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한 형님이 가신 금강폭 좌측 벼랑에는 속절없이 진달래가 막 멍울을 터뜨리고 있었다.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라서 망자에게도 산자에게도 준비없는 영원한 이별이 되고 말았지만,
결국에는 받아들이고 세월의 힘으로 아릿한 가슴은 무뎌지고 잊어야 할 것은 잊혀질 것이다.
운명이 있다면 그 날 아침 형님에게 어떠한 징조라도 있었을까?
운명이란 무거운 것일까? 가벼운 것일까?  필연적이고 가치가 있는 것이 무거움이라면 우연성은 가벼운 것일까?
그 날 일어난 사건을 복기해 보면 몇개의 가벼운 우연이 겹쳐서 무거운 사고의 결과가 발생했다.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단 하나의 우연이라도 피할 수 있었다면 그 날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전날 계획하셨던 월출산 산행이 차질없이 진행되었다면, 누군가 다른 선배님이 동행했더라면,
등산화가 낡아 떨어져 운동화로 바꿔 신지만 않았더라면... 그렇게 따진다면 그 날 해가 뜨지 않았어야 된다.  
필연과 운명이란 결과론적인 해석이 아닐까?  
한 사건이 보다 많은 우연에 의해 좌우될수록 보다 중요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나 않을까?
삶이란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운, 깃털처럼 가벼운 우연성의 중복으로 치명적이고도 무거운 결과가 발생하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위험은 피하고 난관은 극복하라고 했거늘, 그 날  형님에게 "위험"과 "난관"의 경계란 어디 였을까?
그 경계에 서서 얼마나 혼란스러웠을까?

첫째 날 저녁 간단히 젯상을 차리고 술을 올리고 짧은 묵념으로 의식을 마쳤다.
처음에는 다소 무거운 분위기였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술기운이 오르면서
다들 말도 많아지고 화기애애하게 밤이 깊어갔다. 
그리고 곤하고도 편하게 잠으로 떨어졌다. 그것이 산자의 할 일이므로. 
다음 날  선배님 세분은 현장을 지키고 알프스원정대는 에베로릿지로,
재학생들과 우리들은 신불산을 올랐다. 그것이 산악회의 할 일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