칡꽃향 짙은 풀섶에 새초롬

억새꽃 피어나고 있다.

무성한 허물들 얼키설키

잎 되고 넝쿨 되어 자라고 있다.

 

누구인가

스쳐지나가지 못하고 붙들리어

산에 들에 하릴없이 세상사에

생각들을 피우고, 꼬치꼬치

마음 일으키고 있는 자.

 

산에서 가장 은밀한 부분이기라도 한 듯

첨벙첨벙 계곡 물가 바위들이야

몰래몰래 푸른 이끼들 속에

보드랍고 촉촉한 기억들을 간직하겠지만

 

저 끝이 없는 하늘

두리둥실 한 조각 구름을 보면

오고감의 흔적일랑 지워야 할 일이다.

속속들이 어린 것들 녹여야 할 일이다.

 

본 바도 없고, 들은 바도 없고

끝내는 아는 바도 없어서

저렇듯 바람과 구름 활개를 치며 나다닐 수 있어야

하늘이 참 하늘답다 하리라.

천 부처 만 보살 데리고, 그때서야 제대로

화엄벌의 한 줄기 늪길을 걸었노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