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omy sunday.

살다 살다 이렇게 심한 황사는 처음이다.
사실 이런 날씨에 야외활동은 결코 좋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오래전 부터 산행계획은 있었고 특별한 일이 없으면 계획을 존중하지않을 이유가 없기때문에 당일 아침에 정한 시간에 사람들이 모인 것뿐이다.  예상만 없었다뿐이지 이 정도 지독한 황사는 산행취소의 충분한 이유가 되고도 남을 "특별한 일"이건만 누구 한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않는다.
산이 주는 기쁨과 날이 개이면 좀 나아지겠지 하는 경험의 법칙을 믿어서일까.

어쨌든 차 2대에 분승하여 아침 8시10분 경에 명륜동 지하철 역 앞에서 출발하였다.
언양 들어가는 입구에서 울산에서 홀로 오신 이희태 선배님을 태우고, 산행시작 초입인 제일관광농원(구 기도원)에 도착하니 09시 30분경이었다.
개인적으로 몇번 와 봤던 코스라서 헷갈릴 것이 없는 길이다.
농원 입구에 주차하고 아래쪽 찻길을 따라 5분쯤 내려가면 산행시작 깃점을 알리는 표식기가 주렁 주렁 매달려 있다. 시작부터 가파른 경사길이지만 그리 길지 않아서 끝이나고(약 20분 정도) 암벽지대가 나타난다. 암벽장비 까지는 필요없지만 고도감을 느낄 수 있는 약한 릿지등반 정도로 생각하면 되겠다.
중간에 어려운 데는 로프도 설치되어 있어서 특별히 위험한데는 없지만 조심할 필요는 있다. 특히 바위에서 날고 기는 바깥분과는 달리 암벽등반에 취미가 없는 양경희 선배는 몸이 굳어 긴장감이 역력하다.
평소 날이 좋을때는 훌륭한 조망과 경치를 보여 주는데 한치 앞도 분간하기 힘든 짙은 황사로 경치감상은 일찌기 접었다.
11시경 백운산(885m) 정상에 도착. 평소에 주말에는 제법 등산객들이 보이는 곳인데 우리말고는 사람들이 없다. 나중에 뉴스를 보니 평소 주말 등산객들의 30%밖에 오늘 산을 찾지 않았다고 한다. 황사도 황사지만 바람도 꽤 쌀쌀하여 한자리에서 오래 쉴 수가 없다.
가지산과 운문산을 잇는 주능을 붙기 위해 한참 내려 갔다가 다시 가파른 오르막을 한 20~30분 가량 올라야 한다. 고갯마루에서 잠깐 쉬었다가 오르막을 올라 주능에 이르니 12시 경이다. 반대편 사면에서 꽤나 찬바람이 올라온다.
능선상 적당한 장소에 전을 펴고 점심을 먹는데 4월의 날씨 답지 않게 상당히 춥다.
즐겁고 느긋해야 할 식사가 쌀쌀한 황사바람속에서 불안하고 쫓기듯이 이루어져 속이 편하지 않다.

아무도 반기지 않듯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황사.  
나뭇가지에 자욱한 미세먼지가 쌓여 있다가 스쳐 지나가는 우리 옷에 노란 가루를 뿌린다.
흐린 시야로 경치구경 못하는 것은 둘째고 대책없이 들이마신 매캐한 황사공기로 어느새 목은 칼칼하고 눈은 침침하다. 마주치는 등산객중에는 마스크를 한 사람도 있다.
황사의 폐해에 대한 전문가의 의견이 나뉘듯이 우리 회원들의 전문가적인 식견도 가지각색이다. 발원지인 중국에서 오히려 황사의 순기능을 역설하는 의견도 간간이 나오지만 우리 회원 중에도 그 순기능을 주장하시는 분이 있다는 것이 놀랍다. 토양의 산성화를 막아준다나...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은 제 자유지만 모처럼 휴일날 화사하고 따뜻한 봄의 대기를 즐겨야 할 권리가 있는 우리로서는 '황사테러'로 인해 결코 유쾌한 기분이 아닌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점심을 먹고 가벼운 능선 길을 산책하듯이 걸어 1시간 안걸려 가지산(1,240m) 정상에 도달하였다.
여기서도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이 없다.
석남재쪽으로 하산하다가 처음 나타나는 고개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방향을 잡으면 우리 차를 세워둔 관광농원 쪽이다.
친절하게도 푯말도 잘 위치하고 있어서 길 찾는데 어려움은 없다.
결코 짧은 산행길은 아닌데 어째 산행이 밋밋하다 느끼는 것이 지난 산행때의 영향인듯,
지난 월봉산 처럼 변화무쌍하고 긴장을 늦추지 못하게 하는 거친 잡목등반이 아니어서 그런가?
황사때문인지 내려오는 계곡길이 몽롱하고 지겹다.
다 내려 와서 계곡에 발을 씻고 산행을 마무리하고(오후 3시 30분) 황사에 좋다는(또는 근거 없다는) 돼지고기 삼겹살 먹으러 언양 시내로 향했다.

인생살이가 굴곡이 있듯이 우리 산행도 늘상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다.
산행내내 따라다닌 황사가 왠지 사람을 무력감에 빠뜨린다.
각자 지닌 안팎의 고민거리를 상쾌한 산행을 통한 카타르시스로 날려 버려야 하는데,
몸이 무거운 것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것은 나만의 일인가?
이런 황사가 며칠만 더 지속된다면 멀쩡한 사람도 우울증에 빠지게 될 듯하다.
경기도 안 좋은데 황사까지...
환경의 지배를 받는 얄팍한 인간의 속성과 한계를 새삼 깨달은 산행이다.

날이 궂을수록 산행이 더 재미있다는 모 선배의 산행철학을 배울려면 아직 멀었나 보다.
다음 산행은 햇살 화사하고 맑은 대기 속에서 굵은 땀방울 쏟아내는 즐거운 산행을 기대 해 봅니다.  

산행 참석자 : 이희태, 김치근, 신양수, 박영도, 신종철, 양경희, 하정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