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내게도 산이 내 모든 것일 때가 있었다. 그때가 언제인지 기억하기도 힘들지만...
5년전 이었던가 군을 막 제대하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을 때 일거다.(그때 나와 중하는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고 막 제대했을 때는 2학기시작 전이었다.) 승용이형이 한마디 던진다. “제대하고 할 것 없으면 복학해서 공부나 하라고” 그 때는 딱히 앞으로의 계획도 없었기에 중하랑 같이 복학하기로 했다. 그래도 혼자보다는 둘이 낫기에. 그때는 산악부의 부원이 더 절실했는지도... 우리보다 1년 먼저 제대한 낙현이가 부장을 하기로 하로 우리는 그의 충실한 부원이 되기로 했다. 그렇게 2001년의 2학기 산행은 98동기 세 명이서 시작되었다. 신입생이 ‘한명이라도 들어오겠지’라는 기대를 가지고.
동기들끼리의 산행이란 정말 편하고 널널하기 그지없었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산행준비하고 밥하고. 내가 하지 않으면 중하가 했고 중하도 하지 않으면 부장인 낙현이가 했다. 그런 산행이 계속될수록 우리에게는 독이 되어 돌아왔다. 산행에서 산행대장의 말을 듣지 않게 되었고 결국은 다툼으로까지 이어졌다. 위에서 적적히 조절해 줄 선배가 없다면 우리가 모범을 보여줘야 될 후배가 너무도 필요했던 시기였다. 결국 세 명이서 동계까지 가게 되었다. 그때 규태 형과 단둘이서 김해 어느 고기집에서 술을 마셨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던 중에 이번에 동계를 동기 세 명이서 가게 되는데 동계경험이 많은 선배가 같이 가지 않아서 걱정이라고 말을 꺼냈다. 규태 형 왈 “너희들 군대까지 같다오지 않았느냐. 그럼 이제 너희가 선배다. 그런데 왜 또 선배를 찾고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따끔한 충고를 해주었다. 그래 이제 난 아니 우린 더 이상 후배가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어느 형이 나에게 해준 이야기다. “처음 산에 갈 때는 선배 따라 멋모르고 가지만 언젠가는 책임감 때문에 산에 가는 경우가 생긴다”고. 그 때는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난 늘 내가 좋아서 산에 갔지 그 누구를 위해서 갔던 적은 없었다. 다만 다른 누군가에 의해 산이 싫어지기는 했지만. 2년의 휴식기를 가지고 올해 다시 동계를 들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 동안 선배님들께 너무도 많이 받았기에 이제는 후배에게 돌려 줄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사실 처음에는 갈 수 있을지 걱정이었다. 포항에서 실험을 해야만 했기에. 규태 형이 학교에 찾아와서 이번에 동계를 들어가니 같이 가자고 했을 때만 해도 못 갈 거라고 예상했었다. 가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12월 O.B. 형들의 모임에서야 동계를 갈 수 있다고 말을 꺼냈다.(1월에 포항에서 실험이 없었기에.) 그 때서야 동계를 가는 구나 실감이 났다. 그 때부터는 2년을 쉬었는데 가서 잘 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것은 체력회복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혼자서 운동장도 달리고 창렬이와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면서 운동을 했다. 동계가기 까지는 양폭까지 만이라도 퍼지지 않고 갈 수 있기를 하는 마음이었다. 1월 9일 새벽 드디어 설악 소공원에 도착했다. 설악의 기운을 느끼기는 아직 적응기간이 필요한 것일까 춥지가 않아서 일까 감흥이 없다. 설레임이 너무 강했을지도. 우선 양폭 까지 가는 길은 힘들지 않았다. 운동의 효과인가 배낭의 가벼움인가. 수원이와 같이 가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도 하고 노래에 대해서 이야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이었다. 양폭은 2년 전 그대로였다. 양폭 만큼 나도 그대로이고 싶다. 초급반을 보면서 1학년 때 멋모르고 들어왔던 동계도 생각이 나고. 재연이형과 비선대 가던 길에 나누었던 진솔한 이야기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중급반의 No.1 성환이 수원이를 제치고 No.2가 되고 싶어 했던 창렬이. 노래를 좋아하고 많이 알고 있는 수원이, 올 해 기꺼이 대표 상임을 맡아준 정호, 말은 없지만 아마 중급반에서는 나와 가장 많은 대화를 한 형탁이. 다시 한 번 기회가 된다면 주저 없이 겨울 설악을 다시 가리라. 백가의 절대음감을 전수해 주신 상은이 형 천-불동계곡 천불-동계곡 천불동-계곡 천불동계-곡 천불동계곡-.나의 자세에 대해 조언해 주신 석수 형. 내 동기 진호. 마지막으로 동계를 들어가게 계기를 주신 규태형 수고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초급반 후배들아 이제는 너희들이 선배가 되어야한단다. 이제껏 받은 것 2배 3배로 그대들의 후배들에게 되돌려 주길. 부디 좋은 선배로 남아주시길. 내 비록 선배로서 그대들에게 해 준 것 없지만. 염치없이 부탁드립니다. 나에게 또 다시 동계의 그 즐거움이 오기를 살아가는 하나의 이유가 되기를 바라면서....      
2006.2.8   백광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