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정 저 사정으로 선배님들은 한 분도 오시지 않았다.
따라서 나에게는 처음으로 후배들과의 산행인 셈이 되었다.
용주사를 지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자 이내 뒤쳐지기 시작했다.
날씨는 적당히 쌀쌀하여 걷기엔 최상이었으나.
호흡은 가빠오고.  휴식시간은 기다려지고.....
진달래는 그 가냘픈 꽃잎을 흩날리고 있었지만
낭만적인 봄 산행은 시작부터 물 건너  가버린 것 같았다.
그렇게 용쓰기를 두어 시간.
화엄늪에 도착하자 갑자기 속이 텅 비어왔다.
쌀쌀한 능선 바람을 막고 선 바위를 등지고 앉아,
능선 쪽은 억새가, 아랫 쪽은 잡목이 우거진 화엄늪을 바라보며,
창규와 옥분이가 준비해온 돼지 수육에다 정호가 가져온 매실주도 곁들이며
맛있게 고맙게 깔딱 요구를 하였다.
천성산 1봉을 지나 능선길을 따라 2봉으로 향했다.
도중에 점심을 먹었다.

2봉에 오르자 왼쪽 건너 편으로 용주사 쪽에서 올라온 첫 능선 고개가 보였다.
파스텔 톤의 그림은 아직 5부 능선까지만 색칠이 되고 있었다
오른족으로 고개를 돌리면 반원의 능선을 따라 저쪽 끝은 정족산.
그 정족산을 목표로 하고 능선 길 산행이 계속되었다.
영산 대학 뒷 능선을 지나자,
산길은 임도를 따라 끊어질 듯 이어지더니 이내 임도로 바뀌었다.
암자를 잇는 찻길이 산을 망쳐 놓았다.
그렇게 한참을 그 망할 놈의 길을 터벅터벅 걸었다.
정족산을 가려면 아직도 1시간 여를 더 걸어야만 하는 지점에서
승용이 신발이 문제를 일으켰다.
대성암, 안적암 쪽으로 바로 하산 결정.

안적암은 입구부터 멋있었다.
안적암에서 시작된 계곡 하산 길이 이번 산행의 백미였다.
거대한 두루마리 진경 산수화 !
집북재에서 내려오는 계곡과의 합류점까지가 도입부라면
노전암까지는 전개, 한듬 계곡 입구까지는 절정,
주차장까지의 계곡은 마무리.
그 그림 속에 그려진 살아 있는 인물이 되어 버린 것 같은 기분이었다.
계곡으로 눈을 돌리자 이번에는,
쉼없이 내 가슴을 파고 들던 언젠가의 그 파도처럼,
오직 한 가닥 뿐인,
나도 모르는 내 깊은 곳에 숨겨진 그것을 가늘게 떨게 만들던 언젠가의 그 연주회처럼,
단 한 순간도 딴 생각을 할 수 없게 하던 그 가슴 떨림이 시작되었다.
모두들 저절로 탄성을 질렀고 절로 눈웃음지었다.
후배들과의 산행이라도 하산 길에서는 여유가 있어
아직은 이런 행복을 만끽하는구나 싶었다.
1시간 여의 작품 관람은 4시 경에 끝이 났다.
출발 때와 같이 봉고차를 이용하여 온천장으로 와서는
꼼장어 집에서 회식을 하였다.

산행 도중과 회식 중 의논한 바는
5월 첫째 주 산행은,
인공 암장 건립에 많은 성원을 해준 회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할 겸 ,
평소 산행 참여가 뜸한 71이후의 학번들을 초대하여 대면식도 할 겸.
가까운 대운산으로 정했다.
회식도 대변에서 짚불 꼼장어나 기장 시장에서 대게로 하기로 잠정 합의하였다.

이번 산행은 시작 때부터 너무 힘이 들었던 관계로
그리고 날씨가 좀 쌀쌀했던 관계로
화사한 봄 날씨의 기운은 덜 느낀 것 같다.
작년 이 맘 때 서창 쪽 어영골로 등산한 적이 있었다.
그 때 썼던 글을 하나 덧 붙이며 이번 천성산 산행기를 마치려한다.

참석자 명단
75 김치근 신양수 이정희  77 이창규  
80 김강태   81 신종철 양경희  82 하정호 김규태   84 민영도 남옥분
95 이승용   98 백광윤   이상 13 명


   <  4 월의 천성산  >

천성산 어영골
무지개 폭포 위 산 등성이
등성이 나무들은 지금
잔칫집 초청을 받은 새색시인 양
연둣빛 저고리로 한껏 멋을 내고
막 대문을 나선 듯

해서
골짝 가득 분 냄새가 진동을 하고
아지랑이 마냥
사람을 마구 설레게 함

멋진 계곡의 조건이야 여럿 있겠지만
요즘 내 눈엔
수려한 계곡 바위들
질감이 꼭
증조 할아버지 주름살같기도 해서

만지면 상처가 날 것 같은 진달래꽃
속살까지 보일 듯한 연분홍

봄이야

천성산 2봉을 넘어
중앙능선에서도
공룡능선에서도
봄이야

날아가던  새들이
빛나던 햇살이
그렇게 외고 있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