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과 동해안에 많은 눈이 내리고 있다는 뉴스를 듣고 혹시나 창 밖을 보니 역시나 파란 하늘에 드문드문 구름만 보일 뿐이다.
부산 사람이라면 누구나 제대로 된 눈 한번 맞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나만의 생각일까?
느긋하게 아침 밥 먹고 제물 챙기고도 시간이 한참 남아 한숨 더 잘까... 여유를 부리는데,
마누라 눈 온다고 한다. 찔끔 오다가 말겠지, 늘 그랬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앞 베란다 뒤 베란다를 연이어 쳐다보니, 눈발이 제법 실하다.
윤지야 정말 눈 온다. 제일 반가워 할 막내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이불 속에서 만화만 보고있다...
세차게 내리는 눈이 아파트 주위를 하얗게 만들고 있다.
느긋한 마음이 바빠졌다. 차 막히기 전에 빨리 가야지, 대충 챙기고 만교가 준 동일표 스노우 체인을 달았다.
고무로 된 체인인데 동일에서 야심작으로 내놓은 시제품을 특별히 공짜로 받아 재 작년에 요긴하게 쓰고 오늘 다시 달았다. 시속 80km가 보장되는 우수한 성능을 자랑한다.
외국에는 도로 파손이 심한 와이어 체인은 사용금지 되어 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도 곧 법이 바뀔 것을 대비하여 만든 것이라 한다. 가격도 10-20만원 대로 고가 장비다.
그러나 요즘은 생산 안 한다고 한다. 법은 안 바뀌고 찾는 사람도 없다고 한다.
그래도 동일 잘 돌아간다...
차가 많은 도심을 피해 도시고속으로 차를 올렸다. 엉금엉금 기어가는 차 사이로 날렵하게 달렸다. 준비된 자의 특권이 아니겠는가.
한참 달리다 오륜대 근처 오르막길에서 차를 세워야 했다. 빙판이 된 오르막 길에는 체인이 없으면 속수무책이다. 나만 준비하면 무엇하리 다른 차가 내 길을 막고 서 있는데...
치근이 형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현재 상황을 설명하니. 차씨집에서 준비한 봉고로 먼저 간다고 한다.
구서동 겨우 통과하여 눈 녹은 도로를 체인 달고 달렸다. 시속 80km로...
식물원 입구에 도착하니 경찰이 도로를 통제하고 있다. 차 한대가 경찰하고 실랑이 하는 사이 나는 허락 받고 통과 했다.
막 지나가는데 눈에 익은 차라는 생각이 들어 백미러로 보니 상향 등을 반짝이며 부른다.
정호 차다. 다행이 경찰의 허락을 받고 통과.
4륜 구동이라 그런지 잘 따라온다.
중간쯤 오르는데 드디어 정호 차가 더 이상 갈수 가 없다. 모두 내 차로 옮겨 탔다.
조금 전부터 바퀴에서 소음이 심하게 나는걸 무시하고 오르다, 동문 조금 밑에서 차가 정지 했다.
성능 믿고 맨 도로에서 과속한 결과가 나타났다. 체인 줄이 끊어 졌다
설상가상으로 눈발이 더욱 세어진다. 한라산에 경험한 눈 다음으로 많이 보는 눈이다.
지금부터 걸어야 한다. 정호 집 막내가 걱정이다. 하지만 애들은 신났다. 태어나서 이런 경험은 처음일거다.
걱정이 되는지 치근이형 희태형 번갈아 연락 온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동문을 통과하여 식구 먼저 보내고, 정호를 기다리는데 또 전화가 왔다. 차씨 집에서 고기 먹고 천천히 기다리면 되지... 장갑도 없이 손 시린데 와 자꾸 전화하노...
이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동문 앞입니다. 니 안 보이는데 정확하게 어디고?(그 시간 앞이 안보일 정도로 눈이 왔었다). 이 아저씨들이 오늘따라 왜 이럴까 이런 눈 때문에 집 못 찾을까. 정호 기다리고 있습니다 곧 갈께요. 그기 아니고 니 지금 어디고?
아까부터 차씨 집 근방에서 단체로 눈 맞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속으로 참 별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혹시나 해서 그 사람들 중에 휴대폰 하는 사람” 찾아보니 있다. 자세히 보니 치근이 형이다. 모두 완전 무장하고 있어 아무도 못 알아 보았다. 이런 날씨에 몇 명 왔을까? 했는데 가족 합해서 27명이나 왔다.
이제야 이해가 된다. 나를 기다린 것이 아니고 제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도착 했을 땐 상 위에 둔 돼지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얼른 정성스럽게 준비한 사과 배 대추 밤 등 상에 올리고, 회장님이 준비한 제문 읽고 ...
회원들을 위하는 회장님의 마음이 제문에 구구이 들어 있다. 마음만큼 표현도 그렇게 하면 좋을 텐데... 혼자 생각 해 보았다.
이런 눈밭에서 정성을 다하여 제를 올리니 산신령님도 감동 받았을 거다.
작년에 제문 안 태워서 굿은 일이 많았다며 올해는 확실히 태웠다. 치근이 형 감시 하에...
산신제 지내고 차씨집에서 정기총회 겸 뒤풀이 하고, 차씨 집에서 못다한 노래 마무리하기 위해, 눈 구경하며 모두 온천장까지 걸어서 노래자랑하고 헤어졌다.
몇 십년 만에 온 많은 눈에도 불구하고 감히 오겠다고 나선 산악부 회원님 및 가족 여러분들 정말 고생 많았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