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 걱정은 기우였다. 게다가 도로사정까지 좋아서 6:40 사상을 출발하여 김해 대동
- 대구-중앙고속도로를 거쳐 희방사 매표소까지 3시간 만에 주파하였다.
따라서 오랫만에 서울 팀을 기다리는 여유를 부릴 수 있었다.
오늘따라 선배님들이 약속이나 한 듯, 이 사정 저 사정으로 불참하시고
김정실 선배님만 참석하셨다. 많이 서운해 하셨다.
특히 선배님이 운전해 주시는 차에 후배들만 오글 오글 타고 오려니 더 송구스러웠다.
게다가 후배들을 배려하여 자신의 도시락까지 들려 주시며 산행을 포기하셨다.
단양에 들린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렇게 느껴졌다.

10;00 산행시작. 얼마 걷지 않아 희방폭포가 나왔다.
어느 산 어느 계곡 가릴 것 없이 폭포는 항시 좋다
예쁜 여인의 보조개처럼 그것은 계곡을 더욱 매력적이게 한다.
희방사는 전각이 몇 채 안되는 조그만 절이었다.
절의 좌측으로 등산로는 이어졌고 이내 희방 깔닥재까지 이어지는 돌계단이 나타났다.(10;20).  숨소리는 증기 기관차의 그것처럼 거칠었지만 야릇한 희열이 느껴지던 숨가쁜 20여분이었다(10;40).   깔닥재에서 연화봉까지는 지능인 셈이었다.
간간이 6월의 햇살이 따가웠고, 천문대와 제 2 연화봉이 보이기 시작했다.
11;40 .연화봉 정상 (1383m)에 도착하였다.
왼쪽은 제 2 연화봉, 오른쪽은 제 1 연화봉, 비로봉으로 이어지는 연화봉에서의 조망은
정말 멋있었다. 하늘은 청명하여서, 유월의 신록으로 뒤덮인 산하를 세세히 볼 수 있도록
시계는 맑고도 투명하였다.
불어오는 1400 고지의 바람은 냉장고의 얼음물인 양, 사이다의 탄산가스인 양,
우리네 더운 몸의 기운을 한방에 잠재워 버리고는, 얼굴과 몸통과 팔 다리와 그리고 머릿속과 가슴 속과 허파 안과 심장 안까지 속속들이 시원케 하였다.
각자 준비해온 감자랑 참외랑 사탕류들을 풀어 놓고 여유있게 휴식을 음미하였다.
그러고보니 내 삶에 있어서 휴식이란 단어의 의미를 확실히 깨닫게 해 준 것은
1학년 맨 첫 산행이었다.
‘이런 것이 휴식이란 의미였구나’ 하고 무슨 큰 잘못을 어느 순간 깨달은 것처럼
몇 번이고 머릿속에 되뇌었던 기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정상태 선배님의 체력은 여전하였다. 걷는 속도가 우리와 조금도 차이가 없었다.
오히려 홍식이형이 꼭 10 여분씩 늦게 휴식터에 도착하였다.
형이 도착하면 우리는 출발하곤 했는데, 여기 연화봉에서는 여유있게 10 분을 더 쉬었다.
그런데 홍식형의 말이 걸작이었다.
“너희들 걷는 속도에 맞춰 오고 있잖아.”
참말로 만두는 빚기 나름이고 말은 하기 나름이었다.

12;00 제 1 연화봉으로 출발.
오늘의 산행 속도는 굉장하다. 가히 뛸듯이, 거의 달리듯이 모두들 귀밑머리 휘날리며
잘도 걸었다. 한반도의 척추인 백두대간, 이 소백능선은 그 대간의 아랫배 쯤 될까?
비로봉을 향해 걷고 있는 지금 우측볼의 땀방울은 낙동강 물이 되고
좌측볼의 그것은 한강 물이 된단다.
12;20 제 1 연화봉 도착. 점심을 먹었다.
남수가 주말 농장에서 재배한 쑥갓, 상치, 케일, 오이 등등을 모두들 맛있게 잘 먹었다.
1;00 출발. 비로봉으로 향하는 능선은 신불산에서 취서산으로 향하는 능선처럼 풀밭이 인상적이었다. 훼손된 능선을 복원시키는 중이라고 씌어진 팻말이 곳곳에 꽂혀있었다.
이 곳의 바람은 악명이 높다던데 오늘의 바람은 밀밭같은 능선의 풀들을 간질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1;50  비로봉도착. (1439m)
정상은 제법 넓었고, 사방의 풍광을 조망하느라, 사진찍히느라 나는 바빴다.
1000 고지 능선과 1400 고지 능선의 차이 때문인가?
사방으로 뻗어나간 능선과 그 사이 계곡들에서는 영남 알프스에서는 느낄 수 없는
우람한 근육질의 남성미, 육중한 중량감이 느껴져왔다.
그리고 연이어 광활한 해방감이 느껴져왔다.
그것은 도시의 골목길에서 느끼는 답답하고도 숨막히는 느낌에서,
한반도를 한 눈에 굽어 볼 수 있는 자리에  진흥왕 순수비를 세우던 기억과,
만주벌판을 좁다고 휘젓고 달려대던 기억들이 한꺼번에 떠오르는 느낌으로 단박에 바뀌는 것이라고나 할까?  문득 대간을 종주하고 싶은 욕구가 저 깊은 곳에서 끓어 올랐다..
서부 영화의 인디언들이 말을 타고 초원을 내달리듯, 그렇게 보름이고 한 달이고 내달려...
경상남북도만 조망하던 데서 오늘은 반도의 좌우를 아우르는 호사를 내 눈이 누리다보니
아무래도 눈높이가 올라갔나보다.
2;05   비로봉 출발.
능선은 국망봉으로 이어지지만 우리는 비로사로 하산하였다.
하산길도 내친 김에 냅다 내달려 내려왔다.
비로사 (3;00)를 거쳐 , 3;15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오늘은 서울 참석자가 더 많았다. 특히 서울 후배들의 참가는 부러울 정도였다.
남수 총무의 회에 대한 열의와, 주말 농장 재배의 부지런함과, 개인적인 친화력의
합작품인 것 같았다. 찬사와 박수를 보냅니다.
시원하게 한탕 뛰고 난 뒤의 개운함은 주차장 매점 평상에서의 시원한 맥주로 금상 첨화가 되었다. 오늘 화제를 주재한 인물은 단연 79 노은두였다.
그의 화제의 폭은 75  에서 83 까지 였던 것 같다.
앞으로 경부 합동 등반에 후배님들이 많이 와서 82, 83을 중심으로 80 에서 96 까지
화제의 폭이 넓혀지기를 바랍니다.
돌아 올 때도 3시간 만에 화명동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올 때 갈 때 운전해 주신 김정실 선배님께 정말 고맙다는 인사를 올리며
나의 첫 소백산 등정기를 여기서 맺습니다.

부산 참석자 명단 : 김정실, 김치근, 신양수, 이창규, 김규태(+아들), 박판출(83)
서울 참석자 명단 : 정상태, 박홍식, 이승호, 노은두, 김남수,
                          김기곤(83), 임동호(90), 임성오(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