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상산: 설악산 천화대
- 기 간: 2000. 7. 15 - 7. 17
- 참가자: 김치근, 김강태, 박만교, 강양훈, 하정호, 서정동, 김지성, 윤정미




감히...

"감히"라는 말을 써야 할 것 같다.
겁도 없이 설악산 천화대 릿지를 해 볼거라 달겨든 내 모양새를 말할 때 말이다. 가기전에는 까짓 가서 조금만 고생하면 되겠지하고 선뜻 동참하기로 했는데..
막상, 天上에서는 앞으로 천년이 넘도록 더 긴 시간동안 계속될 일이 없을 거라는 개기월식이 진행되던 7월 16일 저녁.. 릿지등반을 마치고 설악계곡을 막 벗어나 그날의 출발지점으로 도착한 나는 가슴을 쓸어 내려야 햇다.
그날 하루동안 내가 '저질렀던' 그 아찔했던 순간들이 떠올라서....

떠나기전,
설악산이란 말이 묘하게 가슴을 설레게 했다.
작년 가을 직원들이랑 함께 찾았던 12선녀탕 푸른 물줄기와 깊고 서늘한 계곡들의 기억, 몇년 전 겨울 입산 금지된 눈덮힌 대청봉으로 몰래 기어들어가 제 세상만난 듯 누비고 다니다 길을 잃어 두려움에 떨던 기억.. 거기다 하모선배가 적어논 글에서 천화대 릿지에 누워 바라보는 밤하늘 은하수 얘기까지
....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릿지..라니?
죄송하게도 부산대 OB산악회에 작년 연말 사상유례없이 YB경력없는 OB회원으로 가입을 허락받고난 후로도 거기에 감사할 줄 모르고 여전히 난 무식했다..
밧줄로 엮여서 가다가 한명이 한쪽 사면으로 추락하면 그 뒷사람은 반대편 사면으로 즉시 떨어져 주어야 한다는... 약간 '괴기'스러운 상식이 선배님들에게서 귀동냥으로나마 들은 릿지산행에 대한 내 사전지식의 전부였으니...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다.
그래서 난 결국 천화대릿지등반에 동참해 버렸다.

7월15일 토요일오후 4시30분 명륜동 지하철역..
모이기로 한 일행들이 하나 둘 모여 설악동으로 향한 가슴벅찬 출발을 시작하였다. 약간의 우여곡절(?) 끝에 새벽2시가 넘어서 설악계곡입구에 도착했고 산행시작시간인 새벽 5시까지 몇몇은 차안에서, 몇몇은 노천에서 달디단 잠에 빠져들었다.
온 천지가 희뿌염하게 밝아오는 새벽 5시, 나를 제외한 모든 분들은 십수년만에, 나는 생전처음으로 천화대릿지를 향한 대장정을 시작하였다.

코를 벌름거리며 신새벽 차가운 공기에 녹아있는 솔향기를 들이마시고 젊은(?)날의 기억들이 묻어있는 눈에 익은 산세에 얘기 꼿을 피우느라 언제 도착했는지도 모르게 일행은 날듯이 비선대를 지나고 있었다. 천화대 릿지가 시작되는 지점에서 전날 울산의 대형할인매장에서 구입한 즉석 김밥으로 아침을 먹고 싸온 오이와 과일들을 씻어 각자 배낭에 넣고 릿지등반을 위한 장비를 착용했다.
천화대 릿지 대장정 시작!

헉...!
이게 뭐냐.. 아침식사를 한 곳에서 얼마오지 않아서 왠 절벽이 눈앞을 턱 가로막았다. 다른 일행들은 주섬주섬 자일을 챙긴다, 암벽화를 신는다 하며 거기를 올라갈 태세들을 갖추고 있었다. 야 이거 장난 아니다 싶었다.
우리일행은 총 8명 , 다시 4명씩 2팀으로 나눠 등반을 시작했다.
우리팀의 TOP은 주로 김지성군이 맡았고 문제의 소지가 많은 나는 중간에서 올랐다.
'바위에 대한 감각이 있다'고 강양훈선배가 용기를 북돋워 주었지만 산행기간 내내 내가 끼진 '민폐'가 이만저만이 아니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가슴을 턱 막히게 했던 그 절벽을 무사히 오르고 난뒤 , 나는..
'일행이 밧줄에 엮여서 가다가 한명이 한쪽 낭떠러지로 떨어지면 나머지 일행은 반대편 낭떠러지로 떨어져야하는...' 마치 공룡의 등줄기같은 능선길이 '짠'하고 나타나 이 산행이 끝날때까지 계속 될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절벽을 겨우 올라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좀 걸어가니 .. 오 마이 갓..
또 다른 절벽이 눈앞을 가로 막아버린다. 이번 암벽을 정말 더 장난이 아니다.
쉽게 오를 수 있는 처음 1미터 정도를 오르니 만만하게 손에 잡히는 것도, 발 디딜 곳도 없었다. 아래를 내려다 보니 나를 안전하게 받쳐줄 폭신한 풀밭대신에 저 멀리 아래쪽에 나무숲이 풀밭처럼 착시현상을 일으키는 까마득한 고도감만이 내 가슴을 무겁게 압박해 왔다.
먼저 올라간 김지성군이 자일을 붙들고 있긴 해도 순전히 내 손바닥 발바닥의 흡인력으로만 버텨내야 한다니.., 다른 일행들이 말도 없이 잘만가는 그 코스들을 못가겠다느니 , 잡을 데가 없다느니 하면서 나 혼자 야단법석을 떨고 있었다..

"휴우-" 겨우 이 어려운 암벽을 올라서니 몸에서 기운이 쫙 빠졌다.
겨우 올라왔건만 선배님들이 처음하는 것 치고는 잘한다고 용기를 주시니 정말인줄 알고 어깨가 으쓱해졌다.

어려운 고비를 넘기고 나니 여유가 생겨서인가 주변경치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정말 이런 걸 두고 '비경'이라고 하나..
어렵게 찾아온 만큼 그에 상응하는 멋진 경치를 산은 펼쳐보이고 있었다.
조선시대화가 정선이 그린 금강산 산수화에 등장하는 산세와 비슷한 전경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숲을 벗어나니 그날의 햇별은 정말'최상급'이었다.
우리와 함께 장마도 북상을 해서 우중산행을 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하고 왔는데.. 결국 우리가 부산에 도착할때까지 가을 하늘같이 청명한 하늘과 습기없이 뜨겁게 달구어진 햇볕이 끝까지 계속되었다. 이런 날씨때문에 1인당 배급된 1.8리터생수병이 금방금방 바닥에 가까와졌고 얼굴에서 생산(?) 되는 소금량은 어지간한 염전못지 않았다.

굽이굽이 구름에 달가듯이 천화대릿지를 취한듯 가고 있는데 앞서가던 분들이 갑자기 자일을 묶어 절벽아래로 늘어뜨렸다.. '하강'이란다..

여기 오기 전에, 아니 정확히 말해 출발하던 날 오전에 난 신종철선배가 다니던 실내암장에서 선배에게 하강하는 법을 배웠다.
실내구조물중 그나마 높이가 좀 되어보이는 헬스기구에다가 자일을 매달고 하강기를 연결하여 의자위에 올라섰다가 의자를 치우면 그 높이 만큼 하강하는....

그 기술(?)을 전수받고 나는 그날 오후에 설악으로 향하는 차에 몸을 실었으며 그 다음날인 이날 '하강'하기위해 '절벽'끝에 서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일부러 자일이며 안전벨트며 하강기며 하는 것들을 가져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이 '무지한' 후배를 깨우쳐주신 선배님의 공으로 처음하는'실제' 하강이건만 그다지 두려워하지 않고 하강 할 수 있었다.
이쯤해서 지면을 빌어 선배께 감사를 전해얄 것 같다.
"감사함다.. 신종철 선배님..^^!!"

어쨌던 하강은 그럭저럭되었지만 ...
그후로 이어졌던 '마'의 일자크랙, 오도가도 못하고 매달려 있던 왕관봉 앞의 암벽, 폭풍의 언덕같은 엄청난 바람소리로 두려움에 떨게 만들던 까마득한 왕관봉에서의 하강... 그리고 먼저가신 선배님의 추모동판, 설악계곡으로의 하산, 계곡물에 발담그고 하늘을 바라보며 먹던 초코바, 타는 목마름을 단숨에 가시게 했던 비선대 휴게소의 팥빙수...

이런 모든 일들이 하루사이에 보고 경험했던 것들이란 것이 믿기지가 않는다.
너무나 장엄해서 두려움마져 들게했던 그 끝을 알 수 없는 자연의 모습과 그 자연의 일부나마 지금껏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던 방식으로 접근을 시도했다는 것들이 산행을 마치고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정신적인 '후유증'에
'몸살'을 앓게 하고 있다.

이 '몸살'이 어떤 종류인지는 모르겠다.
낯설을 공기와 환경에의 부적응으로부터 체 회복되지 못한 '여독'의 일종인지, 아니면 그 무언가에 대한 더 질긴 '상사병'의 일종인지..
좀 더 시간이 흘러봐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대단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신 선후배님들 고맙고요.. 산행에 참가하신 분들 모두 정말 수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