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 김지성(2010년 2월 8일)


재학생들과의 꿈같은 산행을 돌아보며...
오랜만에 설악산 동계를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설래인다.
재학생들이 출발하기 전 이틀 전에 부실에 들려 짐 꾸리는 것이며 산행계획을 대충 듣고
인사를 하고 모르는 친구들 이름도 외우고, 삼겹살에 소주를 한잔하니 몸이 20년 전 학생시절로 돌아간 듯 한 팽팽한 열기로 그야말로 회춘(?)하는 빙의로 마냥 즐겁다.
그래서 나이를 먹어 갈수록 자기보다 나이가 적은 이들과 친하게 지내라는 말이 나온 것이 아닌지^^ 히히
규태형과 29일  저녁에 울산 문수구장에서 만나 설악으로 올라간다.
우리는 7번 국도를 선택해서 올라간다. 지금은 도로사정이 좋아 경주를 지나서는 거의 고속도로 수준의 속도를 낼 수가 있었다. 약 5시간 후 설악동에 도착할 수가 있었다.
바로 설악동 안으로 들어가 호텔앞 주차장에 세우고 바로 비선대로 올랐다.
개인장비에 술(소주패트6개, 맥주패트 6개), 귤1박스, 고기 5키로를 나누어 매고 오르니
학창시절의 생각이 간절이 난다.
비선대 도착하니 자정이다. 간단히 요기를 하고 취침.

비선대는 처음 자본다. 설악에서는 항상 야영만 했으니, 근데 여기는 조금 서늘한 것이 아침에 깨니 상쾌하다.
아침에 바로 토막골로 향한다. 연맹 중급반이 비박 훈련을 하고 벌써 여러줄을 깔아 놓은 상태다. 한 코스를 등반하고, 강사들의 눈치를 보며 우리 후배들의 자세 중 수정할 부분을 조언해 준다. 전체적으로 장비가 좋아져서 등반은 무리가 없으나 발동작과 프론트 포인팅의 동작이 부족하여 완력에 의해 오른다는 느낌이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했다.
연맹의 훈련 모습은 우리 때와 달리 자유스럽고 유쾌하게 진행되어 보였다.
훈련을 마치고 비선대로 내려와 해단식에 참여하고, 소주잔을 기울인다. 언제나처럼 끝나지 않는 해답 없는 대화를 계속하면서.....


설악을 내려온 후 다시 수요일에 규태형과 설악에 오랐다.
오색에 도착하니 3시정도 되었다. 지난주 보다 한결 수은주가 내려 가는게 앞날이 걱정이다.
운좋게 3만원에 온돌방에 온천까지 할 수 있는 모텔에 묵고 아침에 일어나 순두부에 아침을 해결했다. 후배들은 대청봉 밑에서 자고 오면 한계령에서 3시나 4시경에 조우가 가능 할 것 같다. 그래도 한계령 입구에서 아침 11시 이후에는 입산이 되지 않으니 미리 올라가기로 했다. 한계령에 오르니 12시가 조금 넘었다. 손발이 무척 시리고 바람까지 불어 온도는 영하 15도를 가리키고 체감온도는 더욱 낮은 것 같다.
통화를 해보니 중청에서 행동식을 먹고 출발한단다.
우리는 최대한 천천히 귀때기청봉으로 올랐다. 한계령에서 귀청까지는 봉오리를 두 개 넘어야 한다. 정상에 도착하니 여전히 바람이 많이 불고 그때부터 4시30분까지 이거 저것 별짓을 다하면서 본대를 기다렸다. 5시경에 본대와 만나 귀청 바로 아래서 막영.

다음날 훈련장소로 이동하여 이틀간의 훈련에 들어갔다.
훈련장소는 아주 휼륭했다. 프랑스기술과 설상훈련, 선등훈련 등 햇빛이 하루종일 들지않는 그곳에서의 몇 일은 즐거웠다.
하산하여 본대는 오세암 마등령을 넘어 비선대로 우리는 백담사를 거쳐 울산으로 내려왔다.
백담사에서 제설이 되지 않아 버스가 안다녀 낙담하고 한 1키로를 걸어 내려오다 다행이 절 봉고를 얻어 타고 룰루랄라 내려 왔다
재학생들의 아직 세련되지는 않았으나 풋풋한 산행과 열정, 원정에 대한 동경 등이 느껴지는 설레이는 산행이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산행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체력훈련과 등반능력을 키우기 위해  달리기와 실내암장을 열심히 다니기로 결심했고, 다행이 추운날씨여서 신발 버너 장갑 등 장비의 성능과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유익한 시간이었다.

“서있는 탑이 나를 가린다고 불평하는 소나무가 아닌
    저 탑을 넘어서 탑 위의 햇살을 스스로 받는 불평하지 않는 소나무를 꿈꾸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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