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참석 인원 약120명 중, 우리 산악 회원 30명 참석.
동문 산악회 초대 회장님의 덕망으로 근20년 만에 우리 산악회 최대의
인원이 모였더랬습니다.
흔쾌히 산행에 참여 해 주신 선후배님들 정말 고맙습니다
산행은 임도를 따라 점심과 절 구경 포함 왕복 3.5시간으로 단조로웠습니다.
비가 한 줄기 내려 약간의 소란도 있었지만, 점심은 돼지수육으로 소주를
곁들이며 푸짐하게 먹었습니다.
미륵 바위와 종소리가 나는 바위들이 있는 만어사는, 전각들이 최근에 지어진
것들이긴 하지만 가야시대 부터 있었던 고찰이었습니다.
따라서 양산 물금 밀양등이 한때는 가야의 영역이었다는 것을 알수 있게 하였습니다.
오후 2:20분경 산행을 모두 마치고 곧장 밀양 캠퍼스로 이동하여 교정을 둘러 보았습니다.
나노과학기술대학과 생명자원과학대학의 2개 단대에 교직원 포함 재적인원 약3.000명 .
도서관, 기숙사, 휴게실(당구장,노래방등이 달린),야간 조명 시설의 대 운동장과 테니스장,등등
약2년전 신축된 건물들과 조경들은 호텔보다 훌륭하였습니다.
제가 외국의 그것들을 가 보지 않아 모르긴 하지만, 선진국에 비해 시설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 안에서 근무 하고, 연구하고, 가르치고, 공부하는 모든 사람들이 자신을 위해서나,
나라를 위해서 시설의 수준에 걸맞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공식적인 행사는 장전동 캠퍼스로 돌아와서 바로 끝이 났습니다.

저희 산악회만 삼겹살 집으로 이동, 소주 한 잔 하면서 회포를 풀었습니다.
반갑고 정겨움이야 넘치도록 많았지만 어떻게 표현 할 줄을 몰라 애꿏은 술잔만
자꾸 박치기를 시켰습니다.
그 와중에서 지난 6월 경부 합동 등반 때의 일이 생각나서 이렇게 많이 모인 자리에서
공론화 할 필요가 있을것 같아 얘기를 꺼내었더랬습니다.
다름 아니라 호칭 문제 입니다.
선 후배님들간의 호칭 문제에 대하여는 약간의 혼란과 헷갈림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이제는 회원들간의 암묵적인 불문율이랄까 합의랄까 그런것이 있어야 될 시점이 되었습니다.
현재까지의 의견을 압축하면
1.  10년 이상은 선배님으로 부르자  (63 임송봉)
2.  형님으로 통일 하자                  (68 정상태)        입니다.
호칭 문제는 우리 산악회의 문화와 철학이 관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배들의 입장보다 선배님들의 의견이 더 중요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선배님들의 의견을 듣고, 감히 75학번인 제 의견을 말해볼까 합니다.
숫자로 딱히 10년 이냐 15년 이냐를 따질 것은 아니지만, 자신 보다 아버지의 나이에
더 가까운 사이라면 형님 호칭은 현재의 우리나라 정서상 이상한 면이 있습니다.
따라서 63선배님의 의견대로 10년 이상의 윗 학번은 선배님으로 불렀으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의 모임인 만큼, 후배가 불러서 좋고, 선배가 들어서 좋은 호칭은
회원 상호간의 단합과 화합에 많은 기여를 하게 될 것입니다.
이 날 모인 분들은 모두가 이렇게 의견 일치를 보았습니다.
산행이 짧았다는 핑계로 제 글 하나 곁들이며 이만 마치겠습니다.



  참석자 명단;        임송봉, 김무부, 이광식, 김준연, 김정실, 차동주
                           이희태, 성경직, 차기섭, 이영석 (조진주),
                           김치근 (이영주), 신양수, 이정희, 박영도, 이창규 (이상민),
                           신종철, 양경희, 박만교, 김규태 (주묘희), (김영현)
                           하정호, 김광섭(이충희), 민영도, 재학생2명             합계;30명



                          늦은 아침

       어은골 밭뙈기에서
       보리 열 석 섬만 나면 중학교 보내준다캐서
       김이 무럭무럭 나는 거름을 한 바지기 지고
       아부지 뒤를 쫓아 골짝을 세 번 오르내리면
       희붐하던 골목길 논두렁 길이
       눈이 부시 디이라.

       덩더리고 가슴팍 거름 부시래기사
       또랑에다 훌훌 털어버리고
       고무신 질퍽이며 막 삽짝을 들어서면
       언제 정지로 달려 가셨는지
       어무이는 금새 밥상을 들고 나오디이라

       아버지 된장 한 술 뜨길 한 참 기다렸다
       내가 밥 한 술 뜰라치면
       우째 그리 지상도 없이 김은 솟아쌓던지...
       늘 코 끝에 향그럽던 그 아침은
       한참이나 늦더니라



송도 해수욕장이 빤히 내려다보이는 병실이었습니다.
기력이 약해지신 아버지는 오후가 되면 병실 벽에 비스듬히 기대어 앉아 있곤 했는데,
어느 날은 뜬금없이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것도 허공을 바라보며 혼자 중얼거리는 것 처럼 그러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날은 아침이 아주 늦더라고...

내년 5월이면 아들놈이 제대를 합니다.
어학 연수를 보내준다든지 어쩌든지 해서
다무 1달이라도
꼭 생수 배달을 시켜 볼  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