰다보니 한 2박3일쯤 다녀온 산행기를 쓴 것 같네요..처음이다 보니 긴장(?)해서인지 말이 더 길어졌나 봅니다.
하여튼 그날 산행에 함께하셨던 분들 모두 수고하셨고 앞으로도 더 좋은 산행의 기회를 많이 가졌으면 좋겠다는 말로 이번 산행일지를 끝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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