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다섯째 날 ( 타다파니 2630m– 구르중 - 촘롱2170m )

혼자 방 한간을 쓴다면 트윈 보다는 더블베드를 쓰면 좋다. 엎드려 일지도 쓰고 짐도 이리저리 늘어놓아 손에 닿기 좋다. 네번째 밤인데도 다음날 새벽 3시도 안되어 깨고 말았다. 늘어지게 자기에는 아깝기도 하다. 밖을 나와 보니 구름 때문인지 별도 없다.

결국 메트리스는 점심 먹을 때 깔고 앉는 것 말고는 쓰지 않았다. 바지도 한번도 빨지 않고 10일 입었으며 속옷도 한번 빨았으나 날씨가 안 좋아 말리기도 힘들다. 장기 등반 왔다고 생각하고 그냥 물적셔 몸이나 닦고 머리나 감는 편이 좋다. 샤워하고 난뒤에 냄새나는 옷 다시 입는 것 보단. 양말도 3일 정도 신는다 생각하고. 속옷도 사나흘에 한번 갈아입는다 생각하면 너무 여벌로 가져올 필요는 없다. 특히 고추장이나 김치 같은 것은 안먹어도 전혀 생각이 나지 않았고 가져간 뽁음 고추장과 튜브고추장 2개는 네팔리 줘버렸다.

먹을 것은 간식을 초코렛바, 양갱, 비스켓, 캔디 등으로 사흘 치 정도로 포장하여 몇 개 가져가면 좋다. 초코렛바나 비스켓은 로지에도 파나 비싸고 맛도 우리것만 못해 보인다.

방풍방수복은 꼭 챙기고 여벌 바지나 두꺼운 것 하나, 상의는 반팔이나 얇은 긴팔 티를 몇 개 챙기고 두꺼운 티도 하나 챙긴다. 여기에 파일복을 입고 더 추우면 우모복을 입으면 1, 2월 트래킹에도 걱정이 없을 것이다. 실제로 MBC에서 오후4시 기온을 재니 6도 정도이고 아침에 보니 살얼음이 얼었다. 방에 난방은 없으니 겨울 침낭은 준비하는 편이 좋다. 침낭이 얇으면 옷을 입고 자면 될 듯.


날씨가 좋은 날엔 이곳 로지 마당에서 보면 경관이 가장 좋을 것 같다. 아래로 큰 계곡과 낮은 산이 위로는 마차푸차레가 압도할 것 같다. 그러나 날씨 탓에 봉우리만 조금 보고 대구 부자와 헤어졌다. 오늘은 촘롱까지 간다.

촘롱에 도착하여 로지를 정하고 식당에 들어가니 냉장고가 먼저 눈에 띤다. 산행하는 맛은 별로 없고 진짜 여행이다. 이곳까지 전기가 있다니. 냉장고는 누가 어떻게 지고 왔을까. 전기는 MBC까지 들어온다. 가까운 작은 발전소에서 당기는 모양이다. 전기불켜고 별로 할일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오히려 전기 들어오는 것이 히말라야 산중의 현대화를 상징하는 것 같아 덜 반가왔다.

샤워를 하고 캔 맥주 (전기와 냉장고 덕분에 아주 시원함)를 하나 들이키고 낮잠을 잔다. 닷새째 못자서 그런지 얼굴도 안좋아 보이고 가이드가 You look serious. What’s problem?이라도 성가시게 자꾸 묻는다. 한 숨 자고 나니 컨디션이 괜찮고 저녁 밥맛도 좋다.

촘롱은 상당히 큰 동네다. 어제 묵은 로지도 나쁘진 않았지만 위로 더 좋은 로지들이 많았다.


6.        여섯째 날 (촘롱(2170) – 시누와 – 뱀부 – 도반(2600) )
촘롱 마을을 내려서니 온갖 물건을 파는 꽤 큰 가게가 있다. 이곳에서 건전지 몇 개를 산다. 작은 디카는 밧데리 소모가 심하다. 220볼트라서 충전기가 있으면 쓸 수 있을 것이지만 충전용 밧데리도 시원찮아서 알칼라인 8개 정도 사왔는데 카메라에 문제가 있어서 20장 찍으면 밧데리 갈라고 한다.

나무 우거진 것이 우리나라 산 비슷한 곳을 죽 내려가기를 되풀이 하니 대나무 숲이 시작된다. 고라파니에서 타다파니 올때도 밀림 같은 곳을 건너왔다. 물도 흐르고 나무도 이국적이고 이런 것도 볼만하다. 대나무의 영어단어가 bamboo라서 그런가 하고 외웠는데 알고 보니 인도나 네팔말로 대나무를 뱀부라고 한단다. 북 유럽에는 대나무가 없고 아마도 인도에서 들어가면서 말이랑 함께 들어갔나 보다.

에베레스트를 볼 수 있는 쿰부지역 트래킹과 사뭇 다른 점은 비로 이런 것이다. 그곳에는 비행기로 루크라에 내리면 2800m 정도 고지이고 하루나 이틀가면 3500m즘 되는 남체 바자르. 이 이상 고도를 올라가면 나무 같은 것은 없고 풀이랑 작은 관목 뿐이다. 그것도 쿰부쪽에는 많이는 없고 돌더미와 흙먼지 날리는 길을 오래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곳은 이튿날 푼힐까지 갔다가 다시 내려왔다 올라갔다를 반복하며 몸의 고소적응을 시켜주며 숲을 한참 걷는 것이 오륙일은 된다. 비가 내려서 인지 곳곳에 이름 없는 폭포가 우리의 토왕폭 만하게 걸려있는 것이 눈에 띈다.

뱀부를 지나면 꼭 부다로지(Budda Lodge)에서 달밧을 시켜먹으라. 타다파니에서 그랬고 이곳 부다로지에서도 아주 맛있었다. 이 정보는 촘롱 로지에서 영국여자가 주었다.

도반에 이르러 방을 잡고 푹 쉬었다. 한국팀들은 1시간 반 정도 더 간 히말라야 로지에 묵는 것 같았다. 그곳에 묵으면 다음날 ABC까지 갈 수 있는데 하루만에 2900에서 4100까지 올리는 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을 것 같고 도반에서 묵고 다음날 MBC까지 가는 것이 나을 듯하다.

도반의 TIP TOP Lodge에 묵었는데 저녁생각이 별로 없었다. 낮에 달밧이 맛있어 리필을 시켜 더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하다. 그러나 안먹기도 그렇고 하여 에그베지터블치즈 스파케티를 시켰는데 정말 맛있었다. 다른 곳에서 먹어본 것이랑은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이곳에 묵거든 꼭 이집의
스파게티를 추천한다.

오후에 비를 맞아서 로지를 잡자 방에 버너를 피워 가이드와 함께 옷도 말리고 커피도 한잔 마시고 하였다. 혼자 갔지만 혼자가 아닌 것은 무슨 작업을 잘해서 여자 트래커와 일행이 된 것이 아니라 가이드랑 친구처럼 지냈기에 그러하였다. 가이드가 깍듯하게 사장처럼 대해 주는 것이 기분 좋을는지 몰라도 그런 것은 옛날 우리도 못살던 시절 더 못사는 사람에게서 대접 받아 기분 좋아하던 그때 이야기 같고 그냥 친하게 하면 친구한명 생기는 것이 되니 저도 즐겁고 나도 즐겁다.
라면에 햇밧 준비하여 먹이고 커피도 끓여 나눠 마시고 했더니 저도 저할 일 알아서 했다. 내려올 때 머리도 아프고 비도 찔찔내리는데 도반에는 방이 없어 뱀부에도 없을까봐 달려 내려가서 방 잡아놓고 다시 내 짐을 받으려고 달려 올라와주었다. 특히 혼자서 간다면 가이드랑 잘 지내는 것이 트래킹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중요할 것 같다.

옷을 말리면서 레썸 삐리리를 같이 불렀다. 사나흘 매일 부르다 보니 이제 다 외웠다. 레쎔 삐리리는 30년 된 노래라는 데 트래킹 송으로 유명하고 그 의미를 물어보니 실로 우리의 산노래와 아리랑 같은 민요의 내용과 비슷했다. 나는 아리랑을 들려 주었다. ‘아라리오’ 이부분이 특히 마음에 든다고 하면서도 못 따라 했다.

조금 누워서 쉬다가 나가보니 비는 그치고 구름이 앞 비탈진 산면에 걸려있고 폭포가 한 줄기 시원하게 떨어지는 것이 장관이다. 노랑빨강 단풍과 하얗게 떨어지는 물줄기와 뭉게뭉게 걸린 구름위로 조금씩 솟아오른 작은 봉우리들. 높고 흰산만이 감동을 주겠는가?

촘롱부터는 락시나 뚱바가 없다. 쿠크리(Khukri)라는 작은 병의 럼주를 따뜻한 물에 타 마시면 몸도 녹이고 괜찮았는데 럭시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아예 처음부터 안 마시는 것이 낫다. 다음날엔 3700까지 가야하고 그 다음날은 목적지인 ABC이므로 3일간 금주를 하는 것이 두통을 막는 예방책일 것이다. 이날 마시던 것을 남겨서 다음날 저녁에 더 보태어 마셨고 결국 ABC에서는 머리가 아파서 오래 있지 못했다. 술을 안 마셨더라도 약한 체질 때문에 두통이 왔을 수도 있지만 술을 마셔 위험성을 증대시켜서는 안될 것이다. 이곳 안나프루나 지역에는 쿰부지역에 있는 창이라는 우리 맑은 막걸리 비슷한 것은 볼 수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