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 이름도 예사롭지 않는 대형태풍이 내일 우리나라를 온다고 한다.
중간에 포기하더라도 예정대로 산행하기로 하고 배낭을 꾸리고 있으니 마누라도 간다며
자기배낭도 꺼내달란다. 힘을 보태는 건지 걱정거리만 더 느는 건지 모르지만 늘 산에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는데 거부할 수가 없다.
나 보다 먼저 일어나 아침 도시락 준비하고 장비 챙기고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을 보니 신기하다. 아침에는 늘 잠이 모자란다며 비실비실했는데.

태풍 때문인지 도로가 한산한 덕에 약속시간 보다 20분 빨리 서부터미널에 도착하니 칼 규태가 먼저 와 있다.
이번 산행은 평소 산악부 활동이 뜸한 선후배가 모여 옛날의 추억도 살리고 혹시 있을 섭섭한 마음도 풀 겸 마련한 자리인데 하필 태풍 때문에  포기하고 안 오면 어쩌나 걱정을 하였지만, 역시 한때 날렸던 산 꾼들이라 8시가 되니 속속 도착하고 있다.

이번산행을 기획하고 연락하며 혼자서 동서분주 한 부회장인 양수 형, 약간은 부족하지만 이 비바람에 이정도면 만족한다며 드디어 산산을 뚫고 북암산으로 출발.
서부터미널 출발조: 임송봉 유완식 이기석 신양수 이정희 박영도 신종철 양경희 김규태
                   민영도 서정동(11명)
울산팀: 이희태 강정웅 김지성(3명)

원래 계획은 인곡리에서 출발 북암산-문바위-억산-가인계곡(6 시간)이였으나 날씨를 감안해 산행시간도 줄이고 혹시 중간에 탈출이 용이한 석골사에서 출발 문바위 북암산 인골산장으로 하산하는 코스로 바꾸었다.

9시 30분 석골사에서 울산팀과 합류하여 비바람을 맞으며 출발, 석골사를 막 지나 첫 표식기에서 오르막 시작, 예전에는 조금 더 위에 있는 표식기에서 올랐었다.
계속되는 오르막에 빗물에 젖은 땅이 미끄러운지 선두와 후미 간 거리가 점점 벌어진다.
속도 조절을 위해 중간 중간 쉬다보니 젖은 몸에 강한 바람을 맞아 한기가 느껴진다.
간만에 장만한 방수 신발도 바지위에서 타고 내려온 빗물에는 속수무책이다. 오히려 신발에 들어간 빗물이 밖으로 배출이 안 되어 질퍽질퍽한다. 비싼 신발 필요 없다며 불평하는데지성이 왈 “바지가 방수되면 괜찮다”고 한다. 뽀송뽀송할 지성이가 부러워...

해발 600지점에 오르니 작은 능선이 나타났다. 주능선은 안개에 가려 안 보이고 지능만
첩첩이 보인다. 임송봉 선배님 “이게 어찌된 일이고 이상한 길로 자꾸 가더니만 길 잘못 든 것 아이가?” 가다가 힘들면 하산하신다는 말씀이 물론 진심이 아니겠지만 걱정이 앞선다.
희미한 길이 나타날 때마다 긴장이 된다. 아무리 빤한 산이라도 비바람이 몰아치고 시야가 확보 안 된 상태에서는 자칫 길을 잊고 헤맬 수가 있기 마련이다.

겨우 주능선에 올라서니 안심이 된다. 11시30분, 출발한지 2시간이 지났다. 점심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갈수록 심해지는 바람 때문에 능선 한구석 바람이 덜한 곳에서 식사하기로 했다. 물론 좀 더 가서 하자는 대원들의 반대가 많았지만 임 선배님의 한마디 “ 이거라도 대장 말 들어 주야지” 이 말씀에 모두 도시락을 꺼낸다.
왜 이 시간에 점심을 먹자고 하는지 임 선배님만 알고 계신 걸까?

후배들 추위에 떨까봐 비상용으로 준비해 오시는 강정웅 표 양주를 한 모금씩 하고나니 추위가 가신다. 비바람 맞으며 밥 먹기가 얼마만이가? 간만에 오신 선배님의 말씀에 예전에 경험한 추억들을 떠올리며 모두다 빙그레 웃고 계신다.
20분 만에 식사 끝내고 “출발 5분전!” 외치니 선배들 챙기느라 제대로 못 먹었는지 지성이  얹히겠다며 허겁지급 먹고 있고, 5분이 얼마나 긴 시간인지 알고 있는 고참인 영도는 느긋하게 먹고 있다.

10분정도 능선을 가다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직진하면 억산, 좌로 가면 북암산이다.
갈림길에서 모두모여 북암산으로, 능선길을 한참을 걷다보니 직각으로 만나는 또 다른 능선길이 나타난다. 지도상으로는 직진해야 방향이 맞는데 그곳은 내리막길이다. 지도를 펼쳐보며 왕년에 길 찾든 실력으로 선배님들이 열심히 독도를 하시는데 결론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우왕좌왕 이를 때 대장이 갈 길을 정해야 하는데, 안개로 시계는 불량하고 잘못 가서 빽! 하면 그 뒤의 후한을 생각하니... 난감하다.

걸어온 길을 정리해보니 아무래도 조금 전에 본 능선은 주능선이 아니고 지능 같은 생각이 든다. 그럼 여기가 주능선이라는 결론이면 방향은 명백하다. 좌회전!
거 길이 아니라는 말씀을 뒤로하고 무조건 갔다. 선배님들을 믿고...  
한때 친구들하고 산에 간적이 있었는데 빽 하다가 온갖 불평불만을 다 들었다. 그 후론 산을 모르는 친구들 하고는 신작로 같은 산길이 아니면 절대로 가지 않는다. 그곳에 추억에 남을 산이 있을까?

한참을 걷다보니 문바위가 나타났다. 바위 주위가 온통 낭떠러지다. 앞으로는 한발자국도
나아갈 수 없다. 혹시 내 판단이 잘못 되었는가? 바위틈으로 자세히 보니 표식기가 보인다.태풍이 점점 북상하는지 바람도 점점 거세어진다. 바람에 날아갈세라 조심스럽게 바위를 돌아 내려갔다.

다시 능선을 달려 1시30분 경 북암산에 도착했다. 볼품없지만 정성스러운 돌탑과 그 위에 손으로 쓴 북암산 804M(894?) 라고 적혀있다. 여기서 만세 삼창하고 하산.
하산 길은 우측 가인계곡 쪽으로 했는데 계속되는 너덜지역이라 하산 길도 만만찮다.
몇 번을 쉬면서 한참을 가다, 누가 건드렸는지 양수 형과 완식이 형 그리고 희태 형님 말벌의 포위 공습으로 오도 가도 못하고 정신없이 쏘이면서도, 뒷사람에게는 둘러오라는 고함으로 뒷사람은 무사했다는 살신성인의 진수를 보여주셨다고 한다. 양수형 3방 희태 형님
못 셀 정도고 완식이 형은 그보다 덜 하다고 한다.
남들은 돈 주고도 맞는데 오늘 공짜로 맞았다고 하니 “벌침도 이렇게 아프면 어떻게 맞노?”  이건 대침이니 몸에 더 좋을 것이라고 했다.

2시 30분 경 인골산장에 도착하여 주인집 트럭에 5명이 타고 차 가지러 석골사 갔다 왔는데, 석골사에 도착하니 침칸에 탄 정동이가 안 보인다하기에 태풍에 날라 간 줄 알고 정말 깜짝 놀랐었다.
옷 갈아입고 불 옆에 앉으니 살 것 같다. 비닐하우스 위로 떨어지는 후두둑 빗방울 소리, 감아 돌며 지르는 바람소리를 배경으로 인골산장 특허 오리구이, 그리고 선후배가 옛날이야기하며 마시는 시원한 소주 한잔, 이것보다 더 좋은 곳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