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일 구병산 경부합동등산을 다녀와 첨부와같이 몇자 메모합니다.

오늘도 습관적으로 산에 오른다.

며칠전 1년 기한으로 재충전하러 독일로 간 어느 교수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아직 돌아올 기한도 몇 달이 남았는데 그 짧은 시간에 그곳에서 새로운 연구에 몰두하는 틈틈이 두권의 책을 출간했고 또 다른 두권의 책의 원고를 출판사로 이미 넘겼으며 새로이 세 명의 인물에 대한 연구서 출간준비를 하고 있노라고 하시면서,

마치 여생을 충분히 쓸 만큼의 재산을 이미 장만한 부자가 그러고서도 습관적으로 돈벌이에 계속 열중하듯이 이러한 일들이 내가 이곳에서 지금 꼭하지 않으면 큰일이 나는 것도 아닌데 습관적으로 그러고 있는 것 같다고.

교수님이 ‘부자’대신에 그 자리에 우리 선배님들을 대입하면 서두와 같이 말씀하시지 않았을까? 모처럼의 경부합동등산, 겸하여 연속 등산 40주년과 30주년을 축하하는 자리에서 느낀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 우리 선배님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산을 오르는 것이로구나. “산이 그기에 있으니까.” “산이 무조건 좋아서” “건강을 위해서” “산선배 산친구 산에서 만난 이들이 좋아서...” 모두 맞는 말이지만 뭐 그렇게 심각하게 까닭을 따져볼 필요가 있을까? 오늘도 우리 선배님들은 그냥 습관적으로 산에 오른다.

충북 보은군에 위치한 구병산 정상에 올라서 보면 바로 저만치 솟아있는 속리산의 명성에 가려 충북알프스라는 지역의 자랑이 조금은 무색할 만큼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그래서 더욱 조용하고 정감이 가는 산이다.

5월 18일 지금 이 시간 전라도 광주에서는 또 어떠한 기념식이 예정되어 있을까? 돌아와 신문을 보니 그들이 분명 전폭적으로 지지했었을 대통령이 겨우 뒷문으로 식장을 출입했다고 한다. 이것도 막가자는 것인가? 서울에서는 세명이 단촐하게 출발한다. 종일 승용차를 몰아 이중으로 수고한 서울 총무 신용상군과 서울회장이자 이번 등산의 공동대장인 남기진군과 나 이렇게 단 세명. 함께할 예정이던 상태는 ‘등산학교’에서 너무 무리를 했는가 도저히 오늘은 함께할 형편이 못된다면서도 출발을 위한 1차 집결지인 사당전철역까지 나와서 우리를 배웅해주었다. 그간 서울에서는 몇몇 악우을 마라톤에 차출당하는 등으로 인해 영 집합 성적이 좋지 않다. 오전 7시에 모여 10분 출발,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두시간을 달려 청원인터체인지에서 나와 보은방향으로 25번국도를 찾았다. 부산팀과 합류할 2차집결지인 구병산아래 적암휴게소 앞에 도착한 것이 10시 10분경, 정확하게 세시간이 걸렸다. 날씨는 상당히 더운 편이나 구름에 상당히 가려 그나마 땡볕은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구병산은 여름등산이 가장 좋다니 더욱 기대가 된다.

한시간정도 기다려 부산팀과 합류했다. 산생활 40주년이되는 두 선배님과 학번은 조금 뒤지지만 경륜상으로는 더 선배이신 우리의 큰형님 이상보선배, 언제나 순수한 마음을 간직하고 계신 김정실교수님, 여러 해를 계속 정력적으로 수고해주고 있는 이충환회장 그리고 성경직과 그의 악당들을 합쳐 모두 열한명. 모두다 반가운 분들이다. 산부부는 더욱 정겹고. 이번엔 희태 정웅등 울산팀들이 모두 빠져 좀 섭섭하긴 하지만 뭐 항상 모든 것이 다 만족스러울 수야 있는가. 간단하게 두세대를 연속하여 등산길을 택하신 환갑길의 선배님을 위한 기념식을 마치고 구병산을 향했다. 11시 10분경 출발.

한시간도 채 못 올랐는데 각자 새벽에 집을 나서느라 아침이 부실했던가 여러 악우들의 배속에서 계속 신호가 들려오고 마침 적당한 자리가 보이자 자리부터 펴고 본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하지 않았던가. 준비성 많은 부산팀 덕분에 평소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호화판 식단이 펼쳐졌다.

아홉 개의 바위 병풍으로 이루어졌다는 구병산, 그래도 정상의 높이가 876m가 되는 상당한 수준급의 산인데 요즘의 산답지 않게 한적한 것이 우선 마음에 든다. 아홉 개의 봉우리 뿐 아니라 산전체가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이름그대로 바위산이다. 그래서 일까. 부산에서 왔다는 관광버스 한대와 몇몇 개별모임을 제하고는 인적이 거의 없는 산행이라 모처럼 60-70년대의 호젓한 추억에 잠길 수도 있었다. 스님들이 6개월이상 수도에 전념할 수없을 만큼 정력에 좋은 물이라고 설명이 되어있는, 그래서 이젠 절터만 남아있다는 아리송한 샘터를 지나 853고지로 향했다. 불과 정상과 표고가 23m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2등은 2등, 그래서 제대로 이름도 없이 그냥 853고지란다. 마냥 산이 좋아 산자락에 좌정한 선배님을 모시고 정상에 오른 시간이 3시 반경이던가. 답파식을 끝내고 이젠 하산이다. 내려가는 길은 정상 바로 100m밑에서 곧바로 깎아 지르는 하강, 승용차로 비유하면 브레이크가 모두 타버릴 정도로 발에서 열이 불끈불끈나는 가파른 내리막길을 2.5km정도 내려와 다시 적암휴게소를 찾았다. 곳곳에 하강에 도움을 주는 간이시설이 되어 있어 편리했다. 이 길을 하강대신 오르는 쪽으로 선택하면 그야 말로 훈련코스가 될 것 같다. 5시 10분경 도착. 이제 이태백과 동무하는 뒷풀이의 시작이다.

정상부근에서 하산하는 팀에게 얼마나 남았느냐고 물었다는 선배님 말씀, 한명은 한 십분 정도 가면 된다고 하고 또 한명은 심드렁하게 2시간을 이야기하더라고 한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습관적으로 오르는 산, 그건 우리들의 마음이고 과연 우리들을 맞아주는 산의 심정은 어떠할까? 이렇게 인적이 드문 산인데도 불구하고 날파리들이 거의 산 정산 부근까지 날아다니고 그와 함께 이러한 황당한 이야기들도 횡행하고 있으니. 누구를 막론하고 산을 찾는 우리들 모두 산이 좋아하는 악우들이었으면 한다. 아니 우리들부터 얼마나 산이 좋아하는 사람인지 한번씩 생각해보고 산에 올랐으면 싶다.

30년만에 간단한 메모를 적어보았다. 함께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내일도 함께 습관적으로 산에 오르시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