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일 (7월 30일) : 월요일

간밤에 소변이 마려워 밖을 나오니 달이 휘영청 밝다. 시계를 보니 새벽 1시 30분.
이뇨제인 다이아막스의 위력이다. 날은 그렇게 춥지는 않다.
들어가서 누웠는데 이충한 선배님의 끙끙 앓는 소리가 들린다.
어떻게 서로 도움이 안되니 안타깝다.
미안한 일이지만 앓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 나니 텐트에는 서리가 내려 있고 좀 쌀쌀하지만 날은 맑다.
우리나라 가을 날씨 비슷하다.
산소압이 낮아서 그렇지 공기는 무지 맑고 깨끗하다. 다들 간밤에 추웠다고 하는데,
나는 아주 따뜻하고 편안하게 잘 잤다. 거금 40만원을 주고 산 새 침낭 덕분이다.
다나에서 나온 오리털 다운침낭인데 과연 다나의 명성은 알아 줄만하다.
오늘도 사실은 고도를 많이 높이지는 않지만 고소적응을 위해 중요한 날이다.
약 400m 고도를 높혀 4,200m 고도의 과도영이라는 데가 오늘의 목적지이다.




                                        혜초여행사 직원 도주훈 씨와 함께

아침 9시 출발하여 먼저 대해자와 화해자란 곳을 들러서 경치를 감상하고 과도영으로 가는 일정이다.



오늘도 시작은 참 좋다. 해가 뜨니 날은 포근하고 주위 경치는 그야말로 그림이다.
표현력이 부족하여 문장으로 옮기지 못하는 것이 한 스럽다.







하지만 몸이 좋지않은 충한 선배님에게는 좋은 경치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 것 같다.
쉴 때마다 들어 누워서 가쁜 숨을 내 쉰다. 옆에 누가 듣는지 상관없이 몇 번이고 얘기하신다.
“내 다시는 고산(高山)에 안 갈끼다. 내년에 히말라야도 절대 안 갈끼다. 내보고 같이 가자고  하지 마라이~”



대해자(大海子), 약 4,000m 고도에 펼쳐진 그림 같은 넓은 호수다.




                                                 대해자(大海子)


                                                  대해자(大海子)


여기서 사진도 찍고 좀 쉬었다가 또 한 20여분 걸어서 화해자(花海子) 라는 곳까지 갔다가 돌아 오기로 한다. 충한 형님은 어차피 다시 이 곳으로 돌아 올 것 이므로 여기서 그냥 누워서 쉬기로 했다.


                                                    화해자(花海子)


                                                    화해자(花海子)


대해자,화해자 두 곳 다 고산의 넓은 초원의 늪지에 있는 호수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펼쳐진 높은 산과 호수, 그리고 그 아래서 점점이 흩어져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야크와 말들. 여유와 평화, 두 단어가 떠 오른다.

두 곳을 다녀오느라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다.
또 그만큼 체력소모가 있는 것이다.




이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니 열 걸음 걷고 한번 쉬는 꼴이다.
이충한 선배님은 저 뒤에 처져서 보이지도 않는다.








우리 팀 말고도 다른 여행사에서 온 한국사람들도 만나고 제법 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쉬엄 쉬엄 올라가는데 이충한 선배님이 말을 타고 추월해 가신다. 모로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각자 체력에 맞게 막영지인 과도영에 도착하니 먼저 온 사람과 뒤에 온 사람이 근 1시간 정도 차이가 있다.
시간은 오후 3시경이다. 점심도 못 먹고 오니 허기도 지고 더 힘든 모양이다.






                                                   제 2 막영지 과도영

날은 어느새 흐려있고 싸늘한 초겨울 날씨로 바뀌어 있다.
싸늘한 날씨에 숨도 차고 힘이 더 들어서 가만히 있어도 그리 편하지 않다.
하기야 여기 고도가 4,200m 이고 5,000m 고도에서는 산소압이 평지의 50%라고 하니까 여기는 아마도 산소압이 평지의 60%정도 밖에 안될 것이다.
그리고 기압이 낮으니까 간식의 비닐 포장이라든지 일회용 김치 비닐포장이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다.
또 민망스럽게 개스(방귀)도 너무 자주 분출이 되는데 이것도 기압이 낮아서
발생하는 것인데 고소적응이 잘 되고 있다는 증거라고 가이드가 얘기해 줘서 덜 민망해 진다.
여기 과도영도 우리팀 말고도 일본팀, 그리고 T&C 여행사 소속의 등산객들 하여
텐트가 30여동은 되는 듯 하다.
텐트주위로 야크들도 많이 보이고 야크들을 쫏는 현지인들의 고함소리가 요란하다.
원래 야크들의 땅에 사람들이 온 것인데, 사람들이 이렇게 떠들어도 되는지 모르겠다.

다들 상황이 어제보다 안 좋아 보인다. 저녁에 식사를 하기 위해 모였는데 11명중 빠지는 분들이 많다.
우스개 소리로 사람들을 즐겁게 해 주시던 서울서 오신 50대 아저씨도 식사하러 안 나오고
최연장자 두 분도 비교적 잘 견디시더니만 오늘은 춥고 한기가 든다며 두툼한 파카를 입고
두통약을 드셨다고 한다. 70을 바라보는 나이에 젊은 사람도 힘든 산행을 잘 하시는 것을 보니 놀랍고 존경스럽다. 이충한 선배님도 도저히 밥이 안 넘어 가는 모양이다. 안 먹으면 체력이 더 떨어지고 체력이 떨어지면 고소증을 견디기가 더 힘드니까 억지로 라도 밥을 먹어야 하는데, 두통과 오심, 어지러움증으로 밥 먹기가 힘든 것이다. 급기야 이정희 선배님은 심한 두통에 구토도 하고 얼굴도 많이 부었다.
양수 형님은 어제 밤 숨이 차서 잠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
이정희 선배님에게는 두통약과 소화제, 다이아막스 한알, 비아그라 반알 까지 처방하고, 약물에 거부반응을 보이던 양수 형님도 오늘은 순순히 내 처방을 받아 들인다. 다이아막스 한알과 비아그라 반알.
비교적 컨디션 좋은 강태 형은 다이아막스 한알. 두통이 심한 충한 형님은 의사답지 않게 의외로 약에 대해 거부감이 많다. 아무리 두알 드셔라고해도 타이레놀도 한알이상 안 드신다. 그러고는 끙끙 앓는 체질이다.
나는 오늘도 다이아막스 한알을 먹고 비싼 돈 주고 구입한 비아그라를 처음으로 먹었는데 반알만 먹어야 하는데 한알을 먹고는 이것이 나중에 오히려 역효과가 나서 한숨도 못 자게 될 줄이야!




참고로 이야기하면 고산증에 효과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다이아막스는 강력한 이뇨제로서 소변을 많이 배출하도록 한다. 그리하면 혈액의 혈색소 농도가 올라가서 산소의 운반능력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실제로 고소에 적응된 현지인의 혈색소 농도는 일반인보다 많이 높다. 한마디로 피가 걸쭉(?)해 지는 효과이다.
하지만 단기간 적당량을 쓰야한다. 칼륨이라는 전해질 성분을 배출하는 작용이 있어서 저칼륨혈증이 나타날 수 있고 저칼륨혈증이 나타나면 가볍게는 손, 발이 저리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근 무력증이 올 수 있다.
비아그라는 최근에 고산에서 효과가 입증된 약이다.
알다시피 비아그라는 발기부전 치료제이지만, 원래는 폐 고혈압증에서 폐혈관을 확장시키는 약이다. 그래서 산소가 부족한 고소에서 폐혈관을 확장시키면 숨 쉬기가 한결 편해지는 것이다.
하지만 저혈압을 유발하여 빈맥을 야기시킨다. 내 경우도 욕심을 부려서 한알을 먹고는 밤새 빈맥에 시달려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 겪게되는 두통은 저산소증으로 인하여 뇌의 허혈상태가 오게 되고 이로 인한 보상작용으로 뇌혈관이 확장되고 뇌혈관벽에 있는 통증수용체를 자극하여 두통이 오는 뇌 혈관확장성 두통이라고 생각된다.
대개는 타이레놀 같은 약이 도움이 좀 되지만 뇌혈관 수축제 같은 전문약을 쓰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다는 판단이다. 물론 저산소증을 해소하는 것이 근본 해결책이지만.
이상, 나의 짧은 의학지식에 근거한 고소증에 대한 이론적 해결책이다.  
그리고 이런 약을 쓰지 않고 현지인처럼 아주 서서히 고소에 적응해 가는 것이 몸에 무리가 오지 않고 제일 좋은 일이긴 하지만, 짧은 기간에 등반이라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해야 하는 우리로서는 필요한 최저용량으로 조금이라도 덜 괴로운 등반을 할 수가 있다면 약의 사용은 차선책이라고도 할 수가 있겠다.


  
제 5일(7월 31일) : 화요일

오늘은 따구냥봉 정상을 오르는 날이다. 이번 산행의 하이라이트 라고 할 수 있다.
쓰구냥산군은 네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는데 네번째가 제일 높아 해발 6,250m(磨妹山)이고, 큰 언니가 5,355m(大姑娘山),

둘째가 5,454m(二姑娘山), 셋째가 5,664m(三姑娘山)로 서로가 어깨를 나란히 한 체 서있다.
우리가 오르는 것은 따구냥산이다.

어제 밤 10시경 자리에 누웠지만 비아그라의 부작용으로 밤새 심장이 벌렁거려 거의 잠을 못 잤다.
텐트 밖에서는 야크들이 왔다 갔다 텐트를 스쳐 지나가는 소리도 들리고 총체적으로 안정된 밤이 아니다.
하기는 야크들의 땅에 사람들이 와 있으니 저거들이 더 불안했으리라.
새벽 3시 30분 기상시간은 어김없이 오고 자리에서 일어나니 몸이 무겁다.
새벽 4시 식당 텐트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모이는데 다들 잠을 제대로 못 잤는지 얼굴이 푸석 하다.
그래도 식사나마 하러 오신 분들은 상태가 좀 나은편이고 충한 형님을 비롯하여 안 오신 분들이 태반이다.
아침은 컵라면인데 고산에서 면이 잘 불지가 않는다. 깔깔한 입맛에 억지로 몇 젖가락 쑤셔 넣듯이 먹고 주섬 주섬 짐을 챙겼다. 

결국 우리쪽에서는 이충한 선배님이 정상등정을 포기하시고 강태 형 텐트에 같이 있던 유희문 씨도 텐트 밖으로 나오지 못 한다.

04시 30분 랜턴을 켜고 출발이다.
다른 팀들도 같이 출발하여서 랜턴 불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70대 할아버지의 놀라운 노익장

몇 발자국 떼지도 못하고 벌써 숨이 찬다. 털썩 주저앉아 가쁜 숨을 토해낸다.
이런 고산에서 잠도 제대로 못 잤으니 몸이 가벼울리 없다. 예상 못한 바는 아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경험과 관록, 정신력이지 않겠는가?
가이드 도주훈 씨에게 힘을 불어 넣는 노래를 청했다. 아무리 가이드지만 힘든 건 마찬가진데.
잠시 머뭇거리다 노래를 부른다. 컴컴하고 조용한 산에 노래소리가 퍼진다.
“브라보 브라보 마이 라이프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봄 여름 가을 겨울의 노래다. 가사가 좋다. 절로 힘이 나는 것 같아 숨이 차는 것도 잊고 나도 화답 겸 산 노래 하나를 뽑았다.
“아득히 솟아 오른 저 산정에 구름도 못 다 오른 저 산정에 사랑하는 정 미워하는 정 속세에 묻어두고 오르세~ 저 산은 우리 마음~”

가쁜 숨을 내 쉬며 빤히 보이는 고개마루에 올라 서니 거의 06시다. 어스럼하니 어두움이 물러가고 있었다.




조금 있으니 어둠 속에 몸을 숨기고 있던 쓰구냥의 산군들이 조금씩 모습을 보여 주더니 점점 주위가 밝아지면서 웅장한 자태가 본 모습을 드러내어 사람들의 탄성이 절로 나오게 한다.
이것을 보려고 이 고생을 했구나 싶으니 가슴이 뭉클하다.




이제부터는 숨이 찬 줄도 힘든 줄도 모르겠다. 정상까지 얼마 남지 않아서도 그렇지만 이 여름에 5,000m 고지에 서서 만년설이 덮힌 6,000m 의 산을 볼 수 있다는 것이 예사 일인가?
오늘은 날도 맑아 시야도 좋았다. 정신없이 셔트를 누르면서 한발 한발 정상으로 올랐다.




              좌측 만년설로 덮힌 산이 쓰(四)구냥, 우측으로 싼(三)구냥, 얼(二)구냥산이다.








마침내 07시경 정상에 섰다. 기념 촬영하고 간식도 꺼내 먹고 등정의 기쁨을 나누었다.
바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지만 손이 시릴 정도니까 기온은 거의 영하에 이른 것 같다.










                                                  장족 현지 가이드와 함께 정상에서

한 15여분을 머물다 아쉬움을 뒤로 두고 하산을 시작했다.
한참을 내려와 안부에 도착했을 즈음, 양수 형님이 정상에다 배낭을 놓고 빈 몸으로 내려 왔다는 것이다.
추위와 저산소증의 여파로 정신이 가물해서인가? 배낭을 안 맨줄도 모르고 그냥 내려 왔으니.
다행히 눈치 빠른 가이드인 도주훈 씨가 배낭에 달린 혜초여행사 마크를
보고 우리 팀 배낭인 줄 알아채고 들고 뒤 따라 내려 왔다.
내려 갈 때는 거의 쉬지도 않고 각자 잘도 내려 간다.



과도영 캠프에 도착하니 09시다. 이충한 선배님은 어둡고 추운 텐트에서 아침도 거른채
외로이 두통과 싸우면서 누워 있었다.
아픈 와중에도 우리가 오니 반가운 모양이다. “너거들 오니 좋다.”
11시경 점심으로 의아스럽게도 비빔냉면이 나온다. 왜 하필 이 추운날 비빔냉면일까?
그래도 준비한 사람들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억지로 먹었다. 먹다보니 그런대로 먹을만 하다.
11시 30분 경 일륭에서 말을 몰고 마부들이 올라 왔다.




갑자기 비도 오고 날이 쌀쌀하다. 각자 말을 타고 하산이다. 처음에는  겁도 좀 나고 불안 하더니만 좀 익숙이 되니까 요령이 생긴다.

우리 집 작은 아들보다 조금 큰 녀석이 내가 탄 말고삐를 쥐고 내려간다.
말은 안 통하지만 손짓 발짓으로 말 타는 요령을 설명하는데 조금 알아 들을 만 하다.





오르막에서는 몸을 앞으로 숙이고 내리막에서는 몸을 뒤로 빼서 하중 분산을 해 주는 것이 요령이다.
그리고 몸에 힘을 빼고 말 흔들림에 따라서 같이 몸을 흔들어 줘야 덜 힘들다. 양수 형님은 말이 마음에 안 드는지 걸어서 간다. 두 시간 남짓 내려오니 멀리 산행기점인 일륭 마을이 보인다. 긴장이 풀리는지 갑자기 피로가 몰려오고 몸에는 약간 오한도 있다. 따뜻한 물에 푹 담그고 싶다.

이로써 공식 산행일정은 끝이다. 물론 그날 저녁에 양 바베큐를 먹으며 제법 술도 거나하게 마시면서 회포도 풀었고 다음날도 일륭에서 성도까지 머나먼 길을 힘들게 되돌아 나오는 여정을 거쳤지만 마음은 이미 산을
떠나 일상으로 와 버렸기 때문에.


산과 현실에 대한 나만의 생각인지 모르지만, 산의 높은 고도를 넘음으로써 현실의 벽 정도는 쉽게 넘을 수 있으리라는 산쟁이의 착각 아닌 착각이 무모한 자신감으로 실제 현실의 복잡한 문제를 단순화하여 해결하는 방책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종종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실제 직접적인 도움은 안되더라도 산을 통해 얻는 마음의 평정, 정신적인 무장으로 현실의 스트레스를 이겨낼 수 있지 않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체력적인 단련으로라도 분명히 도움은 되고도 남을 것이다.
그래서 각자 지닌 고단한 삶의 무게를 지고 올해 쓰구냥의 산신령의 도움을 받고자 다들 먼 길을 나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길 위에서 길을 얻기 위해….

산행 참석자 : 이충한, 신양수, 이정희, 김강태, 하정호

선배님들, 모두 고생 많았습니다.
하지만 함께 평생 잊지 못할 쓰구냥의 비경을 감상하게 되어 행운입니다.
내년에는 히말라야에서  함께 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