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 전에 다녀 온 산행을 이제 정리해 봅니다.
지금은 내수 부진으로 야근이 없기에 다 퇴근하고 썰렁+무시하기까지 한 텅 빈 공장에 혼자 당직 서고 있는 중입니다. 일이 없으면 바쁘지 않아야 하는데 어째 더 바쁘기만 합니다.
그저께 두타-청옥을 다녀 오면서 산에 안 간 (사실은 그 전날 백암산에 한번 더 갔었지만) 울산 회원들을 굳이 불러 내 저녁 식사 + 반주 하던 자리에서 산행일지 안 올리냐는 희태형의 확인 사살을 받기도 했기에 마침 잘 되었습니다.
* 산행기
일시: 2004. 2. 14. - 15. (1박 2일)
대상산: 울진 백암산 (1,004m)
대장: 박성배 (79)
대원: 이희태 (70), 김치근 (75), 신양수 (75)

부산에서 온 차는 문수구장 야외 주차장에 모셔 두고 Trajet에 승차. (이 차 참 좋습니다 – 변속 레버가 스티어링 휠에 있는 column shift 방식으로 원래는 7인승으로 설계되어 walk-through가 되는 차인데 세법상 디젤차는 승합으로 분류되어 어거지로 9인승 좌석을 짜 넣었습니다. 우리나라 공무원들! 휘발유 차는 7인승이 있습니다).
전번 산행기에는 이써타나와 그래이써 이야기를 했었는데 직업이 그런 모양입니다. 울산의 회원과 합류하려면 이 방식이 좋겠습니다. 두타-청옥도 이 방식으로 했고.
사전 연락도 안 했고 누가 뭘 준비해 왔는지도 모르지만 늘 하던 대로 서로 믿고 17:30 출발.
경주-포항을 거쳐 7번 국도를 북상. 참 어두운 밤길에 돋보기 쓰고 운전하시느라 과속 카메라에 안 찍혔는지 물어 보지 못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닌 한 4차선은 80km/h, 2차선은 60km/h.
싸고 맛있는 집 찾느라 가다 보니 거의 평해까지 다 가서 병곡 휴게소. 생각보다 맛있는 한식 부페로 늦은 저녁.
20:30 백암 온천 지구에 도착해 잘 방은 그런대로 잘 구했는데 1층 식당에서 먹었던 대게는 빵점.
다음 날 07:00 기상 (실제로는 더 빨리 깨신 분이 상당 수 있음-나이 탓인가?). 오랬만에 꺼내 보는 버너와 코펠로 아침을 준비. 4명이 각자 주섬 주섬 꺼내니까 중복되는 것 없이 필요한 건 다 있다. 오래 같이 다니면 대충 텔레파시가 통하는 모양이다.
차는 백암온천관광호텔 주차장에 두고 08:30 산행 시작. 입산금지 팻말이 보이는 곳으로 길을 잡으니까 영락 없다.
조금 가니 정상까지 4650m라는 표지가 나타난다. 정상까지 약 300-500m 간격으로 1번부터 12번까지 위치 표지판이 있으니까 편리하다 (이건 두번째 갔을 때 비로소 눈에 보였음).
완만한 경사길을 느긋하게 오르다 보면 꼬불꼬불한 급경사가 나타나고 이것만 오르면 능선길로 이어진다. 능선에는 무릎까지 빠지는 눈이 남아 있어 스패츠가 필요한 정도다. 오늘도 눈이 왔는데 3월말까지는 배낭 속에 아이젠과 스패츠를 넣어 두는 게 좋을 듯.
12:30 정상에는 강풍이 불고 있어 몸을 가누기 힘들어 조금 내려와 중계 시설 비슷한 곳 옆에서 점심 식사. 오늘이 생일이라 생일 떡을 가져 왔는데 행동식으로 생각하시라 하니까 오랜만에 들어 보는 용어란다. 다시 정상으로. 만세 3창하고 특별한 음료를 곁들여 또 간식.
남들 두시간 반 정도 걸리는 하산길을 표현 그대로 무식하게 한시간 반만에 내려 와서 온천행. 적당한 피로감 속에서 따뜻한 온천욕!
먹는 게 남는 거라 강구항 쪽으로 들어 가려다 人山車海에 놀라 다시 빠져 나옴. 유명한 포항 죽도 시장에 들러 회 한 접시. 백암산에서 한마리 3만원 받던 대게가 여기서는 대여섯 마리를 살 수 있다.
뒤에 앉아 비몽사몽간에 울산 도착. 죽도 시장 이후로는 시간에 신경 안 쓰고 내려 옴. 동래구 기준으로 9시 뉴스 볼 수 있을 거라 했으니까 울산에는 8시경 도착하지 않았을까. 즐거웠습니다.
* 백암산
산 보다는 온천으로 더 잘 알려져 있고, 거리상 서울/부산 모두 당일 산행은 곤란하기에 잘 알려지지는 않은 산입니다.
출발전에 급히 인터넷 뒤져서 사전 정보 수집을 꽤 했었는 데 지금 기억 나는 것은 춘양목이라는 쪽 곧은 소나무 뿐입니다. 뻥튀기를 좀 하는 사람들이 써 놓는 글을 보면 "금강산의 축소판", "울릉도까지 보이는...", "동해안에서 가장 먼저 보이는 일출이 장관", "깊은 계곡과 풍부한 수량", "높은 산에 걸맞는 적설량", "산과 계곡의 형세를 제대로 갖춘 산", "흙을 거의 볼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수림"... 등이 있는데 100% 맞지는 않겠지만 여하튼 산은 참 좋습니다.
높이가 1004m로 일대에서는 제일 높지만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고 마지막 한 구간만 빼고는 경사가 완만해 가족 산행 코스로도 좋다고 봅니다.
친구 부부와 함께 다녀온 두번째 산행 때(2/28-29)는 백암 폭포 코스로 내려 왔는 데 높지는 않지만 단아한 폭포를 볼 수 있었다는 것과 반대편 능선의 멋진 소나무들을 조망할 수 있다는 것을 빼면 별로인 코스입니다.
길 잃기 좋은 곳이 두 군데 있어 우리 일행도 결국 헤어져 덕신 쪽으로 내려 갔다 차를 얻어 타고 와서 다시 합류했고, 올라 오던 한 팀도 길을 잘 못 들어 내려 갔다가 다시 올라 오는 길이라고 하는 등 조금 혼란스러운 코스입니다.
백 코스의 지루함을 피하려면 선시골 쪽을 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보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고 출발지와 하산지가 달라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 온천
우리나라 법 규정상 온천은 대충 온도만 뜨뜻한 정도면 되는데, 국제기준으로는 유효한 광물질이 일정량 이상 함유되어야 하고, 그 기준을 통과하는 것은 백암 온천이 유일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모두들 물은 확실히 좋다고 하는데 워낙 찾는 사람이 없어 그런지 대형 사우나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초라하고 불편하기 까지 한 편입니다.
* 교통
7번 국도 따라 올라 가다가 평해에서 924번 지방도로 좌회전해서 12km 가면 되는데 덕신으로 갈라지는 곳의 표지판 각도가 약간 삐딱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특히 밤에). 백암온천 있는 곳의 지명이 온정리이니까 길잡이 삼으면 됩니다.
돌아 오는 길에 시간 여유가 있으면 강구항까지 연결되는 918번(지도에 따라서는 20번으로 표기)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 오는 것도 좋습니다. 한국관광공사 안내문을 옮기면
- 918번 지방도는 경북 영덕군의 강구항에서 7번 국도와 갈라졌다가 영해면 성내리에서 다시 7번 국도와 합류하는 도로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 중 하나로 손꼽을 만큼 아름답거니와 길가의 곳곳에 들어선 오징어 덕장과 아담한 포구의 정경이 매우 인상 깊다. 그 뿐만 아니라 도로의 굴곡도 알맞고 오가는 차도 많지 않아서 느긋하게 드라이브를 즐길 수 있다 - 입니다.
7번 도로와 다시 합류하는 곳이 영덕 대게로 유명한 강구항인데 식도락을 즐기려면 끝까지 오지 말고 적당한 곳에 들어 가는 게 주차하기 좋습니다.
* 숙박
처음 갔을 때(2/14-15)는 한적하기 그지 없어 2만원짜리 민박을 쉽게 구할 수 있었는데 두번째는 삼일절 연휴라 방이 없어 평해까지 되돌아 나와 물도 잘 안 나오는 꼬질 꼬질한 방에 3만원을 주어야 했습니다.
또 뭐 없나? 아쉽지만 순찰시간이라서 이만 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