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 상당히 많은 비
대원 : 신종철,박만교,하정호,여만구

올해는 유난히 비가 많이 오는것 같다. 그것도 주말에.
우리같이 일주일을 열심히 일하고 일요일 하루 신선한 바깥바람 쐬면서
피로를 풀어야 하는 사람들은 여간 우울하고 갑갑한게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모처럼 R.C.하기로 결정하고 오랬동안 바위에 손 놓고 있은지라 만만한 릿지등반을 하기로 뜻을 모았다. 이름도 시원한 천성산 하늘릿지!
모두가 초행인지라 시작부터가 헸갈린다.
일단 양산 덕계 미타암까지 차를 몰아서 입구에 차를 대고 초입부분을 찾아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미타암에 올라서니 간간히 뿌리던 보슬비가 굵은 빗방울로 변해 퍼붓기 시작한다.
게다가 도대체 암장이 어디에 붙었는지 감도 안잡히니 이 나이에 무슨 얼어
죽을 바위냐, 이길로 내려가서 뜻뜻한 찜질방에서 푸욱 찌지고 싶은 마음이 나 혼자 생각 일까마는 다들 차마 입밖에 말을 꺼내지 못할뿐이다.
우리 산악회 전통이 우천불구, 계획대로 일정강행이 아닌가?
종철형이 집으로 전화를 해서 인터넷검색을 하도록해서 겨우 대강 위치를 알아내어 또 다시 어프로치 시도를 했다.
정확한 위치는 미타암입구 차를 댄 지점에서 약 5분거리 갈림길에서 우측 법수원으로 방향을 틀어 또 한 5분쯤 주의를 기울여 가다보면 좌측 산쪽으로 희미한 길을 발견할수 있다.
표식기가 없기 때문에 잘 살펴 봐야한다.

빗방울이 굵어졌다 가늘어 졌다 하면서 하염없이 비는 오고 덕분에 다들 물에 빠진 생쥐 꼴이다.
문득 누군가 오늘따라 학생때 생각이 많이 난다고 했는데,예전 학교 다닐때 하계 장기등반을 가면 꼭 장마철에 걸려 지겹게 비를 맞은 기억이 있다.
없는 돈에 일정을 빡빡하게 짜서 왔기때문에 비 온다고 계획을 취소 할수 없어서 판쵸우의 뒤집어 쓰고 무거운 배낭메고 산을 올랐던 기억이 나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더구나 비올때 암벽등반은 되새기기 싫은 기억이다.
바위를 잡은 손을 타고 물이 팔,복부를 거쳐 사타구니까지 비집고 들어올때 그 서늘함과 찝찝함은 겪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게다가 물에 젖은 바위는 평소 보다 훨씬 미끄러워 곱절로 힘이 드는 것이다.
오늘 어쩔수 없이 추억인지 악몽인지 되새김질 해야할 판이다.
피할수 없으면 즐겨라 했느니 주섬 주섬 안전벨트 차고 카라비너 걸고 암벽화 신고 자일 매고 종철형이 '출발!'하고 바위에 붙었다.
역시 종철형이 평소에 꾸준히 대륙암에서 열심히 갈고 닦은 실력을 오늘 맘껏 발휘한다.
가볍게 첫 피치를 통과하여 안착! 만교형도 어렵지 않게 오르고 다음은 10년만에 바위를 한다는 만구다.
우려 했던대로 쉽게 넘어서지 못한다.
근 30분이 걸려서야 올라서는데 오늘 고전이 예상된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바위라서 그런지 바위결이 상당히 날카로워 조심해서 잡지않으면 쉽게 손이 찍히고 베인다.
바위는 할때마다 매번 오만가지 느낌을 주는것 같다.바위에 붙기전 긴장감, 붙어서는 절망감과 후회, 그리고 올라섰을때의 안도감. 누구는 '익숙하게 오르는 기쁨'을 이야기 했지만 나는 여지껏 그런 느낌은 절대 없었다.
어쨌든 비겁하지 않을려고 부지런히 바위를 하곤 했지만 할때마다 항상 무섭고 힘겨웠다.
최근에 읽은 책에서 '지나간 모든 전투는 앞으로 다가올 전투 앞에서 항상 무효다.'라고 했듯이 나에게 암벽은 항상 낯설고 새로운 모습이었다.
겨우 겨우 꾸역 꾸역 한 피치 한 피치 오를때마다 옛날 그 느낌이 새록 새록 나는것 같다.
굳이 산노래 가사를 들먹이지 않더라도 나의 목숨을 매달고 있는 팽팽하게 당겨진 자일을 통해서 안간힘으로 그 자일을 붙잡고 있을 선배의 팔뚝에 돗아난 힘줄의 경련을 느낄수가 있고 소위 '자일의 정'을 체득할수가 있는것이다.올라서면서 확보 하고있는 만교형 한테 한마디 했다.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꼬?'

오늘은 정말이지 확실히 개기는 만구때문에 유난히 옛날 생각이 많이 난다.
항상 심하게 개기는 녀석이 한명씩 꼭 있었고 그놈 때문에 다른놈들은
사실 좀 편할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는 오늘 만구한테 고맙다고 해야 하겠다.
녀석이 없었더라면 아마 내가 더 힘 들었을테니까.

하늘릿지는 5~6M 되는 짧은 암벽이 한 4개 정도 연속되는 적당한 난이도의 전형적인 암릉이었는데 걷는 구간도 별로 없어 지겹지않고 비교적 깔끔하게 마칠수 있는 곳이다.
확보물도 비교적 잘 설치되어 있고 길이도 적당해 3~4명이 한팀이면 3~4시간이면 마칠수 있을것 같다.
오늘은 짙은 비구름과 개스때문에 경치를 볼수가 없었는데 아주 잠깐 개스가 걷힐때 주위 조망도 꽤나 좋았다.
우리 앞에 대구에서 온 한팀이 있었는데 여기도 초보여성대원 때문에 시간이 많이 지체 되었다.
한 30분정도 매달려서 오르락 내리락 하였지만 전진이 되지 않는다.
결국 기다리다 춥고 배고프고 해서 우리는 마지막 제법 난이도가 있어보이는 직벽구간을 우회하여 등반을 끝냈다.
배고프면 갑자기 짜증이 난다는 만교형의 부추김이 없었어도 다들 더 이상 비 맞으면서 바위에 매달리고 싶은 기분이 아닌것 같다.   
사람없는 법수원 처마밑 비를 겨우 피할수 있는 공간에다 밥상을 펴고 소주를 곁들인 늦은 점심을 먹었다.
 
모처럼만의 암벽등반이어서 안그래도 가슴 졸이는 판에 줄기차게 비까지 오고 일진이 사나울뻔 했는데 그래도  무사히 일정을 마칠수 있어서 우리 스스로가 대견하다.
평소에 안쓰는 근육을 많이 써서 그런지 온몸이 뻑쩍지근하고 손바닥이 얼얼하고 팔목은 뻣뻣하다.
하지만 묘한 가슴 뿌듯함과 함께 오랜만에 선,후배의 끈끈한 옛정을 묵은 자일을 통해서 느낄수가 있어서 좋았고 잠시 다시 옛날 학생때의 기분을 느낄수가 있어서 또한 즐거웠다.
다들 고생 많았고 다음에 날 좋을때 한번 더 와서 '익숙하게 오르는 기쁨'을 만끽하며 깔끔하고 뽀송 뽀송한 등반을 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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