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참가 대원이 9명이라 김정실 선배님 차에다 희태 형님 차 까지 대동하여야 하였다.
1 시 사상 출발하여 언양 휴게소에서 희태형님과 합류하였다.
군위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하고, 단양 인터체인지에서 국도로 빠져나와 영월을 거쳐 정선으로 향했다.
영월서 부터는 강을 따라서 도로가 계속 이어졌었다.
그림같은 풍경들이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곧 어둑어둑해져서 경치구경은 고사하고 어두운 편도 1차선 급경사 급커브 도로를
조심조심 그러나 빠르게 달려야 했다.
숙박비 절약을 위해 정선 시내를 피해 7시반 경 화암동굴 입구에 도착하여 콘도형 민박집을 택했다.
방 2개에 6만원으로 저렴하기는 하였으나 심야전기라 10시 이 후에나 보일러가 작동한다고 했다.
희태 형님이 고래고기 도시락 2개를 사 오셔서 먼저 1개를 먹고 그리고 준비해간 쇠고기를 안주삼아
소주를 먹어대었다. 술이 고파서가 아니라 순전히 냉방을 데우기 위해서였다.
10시 경이 되자 초저녁 잠이 많은 충한 형과 임 선배님은 일찍 잠자리에 들고
새벽2시가 되어야 잠이 오는 김정실 선배님을 위해 희태형과 나는 12시까지 고스톱을 치다가 잤다.

12월 31일 
6시 기상. 영원한 우리의 주방장인 충한 형이 떡국을 끓여서 맛있게 먹었다.
해 마다 떡국 준비는 경직 형님이 도맡아 해오고 있다.
집에서 챙겨주시는 형수님께 모두를 대표해서 고맙다는 인사를 올립니다.
8시 출발, 가리왕산 산행출발지인 숙암리에는 8시 40분 경 도착하였고
장구목이에서 8시 50분 경 산행을 시작하였다.
산행 시작하고 얼마지나지 않아서 부터 등산로에는 눈이 쌓여 있었다.
날씨가 추워서 미끄럽지는 않았고 럿셀도 잘 되어 있었다.
선두는 충한 형이 섰는데 출발한지 1 시간이 되어도 쉴 생각을 않는다.
오히려 이런 추운 날씨에는 쉬지 않고 천천히 걷는 것이 나을 지도 모른다.
이번 간식 준비는 회장님 사모님께서 하셨는데 포장이며 내용물이 훌륭하였다.
특히 포장된 계란은 정말 좋아서 겨울철에는 애용할 만 했다.
눈 속에서 나무들은 모두가 알몸이 되어 겨울을 나고 있었다.
그런데 푸른 잎을 달고 서 있는 나무가 있었다. 소나무인가? 하고 자세히 보니 주목이었다.
가리왕산은 주목 군락지가 있다고 했다.
계곡을 벗어나 능선에 올라서자 보호수라는 이름표를 단 주목들이 줄줄이 있었다.
지름이 150cm이상 되는 나무들도 있었는데 대부분 속이 텅 비어 있었고
그것도 일부는 떨어져 나가고 한 쪽 면의 껍질로만 서 있는 나무들도 꽤 있었다.
살아 1000년 이라더니 과히 1000년을 살아 있을 끈질긴 생명 앞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능선에 붙었는데도 주 능선 길 까지 가는 데 30여 분도 더 걸린 것 같았다.
밀양 제약산 처럼 빤히 보이는데 가도가도 끝이 없는 것 처럼 멀었다.
주 능선길에 들어서자 정상인 상봉은 200여 미터 우측에 있었다.

12시경 정상에 도착하였다.(1561m) 바람은 거의 없었고 햇살은 따뜻하였다.
수천의 영봉들이 발 아래 펼쳐져 있었고 그 위로 햇살이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
과연 이름처럼 왕의 품위를 지닌 산 다웠다.
남은 고래고기로 소주 한 잔 씩 하고 사진 몇 장 씩 찍고 라면으로 점심을 하였다.
건강 상의 이유로 도중에 하산하신 김정실 선배님이 안 계셔서 아쉬웠다.
정상 답파식을 마친 후 아이젠 착용하고 출발하니 어느새 1 시간이 훌쩍 지나 있었다.
2시 중봉 도착. 바로 좌측으로 하산 하였다.
오늘 지나간 사람이 없는지 주 능선을 벗어나자 마자 발은 푹푹 빠졌다.
신발 속으로 눈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회장님과 둘이서 신나게 하산하여 첫 번째 임도까지 1.7km를 20분 만에 통과하고는 계속 하산하였다.
얼마나 내려왔을까? 눈이 점점 적어져서 아이젠을 벗어야 했다.
길은 이내 두번 째 임도로 이어졌으며 등산로는 출입금지 푯말이 붙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임도를 따라 걸어야 했다.
글을 쓰면서 생각하니 임도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은 길이었고
기회가 있음 다시 호젓이 걷고 싶은 길이라 생각이 들지만(사진참조) 당시에는 지루하고도 지루했다.
급히 내려와서인지 다리 근육이 피로해지기 시작했다.
숙암리가 빤히 보이기 시작하자 이번에는 왼쪽 막내 발가락이 따가워오기 시작했다.
다리를 절뚝 거리며 3시 30분 경 숙암리에 도착하였다.
10여 분 희태형이 또 10여 분 뒤 나머지 대원이 도착하였다.

산행시간을 5시간 남짓 계산하였는데 근 2시간을 넘겼다.
김정실 선배님은 혼자서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았다고
내려오자 마자 우리를 호통치셨다.
앞으로는 죽든지 살든지 같이 올라가야지 다시는 밑에서 기다리지 않을거라고 혼자서 다짐을 하셨다.
정선시내로 와서 곤드레 나물밥으로 저녁을 대신했다.
찹쌀을 섞은 밥솥에 곤드레 나물을 얹어 같이 쪄서 만든 것이었다.
거기에 양념장이나 양념된장을 얹어 비벼서 먹었다. 4000원으로 저렴하였고 별미삼아 먹을 만 하였다.
식당을 나오자 어두워지기 직전이었다.
시내를 걸어서 장을 보았고 출발할 때 쯤은 캄캄하였다.
아침에 떠나왔던 민박집으로 다시 찾아갔다.
오늘은 좀 일찍부터 따뜻해지는 방으로 골라주었다.
배가 잔뜩 불러있었는데도 돼지고기를 굽자 또 들어가기 시작했다.
희태형은 무릎관절이 아파서 진통제를 구해 먹었다.
혼자서 옆방에서 쉬려는 것을 억지로 데리고 와서 함께 소주를 먹었다.
소주먹으면 낫는다고 충한 형은 무조건 술을 권하였다.
어제의 원한관계도 있고 해서 12시까지 또 고스톱을 쳤다.
이날은 내 뜻대로 패가 풀려서 어제것을 만회하고도 얼마가 남을 정도였다.

2007년 1월 1일
6시 기상. 여전히 밥이랑 국이랑 충한형이 다하였다.
졸병들은 열심히 보조요원으로 또 설겆이만 하면 되었다.
식사 준비가 되자 오늘이 충한 형 생일이라 준비한 케잌으로 촛불 밝히고 "생일 축하합니다"
노래도 부르고 그리고 케잌 컷팅 까지...
이어서 양주를 한 잔 씩 하고서는 선배님들 부터 새해 소망과 덕담을 한 마디씩 하셨다.
모두를 요약하면, 올 한해 모든 회원들이 건강하시기를,
특히 OB산악회 창립 40주년이 되는 올해는
그동안 연락이 끊어졌던 모든 회원들과 화목한 만남이 재개되는 해가 되기를,
그리하여 기념식에는 100명 이상의 부부회원들이 모이기를,
또한 국내로는 백두대간 종주산행도 시작이 되었으면,
국외로는 히말라야 트래킹에도 많은 회원의 참여가 있었으면,
그리고 무엇보다 후배들이 자유롭고도 편하게 자발적으로 산행에 많이 참여해 주었으면...
각자의 바람과 소망이 길어져서 아침식사 시간이 늦어지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회장님 순서였는데 회장님 새해소망은 아침밥 속에 파묻혀 버리고 말았다.
9시 좀 지나서 화암동굴을 관람하였다.
금 채굴 과정을 재현해 놓고 있었고 끝부분에 짧은 석회암 자연동굴이 있었다.
11시경 출발하여 12시 30분경 태백으로 이동.
김정실 선배님의 안내로 유명하다는 돼지갈비집으로 갔다.
1인분에 8000원이었지만 정말 맛있었다. 부산의 돼지갈비와는 차원이 달랐다.
비용은 김정실 선배님이 부담하셨다.
2시경 태백을 출발하여 영주 부석사에 도착하니 3시 20분 경이었다.
30일 부터 오늘까지 강원도 남부 내륙을 근 10시간을 달렸는데
그러고 보니 길은 모두 강 옆으로 나 있었고 강은 모두 협곡 속으로 흐르고 있었다.

몇년 동안 참으로 오고싶었는데 드디어 오늘에야 오게 되었구나!
부석사에 도착하자 내 가슴은 뛰기 시작했다.
매표소에서 시작되어 일주문으로 향하는 경사진 길, 그 길 옆 사과밭,
처음 오는 길인데도 나는 어찌나 감동깊게 읽은 글 속의 풍경이라 오랫동안 봐왔던 풍경만 같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늘씬한 몸매의 세련미를 갖춘 당간지주에다
'불굴사의 돌축대가 인공과 자연의 조화를 극명하게 보여준 최고의 명작이라면,
부석사의 돌축대는 자연과 인공을 하나로 융화시킨 더 높은 원융의 경지라고 말할 수 있다'는
바로 그 돌축대.
범종루와 안양루 그리고 우리나라에 현존하는 것 중에서
가장 화려한 조각솜씨를 자랑하면서도 단아한 기품이 있다는 석등.
그리고 부석사에 붙어다니는 모든 수식어의 한 복판에 서있는 무량수전.
'가장 아름다운 절집'
'가장 잘 지은 고건축'
'1043년 창건 연대가 확인된 가장 오랜 목조건축'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모든 길과 집과 자연이 이 무량수전을 위하여
제자리에서 제 몫을 하고 있는 절묘한 구조와 장대한 스케일에 있다'
그리고 3층 석탑과 조사당, 응진전, 또 그리로 오르는 흙길.
(여기까지는 유흥준의 글 속에서 축약 인용한 것임)
유흥준의 글을 읽고 나서인지 사실 이 모든 유물들을 실제 접하니 시시해졌다.
너무도 글을 아름답고 절절하게 써 놓아서 우리가 그 유물을 접할 때
미쳐 그 감정들을 되살리리가 어렵기 때문이리라.  

또한 유흥준씨는 부석사의 아름다움은 최순우씨의 <무량수전>글 한편으로 족하다고 했다.
그 아름다움을 내 눈과 글로는 도저히 옮길 재주가 없으니 그 글 일부를 또 옮겨 본다.

소백산 기슭 부석사의 한 낮, 스님도 마을 사람도 인기척도 끊어진 마당에는 오색 낙엽이 그림처럼 깔려 초겨울 안개비에 촉촉이 젖고 있다. 무량수전, 안양루, 조사당, 응향각들이 마치도 그리움에 지친 듯 해쓱한 얼굴로 나를 반기고, 호젓하고도 스산스러운 희한한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나는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기대서서 사무치는 고마움으로 이 아름다움의 뜻을 몇 번이고 자문자답했다.
...눈길이 가는 데 까지 그림보다 더 곱게 겹쳐진 능선들이 모두 이 무량수전을 향해 마련된 듯 싶어진다. 이 대자연 속에 이렇게 아늑하고도 눈맛이 시원한 시야를 터줄 줄 아는 한국인, 높지도 얕지도 않은 이 자리를 점지해서 자연의 아름다움을 한층 그윽하게 빛내주고 부처님의 믿음을 더욱 숭엄한 아름다움으로 이끌어 줄 수 있었던 뛰어난 안목의 소유자, 그 한국인, 지금 우리의 머리 속에 빙빙도는 그 큰 이름은 부석사의 창건주 의상대사이다.-중략-

기대가 컸던지 나는 아무리 이리보고 저리보아도 그 '사무치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았다.
단지 석축과 꾸미지 않고 옛모습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전각들과
그리고 무량수전의 그 단순미 만은 조금 이해할 것 같았다.
안양루 옆에서 바라보는 늦은 오후의 아스라한 소백산맥 능선들도 멋은 있었지만
어제 가리왕산에서 바라본 조망만은 못해서인지 보고 또 보아도
그 '사무치는' 마음은 도저히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래도 까막눈. 내 눈은 까막눈 수준을 벗어나지 못했나 보다.
부석사 주차장에서 가볍게 탁주 한 잔 씩 하고 바로 부산으로 향했다.
언양에 8시 반 쯤 도착하여 오리탕으로 저녁 식사를 하고 영도랑 희태형과 헤어졌다.
경비는 동주형이 부담하였다.
화명동에는 10시 30분경 도착하였다.
무엇보다 평소 산행에 참여하시는 선배님들께서 한 분 도 빠짐없이
이번 산행에 다 참석해 주셔서 고마웠다.
이 열의를 2007년 한해 내내 이어나갈 수 있게 집행부가 더욱 노력하여야 겠다.
후배들과의 산행에서도 어서 이런 열의를 느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보면서
이만 두서없는 글을 마친다.



<참석자 명단: 임송봉 김정실 차동주 이희태 이충한 성경직 김치근 신양수 박영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