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는 흐렸다.
덕분에 등산객들은 줄어서 남문까지의 능선길은 그야말로
호젓한 산길이 되어 있었다.
성지곡 수원지를 벗어나 사직동 뒷 능선까지도 울창한 삼나무와
소나무의 행열은 계속 되었다.
소나무 겉 껍질은 잔뜩 물기를 머금어 검은 빛이었으며,
그 사이로 보이는 병풍사 쪽이나 교대 주변의 도시 풍경은
500만화소 칼라 사진 처럼 선명하였다.
예전의 그 금정산이었다.
비 그친 4월초의 성지곡 수원지는 텔레비젼 속에 비친 스위스의
호반 처럼 푸르렀고, 촉촉한 산길에다 30년 전의 그 때 처럼
등산객은 드문드문이어서 공기는 그야말로 맑고 상쾌하였다.
산행 끝까지 먼지 한 점 없는 산길은 계속 이어졌었다.

pnu 봉 위의 너럭 바위는 언제 보아도,
삭월셋방에 살다, 40평 아파트 분양 받아 이사 온 것 처럼 속이 시원하다.
만약에 노후를 밀양쪽에서 살지 못하게 될 때를 대비해
최후의 보루로 남겨놓은 산성의 공해마을이 빤히 내려다 보이는 곳
가히 휴식터로서는 금정산에서 최고를 다투는 그 곳에서 당연히 휴식을 하였다.
하산은 pnu 암장 쪽으로 하였다.
몇몇 남녀가 암벽등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임송봉 선배님도 희태형도 오래간만의 암장과의 재회에 연신 옛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암벽 등반은 나에게는 참으로 컴플렉스다.
후배들과의 사이에서도 이 암벽등반이 가로 놓여 있는 것 같아 참 난감하다.
나이트 클럽에서의 춤과 함께 동경은 하면서도 여태껏 다가가지 못하는
나에게는 참 또 다른 히말라야다.

모교는 가히 4~5배는 넓어진 것 같았다.
울창한 숲속에 새 건물들이 드문드문 들어서 있는 모교의 모습은
정말 뿌듯하고 자랑스러웠다.
3월 25일 개장식을 한 인공암장에는 97학번 후배 2명이 나와 있는 덕분에
임송봉 선배님에게 내부를 보여 줄 수가 있었다.
학교와 지하철역 사이의 공간은 젊은이들의 세상이었다.
전성기의 서면 거리를 옮겨다 놓은 듯,
인파가 골목골목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모두가 파릇파릇한 새순들이었다.
40초반 까지도 나이에 별 신경을 쓰지 않았더랬다.
40중반 어느 시점 부터 부쩍 나이가 신경이 쓰이더니만, 요즈음은 젊은이들 속에
있으면 상대적으로 늙었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돌아가기에는 너무 많이 걸어와 버린 산길처럼 아쉬움과 미련이 남아있는 곳,
변해버린 고향마을 처럼 정겨움과 낯설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곳,
그곳에서 자의반 타의반으로 옛날 그 시절의 곱창전골을 시켜놓고
시원한 맥주 두어 잔에 소주 몇잔이 들어가자 그제서야 나이 생각을
잊을 수가 있었다.

내생의 남은 산길은 얼마나 될까?
다른 회원들은 또 얼마나 남았을까?
나는 조금이라도 나의 산길이 많이 남아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산행에는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다른 취미도 가지지 않으려고 한다.
그래도 유일신을 믿는 자들처럼 남들에게 다그치지는 않을 것이다.
가끔 동행하는 회원들을 반갑게 여길 것이며,
아직도 산은 예전처럼 우리를 편안히 안아주고, 위로 해 주고 있다고 전할 것이며
같이 가는 날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또한 가끔은 제목을 붙여 동아대 및 경부합동 등반 처럼,
뜸한 선 후배님들을 초청하여 산행을 하고 싶고,
소주잔을 기울이며 아쉬움과 미련이 남은 그 산길을 회상하고 싶다.
아름다운 추억을 회상하는 시간은 행복하노니......
우리의 삶을 완성시키노니......