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5 화요일 원정 18일째

아침에 일어나니 속만 쓰릴 뿐 컨디션은 좋다.
날씨 또한 매우 화창하다.
새벽에 중국대가 먼저 출발하면서 캠프지가 왁자지껄했지만 마음 뿐 몸이 말을 안들어 계속 누워있다 보니 늦게 출발한다.
09:30 출발.
캠프지를 출발해서 얼마간은 경사가 완만한 능선이다.
손이 굉장히 시리다. 바람이 많이 불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찬데 온도를 가름할 수가 없다.
눈앞에 경사가 급한 사면이 나온다. 왼쪽의 넓고 오른쪽보다 완만한 사면으로 방향을 바구었다. 덕규형님이 계속 처진다. 어느새 뉴질랜드팀이 우리 밑에 와 있다.
그들도 우리쪽으로 방향을 틀어서 올라오고 있다.
이 사면은 넓고 지리한 길이다. 서서히 오른쪽으로 붙어서 능선으로 향한다.
뒤에 오던 덕규형님이 상태가 안 좋은지 내려 가시려한다.
한참을 올랐을까. 앞에 능선의 끝자락이 보이는 것 같다.
저기를 올라서면 축구장보다 넓은 사면이 이어지고 돌무더미가 나오고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정상이라고 다른 팀의 보고서 내용이 생각이 난다.
지피에스는 7300을 가리킨다.
잠시 앉아 쉰다. 이제 노하우가 많이 생겼다. 고소적응 방법도 나름대로 방법을 찾았고 호흡법(나는 들숨보다 날숨에 비중을 두어 날숨을 깊이 쉬면 들숨은 알아서 깊이 들이마셔졌다. 수영할 때도 이런 방법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다)도 잘 된다.
위에서 보는 주위의 산군의 풍경은 아름답다는 말 말고는 표현할 형용사를 지금으로써는 찾을 수가 없다.
밑에서 흰구름이 조금씩 올라온다. 위를 한번 본다.
다리에 힘이 빠진다. 내려가고 싶다. 아니 의지력이 약해지고 가족의 얼굴이 아른거린다.
내려가기로 마음을 먹는다.
바로 밑에 헌남이 형이 온다. 각종 스폰서기와 지피에스를 주고 죄송하다고 말했다.
헌남이형은 여기서 포기하면 너무 아쉽지 않느냐며 올라가자고 독려했지만 더 이상 올라갈 용기와 의지를 잃었다.
실을 떼고 부츠에 스키를 고정시키고 내려온다.
어느새 캠프 3에 도착했다. 배낭을 던지고 스키도 아무렇게나 벗어버리고 텐트에 몸을 던졌다.
누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야 누구 없나 물 좀 줘” 대장의 목소리다 눈을 뜨니 18:00시다. 얼마를 누워있었는지 모르겠다. 겨우 몸을 일으켜 남은 물을 드리고 감격의 등정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대장은 시체처럼 텐트에 누웠다. 잠시 후에 헌남형이 도착했다.
대장보다는 조금 나아 보였다.
부럽기도 하고 기뻤다.
밥을 하고 물을 녹여서 허기를 채웠다.
그리고 잔다. 밤새 조금씩 눈이 오는 것 같다. 우박소리도 좀 드리고 그래도 잔다.
속은 여전히 아프다. 무전도 안되니 밑에서는 걱정이 많겠지.

7/26 수요일 원정 19일째
하산이다. 어제 내린 눈이 쌓여 대충 벗어둔 스키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쌓였다.
부대장과 원수형, 덕규형이 캠프2에서 2차 공격을 위해 대기하고 있다는 가정 하에 캠프3에서 하산한다. 아니 그렇지 않았다 해도 덕규형님이 두고 간 짐을 가지고 갈 여력이 없다.
11:30 하산시작.
대장과 캠프2까지 사면을 넓게 턴을 하며 내려온다.
올해 3월 4월에 무주의 빙판에서 훈련했던 것이 도움이 많이 된다.
어떠한 설질에도 내려 가는 데는 지장을 느끼지 못하니....
그런데 이상하게도 올라올 때 이런 곳을 올라 왔던가 할 정도로 사면과 능선의 형태가 달리 느껴졌다. 캠프2가 보이는 언덕에 도착했다.
캠프2까지 경사가 급하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아서 크게 턴을 하며 신나게 내려온다.
12:45도착하니 뉴질랜드팀과 중국대도 캠프를 철수하고 있다.
우리 대원은 아무도 없다. 베이스에 무전을 해 본다.
여기서는 무전이 된다. 대원들이 무사히 베이스에 도착해 있다고 한다. 고마울 따름이다.
단장님이 포터들을 보냈는데 도착 안 했는지 물으신다. 주위를 둘러보니 현지인 3명이 있다.
부르니 종이쪽지를 보여준다. 단장님의 서신이었다. 내가 보냈으니 믿고 짐을 맡기고 무사히 내려오라는 내용의 편지였다.
우리와 교신도 안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상황을 고려하여 캠프2까지 짐철수를 위하여 포터를 올려주신 마음도 고맙고 그 판단력에도 존경을 표하고 싶었다.
사실 여기서 텐트를 다 걷어 철수한다는 것은 지금 생각해도 아찔하다.
14:00캠프2를 출발하여 캠프2 바로 아래 대포지에 도착해 묻어둔 짐을 파서 포터들에게 인계하고 계속 하산한다.
캠프1까지의 크레바스 구간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
16:30캠프1에 도착해서 텐트 2동을 철수하고
17:10 다시 내려간다.
나와 대장은 전진캠프 바로 위까지 스키로 내려가고 헌남형은 걸어서 스키대포지점에서 만났다. 스키와 부츠를 갈아 신고 일어서려니 다리가 풀린다. 헌남형이 전진캠프에서 텐트를 걷어 포터에게 인계하고 있는데 내려가서 도와줄 힘이 없다.
멍하니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내려간다.
18:00 전진캠프를 지나 먼지 나는 자갈길을 내려온다. 다시는 오지도 못 할 길이라는 생각과 그동안의 힘겨운 훈련과 등반의 기억이 주마등 같이 지나면서 눈물이 핑 돈다. 하지만 산을 돌아보기도 싫다. 산이 싫어진다.  
오기 전에 어느 스님의 말씀에 산을 보고 좋다 싫다 말해도 산은 그대일 뿐. 하지만 좋다 싫다고 말하는 사람이 좋아지거나 싫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산은 그대로인데 나의 마음이 상처투성인가 보다.
서글픈 마음과 잡념으로 몇 발 거다 쉬었다를 반복한다.
베이스가 저만치 가까이 보인다. 언제 도착하겠나 했는데 힘이 난다.
19:40 베이스 도착하니 모두 나와서 서로 힘들었던 등반의 노고를 가슴으로 격려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