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지가 늦어서 죄송합니다.
더운 날씨를 핑계로 한없이 게으름을 피우다 더이상 미루다가는 기억이 가물해 질까봐
이제사 글을 올립니다.

쓰구냥산(5,355m) 산행 기록

제 1일 (7월 27일) : 금요일

드디어 고대하던 출발일이다.
참으로 힘들게 만든 산행이다. 개인적으로 3년만의 휴가이고 다른 선배님들도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요 몇 년간 관광과 가벼운 휴식 개념의 하계 해외등산을 갔는데 올해는 분위기를 좀 바꿔볼 요량으로 연초부터 히말라야 트레킹란을 만들어 동조자들을 모아 보려고 했다.
시간과 비용이 부담스러워서 인지 선뜻 나서는 사람들이 없었다. 그래서 계획을 좀 축소하여 약 1주일 코스의 크게 힘들지 않은 고소등반을 계획하게 되었다. 중국의 알프스라고 하는 쓰구냥산을 대상산으로 정하고 분위기를 띄웠지만 반응이 신통찮았다.
그래도 어려운 가운데 신양수 선배님 내외분과 이충한 선배님, 강태 형이 내 뜻에 동의하여 지지를 보내주어 산행이 이루어지게 되어 고맙기도 하고 다행으로 생각한다.
김치근 회장님과 성경직 선배님도 많은 관심과 의욕이 있었는데 때마침 개인 사업의 여파로 여유가 나지 않아 아쉽게도 같이 못 가게 되었다.
생각은 있는데 몸은 따르지 않는 현실은 야속하기만 하다.
막상 대상산과 대원이 결정나니까 일은 일사천리로 신나게 진행되었다. 여권을 재발급하고 고산에서 필요한 장비를 새로 사고 간식도 포장하고 중국에서 쓸 휴대폰도 임대하고…
그리고 마침내 출발이다.  

오전 8시쯤 김해공항 라운지에 다 모였다. 다들 짐이 많다.
카고백과 배낭에 짐을 가득 넣고도 모자라 이충한 선배님은 큰 가방이 하나 더 있다.
김해에서 09:00 출발하는 김포 행 비행기를 타고 내려서 리무진버스를 또 타고 인천공항으로 달렸다.
공항 로비에서 1 주일간 우리를 인솔할 혜초여행사 직원(도주훈)을 만나 간단한 출국절차를 듣고 같이 갈 사람들과 간단한 인사를 나누었다. 일행은 총 11명.
우리 산악회 일행 5명 빼고는 전부 개별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70을 바라보는 60대 두 분을 포함하여 각 연령별로 여섯 분이 각자 오신 것이다. 대충 들어보니 모두 산행경력과 경험이 보통은 넘는 분들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경험이 있는 분도 두 분이나 있었다.
13:50분 출발하기로 된 비행기가 14:30분 쯤 이륙한다.
비행시간은 총 3시간 40분 정도. 사천성 성도(成都)에 내리니 현지시각이 오후 6시쯤이다.
현지 조선족 동포 가이드인 이성원 씨가 미리 나와서 기다리고 있다.
키도 크고 잘 생겼다.
중국은 우리나라와 시차가 1시간이다. 중국내에서는 동일한 시간을 쓰고 시차는 없다.
그래서 넓은 중국땅의 동쪽끝과 서쪽끝은 상당한 시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일한 시간을 쓴다.
중국은 우리나라보다 1시간 늦게 시간이 가는데, 한국 시각이 오후 7시면 중국은 오후 6시가 되는 것이다.
成都(Chengdu), 인구 1천만명의 대도시다. 3년전 구채구 올 때도 들런 적이 있는 곳이다.
3년 전 보다 큰 빌딩도 많아지고 세계의 명차들도 눈에 많이 띈다.



눈부시게 발전하는 중국경제의 발전상을 한눈에 봐도 느낄 수 있는 정도다.
중국전체가 재개발 중이란 말이 있을 정도로 군데 군데 공사 중이다.




저녁을 먹고 사천성의 명물 "변검" 관람을 했다.






순식간에 얼굴분장이 바뀌는 것 같은 묘기인데, 실제는 얇은 얼굴가면이 차례로 내려와서 그렇게 보이는 것이다. 호기심 많은 이충한 선배님과 강태 형은 변검의 비밀을 캐고자 앞으로 자리를 이동하여 유심히 관찰을 한다. 오후 10시쯤 호텔로 들어와 여행 첫날 밤을 기념하는 간단한 술자리를 가지고 내일의 일정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제 2일 (7월 28일) : 토요일

산행기점인 일륭(日隆)으로 이동하는 날이다. 여행일정표에 버스로 약 10시간 소요된다고  씌여 있어서 차에서 책도 보고 잠도 자고 경치도 보면서 시간을 보내면 되겠지 하고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이 10시간이 넘는 이동구간이 약 8시간 정도는 난생처음 겪어보는 비포장의 험로이다.



비포장도로 옆으로는 세찬 물결이 흐르는 계곡이 펼쳐져 있고 길은 전구간에 걸쳐서 공사 중인데 정리가 되지 않는 절개지에서는 금방이라도 돌이 굴러 떨어질 것 같아서 섬뜩하기만 하다. 거기다 비까지 오락가락하니 길은 온통 울퉁 불퉁한 진창이다. 어떻게 이런 길을 차가 다니게끔 허용할 수가 있는지가 의문이다.
게다가 우리가 탄 마이크로 버스는 작고 좁아서 흔들림이 더 심하고 불안하여 잠은 커녕 한시도 긴장을 늦추지 못하고 좌불안석이다.
대책없이 버스의 흔들림에 몸을 맡기고 10시간을 이동하는 것이다.
다들 체념의 지혜를 배워야 될 듯하다.

흔들림에 익숙해 질 즈음 점심 무렵에 사천성의 자랑인 팬더곰 사육장에 도착하여 유명한 팬더를 봤다.



전 세계에 1,000 마리 정도의 팬더곰이 있는데 이곳 사천성에 약 800마리가 있다고 하는
멸종위기의 동물이다. 까다롭고 게을러서 번식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사진에서 보는 것 처럼 하루종일 뒹굴 뒹굴 누워 지낸다고 한다.
팬더를 배경으로 사진 몇장을 찍고 다시 버스를 탔다.





사정없이 흔들리며 불안한 여정을 계속한다.
일륭으로 가기 위한 통로로 해발 4,200m 의 파랑산을 넘어 가는데 이곳에서 잠시 내렸다.


                                             파랑산 고개를 넘어가는 구불 구불한 도로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머리가 멍하고 어질하다.
날은 어느새 비바람이 치는 싸늘한 늦가을 날씨로 바뀌어져 있었다.


                                                    파랑산(4,200m) 정상




양고기를 구워파는 장족 현지인들과 기념 사진 몇 장 찍고 양고기도 몇 개 사주고 다시 버스를 탔다.




그런데 옆에 앉은 강태 형의 표정이 심상찮다.
갑자기 고소증상이 오는 모양이다.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고 메쓰껍고 머리가 아픈 모양이다.
고도 3,500m 부터 고소증상이 온다고 하니 무리는 아니다.  
우여곡절 끝에 일륭의 호텔에 도착하니 밤 8시경이다. 일륭은 해발 3,180m 정도 되는 곳이다.
예상보다 2시간이 더 걸려 꼬박 12시간 걸렸다.
산행이 시작도 되기 전에 아예 진을 다 빼놓는다.
저녁 먹을 때 보니까 강태 형이 아직도 회복이 덜 되었는지 밥을 제대로 못 넘긴다.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 속이 울렁거리고 머리가 멍하다고 한다.
그래도 나는 3,000m 도달 기념으로 소주 한 잔 했다. 다들 이상한 듯 쳐다본다.
자기 전에 강태형과 Diamox 한 알씩 먹고 잤다.


제 3일 (7월 29일) : 일요일

예상보다 푹 잘 잤다. 그런데 같이 주무신 이충한 선배님이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이다.
입맛이 없는지 아침식사를 안하신다.
08시 경 호텔입구에서 기념 단체사진을 찍고 산행 시작하는 입구로 차를 타고 이동하였다.
간단히 입산신고를 하고 가벼운 배낭을 매고 현지 가이드가 앞장을 서서 드디어 출발이다.


                                                         일륭 마을

배낭에는 마실 물과 간식, 필요한 옷가지 만 몇 개 넣고 무거운 짐은 카고백에 두드려 넣고 말에다 실어서 현지의 마부들이 말을 이끌고 따로 오는 것이다.
텐트나 취사도구도 캠프사이트에 미리 다 준비 해 놓고 우리는 거의 빈 몸으로 올라가는
어찌 보면 ‘귀족산행’이다. 홀가분한 몸에 날도 청명하고 바람도 시원하여 시작은 참 좋다.



처음으로 시야가 틔는 언덕받이에 올라가니 더 넓은 원색의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고 고산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쭉쭉뻗은 큰 나무들이 시야를 메우고 멀리는 하얀 눈을 이고 있는 쓰구냥의 산군들도 눈에 들어오니 과연 중국의 알프스라고 할만하다고 다들 입을 모은다.







넓은 초원에는 야크 떼들이 군데 군데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평화로운 풍경이다.
야크는 생김새가 얼굴에 털이 많이 난 소처럼 생긴 고산동물로서 처음 보면 아주 사납게
생겼는데 강인하면서도 순하다고 한다.
소와 교배하여 잡종도 있어서 흰놈, 검은 놈, 털 많은 놈 가지각색이다.
무거운 짐도 잘 지고 고기는 식용으로 배설물은 말려서 땔감으로 사용할 만큼 버릴 데가
없는 고마운 동물이다.



사람이 옆으로 지나가도 가만히 있다. 강태 형은 야크를 첨 보는데도 아주 친근감을 보이면서 너무 좋아한다. 그러고 보니 생김새도 비슷하다.



산행 시작할 때부터 우리 일행을 따라서 혼자 올라오는 아가씨가 있다. 홍콩에서 왔다고 한다.
영어가 딸려서 머뭇거리고 있는데, 강태 형이 자연스럽게 영어로 대화하는게 아닌가?
전혀 영어가 될 것 같지 않은 강태 형의 입에서 제법 긴 문장도 만들어 낸다. 오래 살고 볼 일이다.


                                                               홍콩아가씨와 함께
      
서너차례 쉼을 하며 고도를 올림에 따라 숨이 차는 정도도 조금 심해지고 평소 체력 관리를 소홀하신 이충한 선배님이 특히 힘들어 하는 인상이 역력하다.
고소증상이라고 하기보다는 과체중과 복부비만, 근육의 약화에서 오는 체력의 총체적 부실이라고 할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조선족 동포 현지가이드 이성원 씨

4~5시간 걸어서 오늘의 캠프사이트인 노우원자에 당도하였다. 오후 1시경.


                                     첫 막영지 노우원자(老牛園子)



이곳은 고도가 약 3,860m 정도 되는 곳이다. 그 맑던 날씨가 급변하더니 느닷없이 비가 쏟아진다.
다행히 막 텐트에 도착하여 미리 쳐 놓은 텐트에 2인 1조로 들어가 비를 피하였다.
조금있으니 우박도 떨어지고 날씨가 사납다.
식당 텐트에 모여서 점심으로 라면 한 그릇 씩하고 밖을 나오니 어느새 날이 개어 있다.
계획상으로 오늘 일정은 끝이다. 각자 캠프사이트 주위를 배회하며 고소 순응을 하면 되는 것이다.
강태 형이 힘이 남는지 텐트 뒤쪽 만만해 보이는 언덕받이에 올라 갔다가 오자고 한다.
날도 개이고 시간도 여유가 있어서 대여섯이 가벼운 차림으로 소풍하는 기분으로 길을 나섰다.







만만한 경사에 날도 포근하여 여기가 고도 3,800m 인 것을 잠시 망각하여 가벼운 기분으로 나선 길인데 굉장히 숨이 찬다. 이럴리가 없는데 속으로 생각해 봐도 이미 몸은 솜처럼 푹 젖어 있는 느낌이다.
절로 깊은 하품이 나오고 멍하면서 머리가 무겁고 주저 앉고 싶다.
어제는 강태 형이 꽤 힘 들어 하더니만 오늘은 좀 순응이 되는지 저만치 앞서 있다.
1시간 30분쯤 오르다 다들 이게 아니다 싶어서 만장일치로 내려가자는 의견이다.
힘들게 내려오니 텐트에 누워 있던 충한 형님이 상태가 말이 아니다. 두통이 꽤 심한 모양이다.
타이레놀 한알을 드리고 기분전환 겸 MP3를 귀에 꽂아 드렸다.
조금 나아지는지 텐트 밖에 나가서 바람도 쉬고 저녁때 까지 햇살을 쬐며 같이 앉아서 이야기도 나누었다.


                                                               현지 장족 처녀들



옆에는 일본 관광객들의 텐트도 있고 다른 여행사의 한국 트레커들의 텐트도 있다.
이곳 쓰구냥은 일본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코스로서 10여년 전부터 이곳을 왔다고 한다.
한국은 작년부터 오기 시작하여 올해가 본격적인 산행의 원년이라고 할 수가 있다.
저녁도 한국식이다. 닭도리탕을 했는데 비교적 먹을만하다.
이정희 선배님도 두통을 호소하여 타이레놀 2알을 처방하였다.





양수 형님과 강태 형, 나는 비교적 상태가 양호한 편이다.
그래도 내일을 위해 다이아막스 한 알 씩 먹고 한 오후 10시경 칭낭으로 들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