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만난 형의 딸도 시집보내는데 가지도 못하는 남방에 와 있다.
1972년 한라산 동계등산때 용진각에서 고교후배 전태욱을 만났다. 그 당시에는 내가 2년 선배 고교 등산반장을 하였던 탓에, 그 악명에 그가 나를 기억했던 얼굴모르는 경북대 지질학과 후배였었다. 세월이 지나 1978년도 인가? 겨울에 탄광촌 도계읍에서 석탄공사 도계광업소에 후배 김철수(부대 지질과)와 같이 입사했다. 나도 한 보름쯤 먼저 경동탄광 상덕광업소에 입사한 처지여서 서로 반갑게 맞아 평생 잊지못할 술판을 벌인적 있다. 그때 세계에서 가장 어려운 지질구조구였던 도계지역에서 새롭게 지질해석하여 아직까지도 그 석탄을 채탄하고 있는 그런 열정의 기억을 같이 갖고 있다. 그리고 1982년도에 전국 광산 지질 실무자들을 초대하여 도계에서 COAL GEOLOGY STUDY CLUB을 만들었다. 그 클럽에는 학교개념이 없다. 단지 학번과 선후배만이 존재하는 CLUB으로 만들었다. 그뒤 강원탄광에 갔고 강원산업에서 골재개발과 탄광탐사에 열을 올렸다. 그 당시 광산산업은 사양산업이라하여 무척 천대를 받았다. 돈만있으면 그 많은 자원 사오면 아무 문제 없다 했다. 그때 그런사람들이 나라의 자원개발정책을 하였고 거대기업인 포철은 국내 광산을 품질이 형편없다하여 광산들을 거의 다 문닫게 하였다. 또 국내 대학의 지질학의 변질은 아무 쓸모없는 아이들만 배출하였다. 자원개발에 필요한 탐사인력이 거의 없는셈이란 뜻이다. 기껏해야 오십에서 칠십까지 그 이하는 그런 탐사능력이 없는 무능한 지질을 이해하는 사람들인것이다. 그런데 지난 연말에 이 자원`문제때문에 15년동안 미국있다 은퇴한사람에게 자원을 탐사해달라는 요청이 있었다. 사람을 알아주는 것이 하도 고마워 무턱대고 시작했으나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곳 인도네시아에서 그 옛날의 산악후배, 훌륭한 지질후배인 전태욱을 다시 만났던 것이다.  그의 도움으로 밀림으로 조사할수 있는 탐사대를 구성하여 눈길돌릴 수 없는 그 열중에 빠져있다. 부산에서 선후배 모시고 등산좀 하려고 한국에 왔는데, 이국땅 밀림에서 구름잡는 이 작업이 너무나 힘들지만 기쁨과 고통속에 행복에 취해있다. 문옥형에게 축하하고 진이형(박진)의 얼굴도 너무나 젊게 늙어서 참 고맙다. 그러고 보면 인생에 그리 많은 사람들이 존재하는것이 아니라는 생각에 때늦은 후회에 너무나 미안한 생각에 젖는다. 인도네시아 JACARTA에서 서정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