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에서 8시에 출발한 관계로 용추사 입구에서의 산행 시작 시각은
11시경이었다. 지리 덕유 일대에서는 제일이라는 용추폭포는 정말
장관이어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용추폭포가 아니더라도 계곡의 풍광은 정말 가관이었다.
바위며 자갈들이 주위의 소나무와 멋지게 어우러져 있었다.
함양쪽 계곡과 이 용추사쪽의 계곡에 조선시대 사대부들의 정자들이
즐비한 까닭이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하다.
용추사를 돌아 계곡을 조금 더 오르면 거망산 등산로 입구 표시판이
나온다. 지장골입구다. 작년 4월의 거망산 등행때도 이 계곡으로 올랐었다.
그 때보다 수량이 더 많아서 계곡의 폭포들은 더 멋있었다.
규태가 간식을 개인별로 야무치게 포장해 온 덕분에 출발때 부터 자유롭게
간식을 먹을수 있었어 첫 휴식터에서 나의 간식은 바닥이 났다.
점심 먹기 전까지 지치지 않고 산행을 하려면 좌우단간 단단히 배를
불려 놓는 것이 내 경험상으론 최상의 방법이었다.
땀은 비오 듯 쏱아졌지만, 계곡을 벗어난 뒤에도 휴식시간에는 시원 하였다.
하기사 몇일 사이에 8월에서 9월로 달이 바뀌었고, 아침 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기 시작 했고, 한 낯 더위도 습도가 많이 줄어서 지나기가 한결
수월 해 지기는 하였다.
몇 번의 휴식을 하고 나자 코가 닿을 듯 가파른 길이 나타나더니만. 몇 분
오르자 능선이었다(1:20)

벌써 억새가 피어있었다.
갓 피어난 억새는 번데기에서 갓 나온 촉촉한 날개처럼, 가지런한 소녀의
단발머리 처럼 단정하고 얌전하다.
거망샘을 찾아 점심을 먹었다.
규태가 얼려온 맥주 한잔은 환상적이었다.
영주씨와 정호가 가져온 맛있는 반찬에다 희태형님의 보드카 한 잔,
디저트는 정호의 시원한 거봉으로 마무리 했다.
2:00 출발, 거망산 쪽 능선은 시야가 시원하게 트였고,
따가운 햇살에 막 피어난 억새가 눈이 부셨다.
황석산 쪽은 잡목과 잡풀들이 무성하여서 길바닥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입과 줄기에 잔 가시가 있는 풀들이 꽤나 있어서
팔이 그 풀들에 스치기라도 하면 몹시 쓰렸다.
팔을 둘 곳이 없어서 머리 위로 올려서 가기도 했다.
전체적으로 그늘이 많았지만, 간간히 내려 쬐는 햇살은 따가왔다.
그래도 바람은 시원하여서 땀은 많이 났지만 그렇게 덥지는 않았다.
전망이 탁 트인 곳이 몇 곳 뿐이었고 잡목숲과 풀숲들의 연속인 능선길이었다.

정상 600m 남기고 능선은 암릉으로 되어있었다.
우회로가 있었지만, 겁도 없이 강태와 규태를 따라 나섰다.
암릉은 그렇게 위험 하지는 않았지만, 고도감이 있어서인지, 꽤나 마음을
졸이게 했다.
짜릿한 전기가 엉덩이 쪽으로 계속 흐르고 있었다.
팔도 긁히고, 무릅도 긁혀가며 약 200m를 딴에는 스릴있게 등반하였다.
곧이어 최근에 복원한 듯한 황석산성이 짧게 이어지더니, 나머지 약300m도
암릉이었다.
정상은 그 암릉위에 있었다.
우회로를 택해 돌아갔다.
마지막 50m는 고정로프가 설치 되어 있었다.
60도 이상의 가파른 암벽이었다.
영주씨만 기권을 하고 모두들 정상에서 10여분의 환희를 맛볼수 있었다.
(4:10, 1190m )
하늘은 끝없이 맑고 높았다.
멀리 덕유산과 가야산이 희미하게 보였고, 기백산 금원산 거망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함양군립공원이 한 눈에 들어 왔다.
출발때의 용추 폭포와 계곡들의 풍광이 오늘 산행의 서막을 장식했다면,
정상 부근의 암릉과 황석산성, 정상으로의 마지막 50m 암벽 그리고 정상에서의
조망이 이 산행의 클라이맥스였다.

4:30 정상 반대편 산성에서 녹녹치 않은 4.5km의 하산이 시작 되었다.
한시간여의 능선길은 햇빛이 밝았지만, 숲이 울창한 계곡으로 접어들때
쯤은 침침해져서 땅 바닥과의 거리감이 명확해 지지 않았다.
잘 걷던 영헌이도 다리가 풀리는지 자꾸 쉬자고 했다,
선배님들도 무릎이 약간씩 안 좋은 것 같았다.
하산 속도가 느려졌다. 나는 마지막 1.5km를 남기고 혼자서 먼저 내려왔다.
얼마쯤 내려오자 약초 밭이 보였고, 이내 몇 채의 마을이 나타났다.
마을 뒤로는 방금 내려온 산들이 병풍처럼 마을을 둘러싸고 있었다.
선두로 하산한 관계로 서두를 것도 없어서 나의 걸음은 어느새 산보 나온
것처럼 느려져 있었다.
마지막 햇살은 산을 넘어가 버렸고, 어스름이 몰려들기 직전의 아직은 밝은
저녁이었다.
그리 크지도 않은 사과나무엔 빨갛게 익은 사과들이 100여개도 넘게 달려
있어서 가지는 축 쳐져있었다.
너무 힘이 들어 보이고 불쌍하게 보였다.
사과밭의 농부는 입구 쪽의 그물을 추스려 놓고는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6:10 유동마을 표시판엔 남은 거리 0 m, 아스팔트 도로가 나타났다.
누런 늙은 호박을 따서 경운기에 싣고 있는 농부도 귀가를 서두르고 있었다.
길이 평평해지면서 들녘이 나타났고, 저만치 매표소가 보이기 시작 했다.
벼들이 노랗게 익어가고 있었다.
논 뚝의 풀을 베고 있는 농부는 조금 남은 풀들을 마져 베고 가려는 듯.
아직도 논 뚝에서 낫을 열심히 놀리고 있었다.
베어진 풀들이 마르면서, 길가득 들녘가득 풀 냄새가 진동을 하였다.
풀벌레 소리들은 더욱 맑아지고, 높아지고 있었다.
하늘엔 달이 떠 있었고 점차 들판으론 어둠이 밀려들고 있었다.
차를 기다리는 동안, 따뜻한 아스팔트의 온기를 느끼며,평화로운 초가을
들녘의 어스름속으로 나 또한 아무런 저항없이 젖어 들고 있었다.(6:30)

안의면의 번화가에는 소갈비찜을 하는 집들이 여럿 있었다.
이 지방의 특산식품인듯 했다.
경직형은 먹어본 경험이 있는 듯, 척척 주문을 했다.
찜은 그리 비싸지도 않으면서 꽤 맛있었다.
4명에 작은 접시 하나씩 시켰는데, 순식간에 먹어 치웠다.
2접시를 더 시켜 나누어 먹었다.
찜을 먹을 때는 갈비탕을 시키지 말고, 공기 밥에 국물과 같이 먹는 것이 나았다.
뜨끈한 국물은 속을 너무 편하게 하였고, 맛은 진하고 고소하였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내륙지방의 별미였다.
8:00 부산으로 출발, 10:35분경 진영휴게소에서 정호차와 헤어졌다.
희태형은 임선배님 버스 시각 맞춘다고 하단까지 태워다 주고 갔다.

몸이 조금 뻑쩍지근하게 걸어야, 심신이 개운해 지는 이유를 나는 아직 잘 모른다.
어쨌거나 약7시간의 운행은 선배님들에게는 좀 무리한 산행이었겠지만
나나 후배들에게는 개운한 산행이 되었다.
선배님들 고생 많았습니다.


             참석자 명단 : 임송봉, 성경직, 이희태, 안홍석, 김치근, 이영주
                                신양수, 이정희, 김강태, 하정호, 김규태, 영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