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을 무사히 다녀 왔습니다.
산행 일정을 간략하게 올립니다.
3박 4일(2003 7 31- 8 03)
부산 출발: 2003 07 31 06 50
오색 도착: 07 31 17 00
오색 출발: 08 01 07 00
대청봉 도착: 01 11:30-12:30
수렴동 대피소도착: 01 17:40
수렴동 대피소 출발: 02 08:30
백담사 도착 : 02 10:30
남애도착 02 14:00-17:00
남애출발 03 12:00
부산도착 03 23:30
산행대장: 신양수
산행대원은 임송봉 김명수 이상보 김정실 이충한 성경직 김치근 이정희
신종철 양경희 총 11명 입니다.
산행일지는 대장님이 재미있게 올리니 많이 봐주세요.
무슨 한이 있었단 말인가?
무슨 전생의 업보가 있었단 말인가?
대청봉 1km를 남겨 놓고, 100m 200m 마다 헐떡거리고 주저앉으면서
28년전 1학년 중기 밀양 제약산 사자봉과 하계 노고단 생각이 절로났다.
사실 이 번 뿐만이 아니고, 힘든 산행을 할 때마다
시지프스의 신화가 생각나곤했었다.
왜 하필 형벌 중에 무거운 짐을 지고 산을 오르내리는 벌을 내렸을까?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비슷한 벌을 받는 것은 아닐까?
"그래 나는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거다"
"벌을 받고 있는 거야"
치근이가 초콜렛 나눠 줄 때 받아둘 걸. 후회도 되었고
알짱거리고 있던, 종철이 손바닥의 커피땅콩을 잽싸게 물고가던,
그 귀엽던 다람쥐들도 그땐 귀찮아졌다.
뙤약볕에 목은 마르고, 배는 고프고, 아! 만사가 귀찮고 귀찮아졌다.
기진 맥진이란 단어가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내내 같이 가던 치근이는 가장 무거운 배낭을 지고서도 어느새 선두 그룹
으로 횡하니 올라가버렸고, 종철이는 나와 배낭을 바꿔지고난 이후로
나와 어금버금 힘들어하고 있었지만 5분 정도 앞서가고 있었고,
내 뒤엔 김정실 성경직 두 선배님만 5분 정도 뒤처져있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7:00 오색막영터 출발해서 선두는 11:30 에 도착했으나 12:30 에야
전원이 대청봉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도 대청봉에 대한 원한은 없다.
아니 어느 산이던 정상에 대한 특별한 감상은 없다.
웬일인지 나의 등산 경험으로는 정상은 그저 오르막이 끝나고
이제 내리막이 시작되는 고개같이 반가운 한 지점 정도이지,
그 곳을 오르기위해 고생을 했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중청 대피소에서 중식을 하자 좀 살 것 같았다.
살만하니 경치가 눈에 들어왔다.
중청에서 소청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바라본,
천불동 계곡, 용아장성, 공룡능선,그리고 서북주능,
작은 구름들 사이로 잠깐잠깐 펼쳐진 그 그림같은 광경은,
잊고 있었던 아련한 내 젊은 시절의 낭만이 오버랩되며,
내 가슴을 벅차게 하기에 충분했다.
_ 사실 나의 이상적인 산행은 이 쯤에서 텐트를 치는 것이다.
지친 몸을 텐트 속에 비스듬히 누이고,맛있는 안주에 소주 한잔하면서
그리운 이 풍경들을 맘껏 바라보는 것이다.
저물녘까지, 어둠에 잠길 때까지 바라보다 잠이 드는 것이다.
한 밤중 깨어나 달빛아래, 별빛아래, 혹은 칠흑같은 어둠 속이더라도
한 줄기 오줌을 누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한참을 바라보는 것이다
그리고 소청에서 봉정암, 수렴동 대피소, 백담사는
컨디션 좋은 아침나절에 느긋하게 경치 구경하면서
계곡엔 발을 담그고, 백담사엔 마음을 담그고......
용대리 바깥 속세의 일일랑은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래 생의 하루를 땀에 젖은 신선이 돼보는 것도
멋있는 삶의 한 때가 아니겠는가 ?
그러나 현실의 산행은 언제나 그렇지가 못했다.
이번에도 속세에서 계획을 짤 때부터 그랬었다.
해질녘까지 하루를 빡빡하게 채우는 산행이야말로 알찬 산행이라고.
그래서 남은 시간은 해수욕장이라도 가보고, 회라도 한 접시 더하고.
같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한가지라도 더하면 그게 더 효율적이라고 _
짧은 능선 길이 끝나고 악전 고투의 하산 길이 시작되었다.
점심을 먹었다지만 오전의 기진맥진으로 모두 피곤한 상태라
수렴동 대피소까지의 길은 멀고 또 멀었다.
이 모퉁이만 돌면, 이 모퉁이만 돌면 하는 기대는 날이 어둑어둑해져도
계속 이어졌었다.( 소문에 이 날의 후유증이 부산 도착후 이틀이나 계속되
었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자 쫓기듯 내려오면서,
그냥 감탄 한 번하고 지나오고, 그냥 넋 한 번 놓고 지나온,
이 나라 제일의 그 계곡 풍경(폭포와 소와 기암 절벽) 들이
그제서야 생각이 나면서, 스치듯 지나올 수 밖에 없었던 것이
너무 아쉬웠다.
그래도, 다 지나온 줄 알았던 그 수려한 산수화 한 폭이
수렴동 대피소 앞에 걸려 있어서,
어둠 속에 묻혀가는 그 그림을 보면서, 아직은 머릿속에 남아 있는
나머지 열 한 폭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반추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이 계곡은 지나간 내 젊은 시절처럼 다시 갈 수 없는 곳이
아니라 다시 올 수 있는 곳이라고,
그러니 언젠가 언젠가는 여유를 갖고,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고,
위안 겸 다짐을 하고 또 했었다.
수렴동 대피소에는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이 나라 제일의 것이
있었으니, 대피소 화장실의 그 독했던 암모니아 가스다.
차마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나하고는 좀 친한 어느 여성 대원은
잘 삭은 홍어를 떠올렸다니, 나는 그만 '컥'하고 말문이 막혔었는데.
성경직 선배는 석식 후부터 예고를 하기는 하였지만
이튿날 백담산장까지 기어이 볼일을 참고 왔었으니 그 옴치살의 근력에
나는 그만 입이 '딱' 벌어져서 막혔던 말문이 그때서야 터질 수 있었다.
참으로 고맙고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래저래 내설악은 이 나라 제일의 계곡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그렇게 절약한 시간으로 남애해수욕장에서 회를 먹을 수 있었다.
차량 관계로 선발대는 오후 2시경, 뒷차는 5시경 도착했었다.
좋아해도 너무 좋아하는 음식이라 나야 신이 절로 났지만,
모자랄 것이라고 산 회가 남기까지 하자, 혼자만 즐기는 것 같아
대원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매운탕에 소주를 곁들이자 취기와 함께 해변가에도 어둠이 밀려들었다.
오색에서의 밤늦은 담론도 좋았지만, 남애에서의 백사장 술자리도
선배님들의 장기자랑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누구는 김명수 선배님의 노래가 그 중 낫더라는 둥
누구는 임송봉 선배님의 졸음 소동이 제일 스릴있었다는 둥
누구는 이상보 선배님의 경음악이 최고였다는 둥
누구는 김정실 선배님의 바이올린 반주곡이 가장 음악적이었다는 둥
그러더라만. 그래도 누가 뭐래도
이충환 회장님의 3곡의 메들리가 이 날의 압권이었다.
아니 노래 뒤에 햄구이 햄찌게에 이어 햄김치볶음까지 햄시리즈를
디저트로 내 놓았으니 어찌 이견이 있을 수 있었겠는가!
가는 날 오는 날 그리고 수렴동 대피소에서 남애 해수욕장까지의 반나절
을 빼고 나니, 하루 반나절 의 기억을 정리한 것인데도 글이 길어졌다.
김명수 선배님 오색 막영터 확보와 수렴동 대피소 체크 인,
임송봉 선배님 차량 제공,
김정실 선배님 운전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홍천 웃고 넘는 박달재의 비빔밥,
오는 길 횡성의 두부 전골 맛있었습니다.
이상보, 성경직 선배님 이정희, 양경희씨 설겆이하느라,
김치근, 신종철씨 운전하느라, 짐지느라,
이충환 회장님 끼니 때마다 요리하시느라 정말 수고 많았습니다.
잠깐 잠깐 신경이 날카로울 수도 있는 상황이 있었지만
선배님들께서 대승적인 이해로 오히려 웃음으로 승화를 시켜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먼 훗 날에라도 후배들과의 산행에서
꼭 그렇게 저도 본을 보이겠습니다.
거두절미하고, 사실은 이 말 할려고 사설이 길었거든요.
"내년에는 저의 이상적인 산행 스타일로
하계를 한번 꾸려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