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고 살기 바쁘다는 말만큼 진부한 표현이 있으랴만은... 남들이 다 끝났다는 IMF 여파로 쬐끔 바쁘게 살고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 잘못 했던 것을 바로 잡는 일이라 자부심을 가지려고 합니다만. 덕분에 산행 안내도 늦게 발송되고. 산행일지는 되지 못하겠지만 기록은 남겨야 겠기에 글을 시작합니다.
------------------------------------------------------------------------
멀쩡했던 날씨가 새벽에 눈을 떴을 땐 심상치 않은 비로 바뀌어 있었다. 부산까지 가다 보면 개겠지 하고 출발은 했는데 영 그칠 줄을 모른다. 8명의 회원이 명륜동 지하철 역에 집결해서 출발한 시간이 6시 50분 경. 7시 15분 남해 고속도로 톨게이트로 접어 드니 비보다 더한 장벽이 가로 막고 있었다. 추석을 앞둔 벌초 행렬...말은 들었지만 이 정도까지 될 줄은 몰랐다. 창녕 IC에서 만나기로 한 김강태 회원 말로는 톨게이트에서 1시간 반만 하면 된다는 거리를 무려 3시간 넘게 걸려 접선 지점에 도착은 했는 데, 비는 윈드실드 와이퍼를 최고속으로 돌려야 할 정도로 퍼 붓고 있다. 결과론적으로 남해 고속도로를 타지 말고 김해에서 부터 국도를 이용하는 편이 나을 것 같다.

우산을 받쳐 들고 2호차(김치근 회원 운전) 옆에 붙어 서서 임시 작전(?)회의를 했다. 첫번째 안건은 어디 가서 brunch라도 먹자는 것. 앞 차 꽁무니 구경하느라 쫄쫄 굶고 왔으니. 두번째는 여기 창녕에서 거창까지 1시간 정도 더 가야 하는데 과연 시간 내에 산에 올라 갔다 올 수 있겠느냐는 것 (사실은 비가 너무 심하게 와서 그 속으로 뛰어 들 엄두가 정말 안 났다... ^^;) 계산해 보니 창녕 IC에서 거창까지 왕복 2시간, 황석산의 제일 짧은 코스를 택할 경우 올라가는데 2.5시간+하산 1.5시간 해서 4시간 소요되고 밥 먹고 우짜고 하면 1시간. 창녕IC까지 돌아오면 오후 6시 이후가 되는 데 이건 매우 정상적일 때 이야기이므로 하산 시간이 문제가 된다.
일단 점심때가 되었으므로 비를 피할 수 있는 장소(!)에서 식사를 하면서 구체적인 토의를 하기로 하고 출발.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비 때문인지. 일요일이라서 그런지, 12시가 안 되서 그런지, 시골이라서 그런지 문을 안 연 집이 많았다) 화왕산 쪽으로 접어 들어 겨우 한 집 발견. 준비가능하다는 메뉴인 닭 백숙과 준비해 온 도시락으로 늦은 아침 겸 조금 이른 점심을 들었다. 반주로 내 주는 막걸리를 보더니 이희태 회원께서 직속 후배 김태원 회원을 불렀다. 이야기의 주제가 노후 대책 쪽으로 흘러 간다. 전원 주택, 주말 농장, 통나무집, DIY 집짓기, ....
비가 좀 잦아 드는 가 싶어 화왕산에라도 가자 하고 말이 나왔다 싶으면 또 쏟아 붓기를 몇 번 반복하다 보니 시간이 흘러 오후 1시 반. 중론을 모아서 고대 가야의 유물을 간직한 창녕의 유적지를 둘러 보자는 데로 의견 일치 - 한 사람만 빼고.
보물 2점을 간직한 관룡사 -> 실제로는 처음 보는 지석묘 -> 람사 조약에 가입한 우포늪 -> 국보이지만 전혀 대접 못받고 주택가에 묻혀 있는 신라 석탑 -> 산골의 별미 아구찜 집에서 저녁 식사까지 해서 저녁 7시. 모두 다 일부러 시간 내서 가 보기는 힘든 곳 들이라 반분풀이는 한 것 같다. 저녁 먹으며 나눴던 심오한 이야기들은 (그냥 하는 이야기가 아니고 우리 회원들이 이만큼이나 각 분야에 조예가 깊었나 할 정도로) 다 못 옮기겠고. 모두들 분위기에 취해 1년에 한번 정도는 이런 테마 여행도 괜찮겠다고들 한다.
식사를 마치고 울산팀과 부산팀으로 차를 나누어 타고 해산. 울산은 천왕재를 넘어 밀양 -> 석남터널->언양 거쳐서 오니까 딱 2시간 반 걸렸다. 다음에 거창/창녕 이 쪽으로 산행이 있으면 이 길을 이용해야 겠다.
-----------------------------------------------------------------------
부울 합동 등반을 빛내 주시기 위해 토요일 오후에 통지문 받고 참석해 주신 희태형님, 졸지에 부산-울산-대구 합동으로 만들어 주신 태원형, 차편 없을까봐 책임감을 가지고 참석해 주신 치근형, 항상 대원들 식수를 공급해 주시는 양수형, 오랜만에 부산에 돌아 온 채신이, 그리고 빗속에서 하염없이 기다렸을 향토사학자 강태. 그리고 아직 잘 모르는 윤정미씨. 술을 한잔이라도 마셨으니 안된다고 운전을 대신한 my wife. 모두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