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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잊을 수 없는 7월의 지리산 산행 (7/11)


글쓴이 : 김치근 조 회 : 33 글쓴때 : 1999/09/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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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때는 훌쩍 가을로 접어 들었으나 지난 여름의 지리산 산행기록이 빠져서 그냥 지나치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산행이었기에 이렇게 몇자 기록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일시 : 1999년 7월17일~18일
운행 : <제1일> 부산-백무동-중산리
<제2일> 중산리-법계사-천왕봉-장터목-중산리-부산
참가대원 : 김정실,이충한(+가족3명),성경직,이희태,김치근,박만교,신종철,
김광섭,강양훈,하정호,민영도,박상현 (총 15명)

모처럼의 연휴를 맞아 항상 가슴속에 그리던 지리산, 그것도 가장 길다고
하는 칠선동 계곡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원래 계획은 백무동에서 왼쪽 능선을 건너 칠선동 계곡으로 넘어 서면 두지터 훨씬 위로 붙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첫 날은 칠선동 계곡을 따라 최대한 고도를 높인 뒤 계곡에서 일박하고 천왕봉을 넘어 백무동 계곡으로 내려 오기로한 야심만만한 계획이었다.
계곡에서 물소리를 들으며 쏟아질듯한 밤하늘의 별들을 볼 수 있다는 기대감에 전 대원들은 가슴을 설레었다.

백무동 주차장에 차를 주차 시키고 최대한 시간을 아끼기 위해 산채 비빔밥 으로 점심을 마친 대원들은 칠선 계곡으로 넘어 가는 길로 짐작 되는 길을 따라 산길로 접어 들었다.
길옆 바위에 촛불을 켜고 머리를 풀어 헤치고 슬피 호곡을 하는 아낙을 보니 어째 기분이 찜찜하다. 호곡의 내용인즉 자식이 죽어 영혼을 달래고 있는 것 같았다. 조금 더 올라가니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처럼 숲속에 두 갈래 길이 나 있는 것이 아닌가 .
우리는 가지 못한 길을 아쉬워하며 칠선동 계곡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당들이 단군상을 만들어 놓은 곳에 이르러 길이 희미해지기 시작한다.
이에 비례해 운행대장의 말도 점점 자신감을 잃어 간다. "옛날에 와 봤는데... 길이 이상 한 것 같기도 한데,그래도 계속 올리 쳐 보입시다." 지도를 꺼내 독도를 해보기도 하고 이쪽이 맞는 것 같다 저쪽이 맞는 것 같다 약간 우왕 좌왕 하다가 능선을 넘었겠거니 지레 짐작하고 두지터 방향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향하여 내리막 길을 택했다. 한참을 이렇게 가다 보니 앞이 트이고 민가가 나타났다. 그런데 멀리 보이는 풍경이 어째 낮이 익은 것 같다. 어째 저 멀리 우리 차도 보이는 것 같고. 아뿔싸 이건 우리가 출발 했던 곳 보다 더 낮은 지점이 아닌가.
두 시간 여를 헤메다 출발지점 보다 더 낮은 곳으로 360도 돌아 온 것이 아닌가. 말로만 듣던'링 반델룽'을 멀건 대낮에 겪게 될 줄이야.
"지리산은 정말로 큰 산이로구만요. 동부경남에 있는 고만 고만한 산만 오르다가 지리산 같은 큰 산에서 감각을 잃어 버린 것 같네요." 마음씨 좋은 대원들은 누구 하나 화를 내는 사람이 없다.
허탈 하지만 모두 싱겁게 허허 웃고 만다.

하지만 예서 멈출 수는 없는 법. 백무동에서 칠선 계곡으로 넘어가는 길은 다음에 찾기로 하고 행장을 수습해 차를 타고 반대편 쪽인 중산리 쪽으로 가서 일박하고 법계사 코스로 해서 정상을 오르기로 뜻을 모았다.
중산리 매표소에서 백무동에서 입장료를 냈다고 하니 친절하게도 무사
통과 시켜 준다. 단정하게 정복을 차려 입은 관리인들에 의해서 이곳은
매우 깨끗하게 관리가 되고 있어 즐거운 마음으로 막영을 할 수 있었다.

다음날 산행 길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여유도 있고 예의도 바르고 의복 또한 정갈히 차려 입은 사람들뿐이었다.
모두들 밝은 표정으로 인사 하는 모습은 보기에도 매우 좋았다.
정상에 올라 어제 우리가 오르지 못했던 칠선 계곡 쪽을 내려다 보고 그 어마어마한 길이에 그만 가슴이 철렁했다. 장터목으로 내려오는 길의 고사목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고 다만 자연 생태계를 복원 하고자 하는 인간들의 눈물 겨운 노력이 가상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중간중간 붙어 있는 안내 표지판에는 이곳이 전에는 울창한 원시림 지대였으나 도벌꾼들에 의해 무참히 훼손 되었다고 전한다.
인간의 노력때문인지 아니면 때가 되어서 그런 건지는 몰라도 고사목 지대도 차츰 관목 숲으로 변하고 있었다. 지친 다리를 이끌고 내려오는 계곡 중간 중간에 아름답게 꾸민 나무다리등 자연과 조화되는 아기자기한 인공 구조물들이 보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중산리에서 차를 타고 피래미 튀김을 맛보기위해 길을 거슬러 올라가 생초에서 식사를 하고 아쉬운 걸음을 부산으로
돌렸다.

비록 계획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매우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만사가 어찌 계획대로만 되겠나.
오르고자 용만 쓰다가 도리어 원래 위치보다 낮은 곳으로 오게 되었고 가지 않은 길을 아쉬워하면서도 왔던 길이 아까워서 그냥 앞으로만 가다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가버렸던 이번 산행은 정말로 정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의 축소판이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